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3일 (일)
(녹) 연중 제12주일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강론자료

부활 6 주간 금요일-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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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5-29 ㅣ No.420

부활 6 주간 금요일

        사도행전 18,9-18    요한 16,20-23ㄱ

 

    2003. 5. 30.

….

주제 : 하느님의 도움을 믿으며 사는 일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힘든 것이 다른 이의 도움을 기대하며 사는 일입니다.  그 대상은 나와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저 베풀어주시기를 바라는 하느님일 수도 있습니다.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내가 살아온 모습에 따라 받을 수도 있고 거절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하느님이라면 차원은 달라집니다.  내 의지로 하느님을 이렇게 저렇게 조종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그에 알맞은 행동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이고 하느님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하게 됩니다.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했던 바오로가 거둔 성공은 형편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이는 모습처럼 의기소침해져 있었고, 자신의 의지로 나서지 아니한 일을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무슨 힘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바오로에게 하느님의 힘이 와서 그를 격려합니다.  ‘잠자코 있지 말고 전도를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삶에서 지치고 낙담할 때, 우리가 움직이는 모습을 생각한다면 바오로 사도가 겪었을 모습을 짐작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렵사리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선 그에게 다가온 것은 삶의 기쁨이나 사람들의 환대가 아니라 질시와 냉대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법정으로 끌려갑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현실의 우리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유 없이 원망의 소리를 들어야하고, 성심성의껏 잘 행동하고 좋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만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자세가 잘못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만, 더 큰 이유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가진 삶의 자세가 잘못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유다인들은 먼저 정치권력의 힘을 이용합니다. 자기들의 손을 대지 않고 합법적으로 박해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여의치 않게 되자 엉뚱하게도 회당 소스테네를 불러다가 다시 한번 법정 앞에서 소란피웁니다.  유다인들을 위한 회당인데, 거기에서 그들이 배반해서 죽게 한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을 펴도록 허락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사람은 삶에서 걱정하고 걱정을 하는 만큼 불만을 갖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닌데, 또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늘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삶에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불만과 걱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 또한 그와 같은 내용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얼마나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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