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3일 (일)
(녹) 연중 제12주일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강론자료

수난성지주일.....20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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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4-08 ㅣ No.705

 

수난 성지주일 (나해)

             이사 50,4-7    필리피 2,6-11    마르코 14,1-15,47

     2006. 4. 9. 무악재

주제 : 예수님을 다시 메시아로.....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2천년 가까운 세월 전에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셔들였던 역사를 기억하는 성지주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했던 상황은 로마민족의 식민지로 살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을 기억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바랐을 일의 한 가지는 독립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와 군사적인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생각과 자세를 갖고 있었을 때에, 군중들에게 기적을 행하며, 하느님의 뜻을 선포했을 예수님을 대하던 그들의 모습은 당연히 힘있는, 힘을 앞세운, 로마민족의 압제에서 독립을 가져올 능력있는 사람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시는 모습은 그런 독립의 바람을 가졌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부족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힘있는 권력자로 등장하기를 바랐을 모습인데, 예수님이 선택한것은 힘이 없어 보이는 나귀를 타고 온 것이었습니다.  모름지기 군사를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들어오는 모습이었다면 적어도 말을 들어와야 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당시 로마 병사들을 대적해서 이기려는 사람이었다면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예수님을 구원자로 외쳐대는 사람들의 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했는데, 기껏 군중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나뭇가지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모습이 허약한 왕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환호에 찬 사람들의 반응과는 달리,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한 주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사형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소리로 바뀌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정말로 구세주요 메시아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자기 민족을 로마에게서 해방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으로 봤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세상삶에서 드러내는 태도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내 삶에 온통 신경을 써주고 내가 청하기만 하면 ‘세상 모든 것을 이루어줄 금방망이를 든 도깨비’로 하느님을 생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를 했고 하느님으로 하여금 금방망이를 두드리게 했는데,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이 내가 바라던 그 욕심에 차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쉽사리 등을 돌려 하느님에게서 뒤돌아서고 만다는 것입니다. 


세상 일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할 때에 그 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느님도 황당하실 것입니다.  저런 사람들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베풀어주어야 하는가하면서 말입니다.  사람들은 허약한 하느님을 원하지 않고 힘있고 강한 분을 원한다는 것인데,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갖는 욕심을 채우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실망하는 모습을 가졌던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그래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적인 머리는 참으로 좋았던 사람들이었던가 봅니다.  로마를 상대로 해서 반란을 일으키고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는 메시아로 예수님을 바랐보았던 그들은, 예수님을 같은 죄목으로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즉 로마를 향하여 반기를 들려고 했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로마민족을 상대로하는 새로운 유다인의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고 말입니다.


바벨탑 사건에 대한 판단을 하실 때, ‘사람이 하려고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못할 일이 없겠다(창세기 11,6)’고 바라보셨던 그 판단이 실현되는 또 하나의 순간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은 놀랍고도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실망의 바로 적용되면서 그 축하할 시간이 바로 재앙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무리는 예수님을 죽게 함으로써 자기들이 승리할 거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눈엣가시’를 ‘내 손 대지 않고 코 푼격’으로 쉽게 처리했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상살이에 대한 우리들 각자의 삶을 돌이켜본다면 우리안에도 이런 사람들의 마음이나 생각이 없는 것인지도 잘 살펴야 할 일입니다.  아니 그런 마음을 우리가 갖고 샆지 않는다고 말은 할 수 있어도 그 말대로 내가 정말로 떳떳하게 사는지도 살필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사람은 생각이나 머리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기에, 성지주일에 이루어졌던 그 상황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셔들였으나 죽어야할 죄인으로 끝을 맺었던 것과는 달리, 우리의 실제 삶을 통해서는 이런 일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의 행동이 직접적으로 예수님을 죽게 한 행동이라는 말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분을 합당하게 구세주로 생각하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생각이나 마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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