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연중 15 주간 수요일.....2006.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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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7-19 ㅣ No.771

 

연중 15 주간 수요일 - 짝수 해       

             이사야 10,5-7.13-16               마태오 11,25-27

     2006. 7. 19. 무악재

주제 : 사람이 받은 사명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현실에 부딪히는 순간순간에 자기 성실을 다하려고는 살겠지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원칙을 모른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라고 해서 세상에 해악을 끼쳐야 할 사람으로 정해진 것은 아닐 것이고, 어떤 사람이라고 해서 현실에서 늘 고생하고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하는 사람이 정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내가 선택한 상황이 내가 원하는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다보니, 마음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는 탓일 것입니다.  누구든지 실패하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것도 그런데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확실하지 않음 불구하고 우리가 실현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독서는 하느님이 정하신 아시리아의 사명을 전합니다.  물론 아시리아라는 나라는 사람도 아니었으므로 하느님의 뜻을 들을 수 없었고, 그 나라를 다스리던 임금 역시도 하느님에 대해서는 당연히 몰랐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민족을 선택하신 것은 북녘의 에프라임 민족을 벌하라는 것이었는데, 같은 일을 하면서 아시리아는 자기 영광만을 찾았다는 것이 예언자의 선언입니다.  그 둘 사이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커다란 차이는 없습니다.  어쩌면 시간이 흐른 다음에 우리가 삶에서 후회하는 일들이 있는 것과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옛날 그 순간에, 그때에 조금만이라도 더 정성스럽게 살았으면.....하고 말하는 것과 큰 차이 없을 것입니다.


오래전에 있었다가 사라져버린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독서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만, 모르기는 해도 우리가 사는 모습도 이런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다가 성공이나 실패를 거듭하면서 사람은 성장한다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모든 것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한번에 알 수 없는 사람의 삶은 그다지 편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답답한 것이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한 걸음 물러선 자세로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모르기 때문에 더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명을 모르고 살았다는 소리를 훗날 한다고 해서 내가 받을 판결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른들을 탓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순수합니다.  욕심을 가져도 어른들보다 적게 갖고, 신비스러운 것을 봐도 어른들보다 순수하게 표현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나이를 먹고 세파에 휘둘리면서 그 순수함이 사라져가고 그래서 우리는 힘겨운 일상에 휘말리게 될 것입니다.  누구라고 그 일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겠습니다만, 예수님이 감탄하신 말씀으로 우리가 복음에서 들은 말씀은,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세상 삶이 조금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가 갖추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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