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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 권득인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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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61

성 권득인 베드로(1805-1839, 상인, 기해박해 때 참수)

 

 

서울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난 권득인(權得仁) 베드로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여윈 후 결혼했다. 얼마 동안은 약장사를 하는 형과 함께 살다가 분가하여 성패(聖牌)와 성물을 만들어 팔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갔는데 항상 새벽닭이 울 때 일어나 촛불을 켜놓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도하는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깊은 신앙으로 인해 권득인은 1839년 1월 16일 처남, 아내, 어린 자녀 등 4명와 가족 그리고 김 로사와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해야 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가족들이 배교하고 석방되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권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그 후 권득인은 5개월 동안 옥중에서 굶주림과 추위를 이겨내고 드디어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35세였다.

 

- 성녀 김 로사와 함께 체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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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천주교를 믿느냐?"라는 포장의 물음에, "천주교는 천사와 사람과 만물의 임금이시오,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며 이 모든 물건을 사용하고 천주님께 무한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니 천주님께 감사할 생각을 두지 않는 것이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습니까?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천주를 공경하고 섬길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한 권득인 베드로, 서울 문안의 교우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열여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잃었다. 얼마 동안 약장사를 하던 형과 함께 어렵게 살던 그는 분가하여 성패와 성물을 만들어 팔며 근근히 끼니를 이어갔다. 결혼 후 그는 사직골에 살면서 새벽닭이 울 때 일어나서 촛불을 켜놓고 날이 발을 때까지 기도하는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39년 1월 16일 저년 무렵 가족, 처남과 함께 체포되어 갇혔는데, 가족들이 배교하고 석방되자 그들을 위로하며 순교를 권하는 편지를 써보냈다. 권베드로는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포장은 무섭게 매질하라고 명령하며 동료를 대라고 소리질렀다. "천주교에서는 남을 죽이거나 해하는 것을 엄금하니 어찌 감히 내 말로써 사람들에게 죽을 위험을 당하게 하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포장은 강제로라도 그를 배교시키기 위해 모된 죄수들에게 내맡겨 고문하게 하여 두 번이나 죽은 줄 알고 버려두기까지 하였다. 그 뒤 권 베드로는 5개월 동안 옥중에서 굶주림과 추위를 이겨내고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의 나이 서른 다섯 되던 해였다. [경향잡지, 199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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