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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녀 현경련 베네딕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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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157

성녀 현경련 베네딕타(1794-1839, 부인, 기해박해 때 참수)

 

 

서울의 역관 집안에서 태어난 현경련(玄敬連)은 어려서 주문모 신부에게 성세성사를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 현계흠이 황사영의 백서 사건과 관련되어 순교한 후 어머니를 따라 자주 이사다니며 살았다. 17세 때 최창현(崔昌顯)의 아들과 결혼했으나 3년만에 남편을 여의고는 친정으로 돌아와 삯바느질로 친정 식구들의 생계를 도왔다. 항상 규칙적인 독서와 묵상, 그리고 기도생활을 했고 뛰어난 교리지식과 열정적인 신앙으로 여회장직을 맡아보며 무지한 교우와 외교인을 가르치고 냉담자를 권면하며 외교인 자녀들에게 대세를 주는 등 교회 일에 적극 헌신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현경련은 잠시 피신했었으나 6월에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동생 현석문(玄錫文)과 주교의 피신처를 알아내려는 형리들로부터 주뢰 2차, 300여 대의 장(77)을 맞는 혹형을 당했고, 형조에서도 매우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참아냈다. 옥중에서 동생에게 신망애(信望愛) 삼덕에 관한 편지를 써 보내 많은 교우들을 감동시켰다. 12월 29일 현경련은 6명의 교우와 함께 46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 성 현석문(玄錫文) 가롤로는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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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사중 여성이 차지하는 부분에서 또렸하게 그 행적을 나타낸 현경련 베네딕타, 그녀는 신유박해때 순교한 역관 현계흠의 딸이고, 현석문의 누이이다. 아버지를 여읜 그녀의 가족들은 천주께 의지하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나갔다.

 

베네틱타는 열일곱이 되던 해에 그녀의 아버지와 같이 신유박해 때 순교한 최창현의 아들과 결혼해 순교자 집안을 이루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결혼한 지 3년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왔다. 삯바느질을 하며 친정살림과 동생 석문의 공부를 도우며 살았던 베네틱타는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시간을 정해두고 기도하고 묵상과 독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집을 드나드는 모든 신자들이 그 집안의 화목과 규칙적인 기도생활, 복음적 생활을 보며 탄복하였다. 앵베르 주교는 열정적으로 신앙하는 그녀에게 여회장직을 맡겨 많은 일을 시켰다.

 

여회장이 된 현경련은 더욱 적극적으로 신앙생활과 전교활동을 해 1839년 박해가 시작되자 제일 먼저 고발된 신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 유월 체포된 그녀는 포청과 형조에서 동생 현석문과 주교의 피신처를 대라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다. 베네딕타는 고통그런 처지에 있으면서도 동생에게 신망애(信望愛) 삼덕에 관한 긴 편지를 써보내 만은 교우들을 감동시켰다. 옥중생활 7개월 만인 12월 29일 현경련은 마흔 다섯 살에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경향잡지, 199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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