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연중 16 주간 수요일.....2006,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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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7-26 ㅣ No.777

 

연중 제 16 주간 수요일 - 짝수 해       

              예레미야 1.1.4-10           마태 13,1-9

      2006. 7. 26. 무악재

주제 : 자기 삶에 성실을....

오늘은 안나와 요아킴 축일입니다.  이 두분은 부부였습니다.  혼인관계였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전례를 통하여 기억하는 이유는 이 가정을 통해서 ‘인류구원사업에 협조하신 마리아가 탄생했고, 성장한 마리아가 훗날 구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양육하신 부모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사실은 아닙니다.  어제는 부모님들이 갖는 자녀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오늘은 자녀들의 의식이 성장하기 전 그 배경에 관련된 무상을 하는 날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서 독서를 통해서 들은 말씀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예언자로 선택된 직후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전하거나 실현하려고 하시고, 인간은 그에 참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그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그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하느님의 일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고,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기준이 반드시 세상에서 바라보는 일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한 두 번 읽는다고해서 그 깊은 뜻을 모두 알아들을 것은 아닙니다만, 땅에 뿌려진 씨가 그 씨를 뿌린 사람을 향해서 항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애초에 그 일이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바닥에 떨어진 씨가 해야할 것은 자기 입장과 환경에 맞춰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서 자기 삶에도 도움이 되는 좋을 결실을 맺으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벗어난 일들에 신경을 쓰고 시간을 쓰는 것은, 쓸데없는 일에 공연히 힘만 빼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에게 반드시 세상기준의 행복이 따라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때로는 반대와 질투 때문에 세상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펼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때로는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마리아가 그것을 경험했을 것이고, 결국에는 서글프게 끝난 예레미야 예언자의 삶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오늘 기억하고 생각한 성현들의 삶이 우리가 바라보는 기준에 합당하지 않다고 해서 서글퍼해야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삶에서 우리가 좋은 결실을 얻으려고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가 할 일은 땅에 떨어진 씨가 자기 환경에서 합당한 결실을 내려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 앞에 나서든지 떳떳한다는 것은 자기 삶에 성실을 다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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