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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모범적인 가장 성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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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165

모범적인 가장 성 요셉

 

 

요즘의 아버지상이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실직한 아버지, 부양능력 없는 가장은 아버지의 권위조차 지킬 수 없는 험한 세상을 만난 것이다. 산업사회의 아버지라는 도구 노릇에 충실하여 "회사 인간"이라고 불리더니, 마침내 조기퇴직, 정년을 눈앞에 보면서 ’생계책임자’라는 받침대조차 흔들리게 되었다.

 

아내에게 구박받고 자식에게 푸대접받는 가장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가정은 더 이상 아버지에게 경제문제의 해결을 기대하지 않는다. 사회는 더 이상 가부장제를 요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시하고 있다. 가정의 참된 행복과 평화를 위하여 아버지상이 바뀌어야 하고, 3월에 특별히 마음에 두어야 할 분이 성 요셉, 성가정의 가장이라고 확신한다.

 

 

복음서에 드러난 성 요셉

 

요셉 성인에 관한 성서구절은 마태오 복음 1-2장과 루가 복음 1-2장뿐이다. 그에 대한 언급이 적고 내용도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내면적, 영적으로 묵상해 보면 그는 참으로 많은 일을 남모르게 실천하였다.

 

우선 복음내용을 요약하면 요셉은 다윗 왕가의 후손이고, 요셉 가문은 유다 베들레헴에서 갈릴래아 나자렛으로 이사하였으며, 여기서 요셉은 목수일을 하였고 의인으로 존경받아 왔다. 약혼자 마리아가 임신하자 파혼하려던 요셉은 성령에 의한 잉태라는 천사의 전달을 듣고 그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호적을 하러 갔다가 예수 탄생과 동방박사의 조배를 맞았고, 헤로데의 영아학살을 피하여 가족과 함께 이집트로 피신하였다가 헤로데가 죽은 뒤에야 가족을 데리고 나자렛으로 와서 살았다. 요셉은 부모로서 아기에게 할례를 받도록 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였다. 예수가 12살 되던 해에 그는 예수.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 순례를 갔다가 예수를 잃었으나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하였다.

 

’마리아의 남편’이란 표현은 육체 관계가 없는 부부라 하더라도 혼인예식서에 나오는 것처럼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한 남편이요 아내란 뜻이다. 구세주와 그분의 어머니를 한평생 자기 가정에 살게 한 사람은 요셉밖에 없다. 양부라는 표현이 마땅한 것 같지 않지만 성 아우구스티노에 따르면 "요셉은 그 아버지상이 더욱더 순수(순결)하였을 때 그만큼 더 깊은 의미의 아버지였던 것이다."여기서 구별하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 ’하느님 아버지’이다. 하느님께서 아버지시라는 개념은 초기에는 민족적이고 구세사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었다.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루가 복음(3,23)에서처럼 족보를 따져볼 때 하느님에게까지 올라간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아버지인 하느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성적인 표현이며 영성화한 개념이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을 최상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분에 의하여 모든 가족이 존재할 수 있다(에페 3,14-15)고 하였다. 이렇게 인간의 아버지들과 하느님 사이에 일종의 유사성이 있으므로 하느님께 아버지라는 이름을 붙여드렸고 또한 하느님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인간의 아버지들도 구원계획 안에서 충만한 의미를 받게 된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 법대로 사는 사람이라서 마리아의 잉태소식을 듣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부인이 간음하면 돌로 쳐죽이는 것이 원칙이었다(신명 22,20-21). 잘 봐준다고 해도 이혼장을 써주고 소박하면 되었다. 이것이 합법적이고 의로운 처사였다. 그런데도 요셉을 의롭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에서 이혼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요셉의 고민과 마음의 갈등은 어떠하였겠는가. 우리 나라 같으면 어떤 폭력사태가 발생하였을지 모른다.

 

구약시대는 율법주의 시대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 사랑임을 가르쳤다. 황금률(마태 7,12)과 사랑의 이중계명(마태 22,34-40)은 가장 포괄적인 계명이다. 이런 사랑이 요셉의 마음을 녹였다. 법의 시대가 사랑의 시대로 바뀌었다. 사랑 없이는 정의조차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

 

"두려워하지 말라. …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라는 표현은 단지 천사의 격려와 알림일 뿐 아니라, 불안과 갈등을 떨쳐버리고 평화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수용할 겸허와 확신을 심어준 것이다.

 

 

성 요셉과 교회

 

전례력으로 3월은 성 요셉 성월이고, 3월 19일은 성 요셉 대축일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란 제한적인 명칭이 붙어있다. 즉 요셉 성인이 마리아의 배필이라는 데 중점을 둔다. 하느님 어머니의 배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공경의 흔적은 8-9백 년대 콥트 교회(이집트인의 콥트 국민교회) 달력 7월 20일자에 나타난다. 3월 19일의 요셉 축일은 12세기경에야 확인되고, 당시 십자군이 나자렛에 요셉을 공경하기 위한 교회를 세웠다.

 

요셉에 대한 공경과 축제는 14세기에 주로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3월 19일로 축일을 선정한 이유는 단지 추측만 있을 뿐이다.

 

1479년에 교황 식스토 4세(프란치스코회 회원)가 이 축일을 전체 교회로 확대시켰다.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은 1621년 의무 기념일로 격상시켰고 그때부터 요셉 성인 공경에 대한 바로크 양식의 그림과 조각이 성행하였다. 비오 9세는 1870년 요셉을 교회의 수호자로 일컬었고 축일 순위도 둘째 등급으로 격상시켰다. 교회는 성 요셉 대축일이 있는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지정하여, 그의 덕을 기리고 본받도록 하였다.

 

레오 13세 교황은 1889년 성 요셉을 가장(家長)의 모범으로 선포하였다. 노동자의 수호자란 칭호는 베네딕도 15세, 사회정의의 수호자란 칭호는 비오 11세가 부여하였다. 미사경본에도 지속되는 고유 감사송은 1920년에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그리고 항상 사순시기에 이 축일이 해당되므로 지역 주교회의는 다른 날로 옮겨 지낼 수 있도록 하였다. 요한 23세 교황은 1962년 요셉의 이름을 미사 전문(典文)에 실리도록 하였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5년 5월 1일을 노동자들의 수호자 성 요셉 대축일로 제정하였다. 그러나 1969년 새 교회력에서는 등급 순위 둘째인 의무 기념축일에서 의무가 아닌 기념일로 남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직전 요한 23세 교황은 공의회의 준비와 성공을 위하여, 나자렛 성가정의 가장이요 성교회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의 도움을 위탁하였다. 그런 뜻이 교서만이 아니라 공의회 문헌의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에도 반영되었다. "특히 거룩한 전례에 있어서 우리와 천상교회의 일치가 가장 고상한 방법으로 실현되는 것이니, … 미사 성제를 봉헌하며 특히 영화로우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와 성 요셉과 … 모든 성인들을 생각하며 … 천상교회 예배에 일치하는 것이다"(50항).

 

바오로 6세 교황도 현대교회에서 성 요셉의 사명을 "보호와 방위, 수호와 원조"라고 하였다. 오늘의 세계에서 교회가 해악이나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는 요셉의 사명은 바로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 특히 교황은 성 요셉이 아기 예수의 수호자, 마리아의 수호자, 성가정의 수호자, 교회의 수호자, 우리의 수호자라고 하였다.

 

비오 11세 교황은 요셉의 중재란 남편의 중재, 양부의 중재, 가장의 중재라고 하였다. 불행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도 양부요 돕는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레오 13세 교황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성 요셉은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산 표본이라고 하면서 "아내들에게는 사랑, 마음의 일치, 충실함의 모범이고, 미혼자, 독신자, 수도자·성직자에게는 정결의 이상이며 수호자이다. 그리고 성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요 예수의 아버지이므로 가톨릭 교회의 가장권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였던 것이다.

 

요셉(Joseph)의 뜻은 ’하느님을 돕다’ 곧 ’돕는 사람’이다. 요셉의 인생은 성실한 돕는 이의 삶이었다. 첫째, 정결한 남편으로서 동정을 원하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보호하고 지켜주었다. 자기 희생과 봉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 성실한 아버지로서, 예수님의 양부로서 자기 임무를 다하였다. 그래서 교회는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정하여 의인(義人)이며 신앙인의 모범인 성 요셉의 덕을 기리고 본받는 것이다.

 

"순종하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다."(1사무 15,22)고 하였다. 요셉처럼 순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어디 또 있겠는가. 성 요셉 감사송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성부는 의로운 요셉을 천주의 어머니이신 동정녀의 배필로 삼으시고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 요셉을 성가정의 가장으로 세우시어" 그리스도를 하느님 아버지 대신 보필하게 하셨다고 기도한다.

 

요셉은 교회 전체의 수호자요, 노동자, 가정, 동정녀, 환자, 죽어가는 이의 수호자이다. 이 밖에도 요셉을 수호자로 모신 사례가 많다. 요셉회, 노동자, 수공업자, 벌목자, 목수, 기술자, 개척자, 여행자, 묘지 관리자, 추방자, 신혼부부, 가정, 처녀, 고아, 순결 교육자, 회의에 빠진 자, 눈병 환자들의 수호자이며, 유혹당할 때와 머물 곳이 없을 때의 수호자로 도움을 주도록 기도하고 있다.

 

경제난국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성 요셉을 수호자로 모시고 기도(전구)하며, 그의 덕을 묵상하고 실행하여 주님의 은총을 받도록 할 것이다.

 

[경향잡지, 1999년 3월호, 안문기 프란치스코(대전 성남동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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