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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교회: 킬링필드의 땅에도 꽃은 핀다 - 예비신자의 캄보디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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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2 ㅣ No.42

[아시아 아시아] 캄보디아 교회


킬링필드의 땅에도 꽃은 핀다 - 예비신자의 캄보디아 교회

 

 

사제 다섯 명과 외국 선교사가 이끄는 교회

 

‘캄보디아’ 하면 대부분 ‘킬링 필드’라는 영화와 산처럼 쌓인 해골더미 사진을 떠올릴 것이다. 또는 앙코르와트 사원 유적이나 동남아 최대라는 시엠렙 호숫가의 가난한 어민을 다큐멘터리로 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캄보디아는 인구 1277만 명 가운데 17만 명이 에이즈에 걸린 상태다. 30년에 걸친 전쟁과 내전은 끝났으나 가난과 지뢰, 질병이 이 나라를 괴롭히고 있다.

 

캄보디아 교회는 크메르인 사제 다섯 명과 외국인 선교사제 일곱 명, 그리고 외국인 평신도 선교사 20여 명이 이끌고 있다. 캄보디아 인구의 90퍼센트는 크메르족이다. 베트남 쪽 동부지방에는 베트남에서 이주해 온 베트남계 사람들이 많고, 캄보디아에 사는 비외국인 가톨릭인은 이들 베트남계가 대부분이다. 베트남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제법 가톨릭인이 많이 생겼는데, 남부지방 베트남인들이 기근 등을 피해 캄보디아 동부지방으로 이주하면서 이들도 같이 이주한 것이다.

 

캄보디아의 중심을 이루는 크메르족은 한때 지금의 타이와 베트남 남부지방까지 아우르는 등 인도차이나 반도를 호령했으나 그 뒤 서쪽의 타이족과 동쪽의 베트남족 사이에 끼여 국세가 크게 위축되었다. 베트남이 1979년에 같은 공산국가이던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을 몰아낸다는 명분으로 침공했던 것도 캄보디아 동부지방에 대한 영유권 주장과 관련이 있으며, 지금 캄보디아의 자랑인 앙코르와트 사원이 있는 서부지역은 타이가 당시 캄보디아를 지배하던 프랑스에게 강제로 빼앗겼다고 하는 곳이다.

 

2년 전에는 타이의 한 유명 여가수가 “앙코르와트를 돌려주지 않으면 캄보디아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헛소문이 돈 직후 분노한 캄보디아인들이 프놈펜에 있는 타이 대사관을 공격했고, 타이는 급히 군용 수송기를 보내 타이인 교민들을 실어오기도 했다. 그만큼 약소국 캄보디아인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강하다. 공산정권인 크메르 루주가 보여줬던 잔학성의 이면에는 이런 대외공포증도 연관이 있다.

 

크메르 루주란 프랑스어로 “붉은 크메르”란 뜻이다.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주가 1975년에 집권했으나 1979년 베트남의 침공으로 물러났다. 이후 여러 군사정권 아래 혼란을 거쳐 현재는 입헌군주정이지만 사실은 훈센의 개발독재 정권이 지배하고 있다.

 

 

불교국가에 뿌리내리는 가톨릭

 

캄보디아는 1989년부터 다시 종교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크메르 루주 정권 아래 원래 있던 캄보디아인 교회는 거의 소멸되었기 때문에, 종교자유가 다시 허용된 뒤 캄보디아 교회는 외국인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재건되었다. 동부 농촌지방의 베트남계 신자들, 그리고 프놈펜에 주재하는 외교관들과 상사원들이 중심이 된 것이다. 가톨릭 신자수는 1만 9천 명으로 인구 대비 신자비율은 0.2%에도 미치지 못한다. 교구로는 프놈펜 대목구와 바탐방 지목구와 콤퐁참 지목구 등 3개가 있다.

 

어쨌거나 캄보디아는 불교국가다. 더구나 주류인 크메르족 사이에는 가톨릭 교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캄보디아 교회의 최대 과제는 크메르족 사이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외국의 개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역사 속에서, 더구나 과거 식민통치국이던 프랑스의 종교, 잠재적국인 베트남계의 종교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교회는 먼저 캄보디아의 심각한 가난과 보건의료에 눈을 돌렸다. 시엠렙 까리따스는 교회의 대표적 보건의료사업 기구이다.

 

한편 오랜 선교 노력 끝에 크메르인 사이에 교회가 뿌리를 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3년에는 프놈펜 대목구에서 새 본당을 두 개 세우는 등 본당이 몇 개 새로 생겨났다. 예비신자도 늘었으며, 교회의 사회봉사도 확대되었다.

 

콤퐁참 지목구에서는 성 십자가 사랑의 수녀회에서 크메르인 수녀 두 명이 2004년 3월에 유기서원을 했다. 1970년에 이 수녀회 소속 수녀 대부분이 캄보디아에서 추방된 이후 첫 크메르인 수녀가 탄생한 것으로서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1970년 당시 우익 쿠데타를 일으키고 시아누크 왕정을 전복한 론놀 정권은 베트남계 캄보디아인을 모두 추방했는데, 당시 이 수녀회는 2명만 크메르인이었고 나머지는 다 캄보디아에서 출생하기는 했으나 베트남계였기 때문이다. 남은 크메르인 수녀 2명 가운데 한 명은 크메르 루주 정권 아래 살해당했고 나머지 한 명은 몇 년 전에 프놈펜에서 죽었다.

 

콤퐁참 지목구의 관할지역인 캄보디아 동북단 라타나카리주에서는 한국인인 박서필 요한 신부(한국외방선교회)가 성인 재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캄보디아에는 미국의 메리놀 외방 전교회를 비롯해 이웃 국가 타이의 타이 선교회, 캐나다의 퀘벡 선교회, 그리고 예전부터 이곳에서 활동해 왔던 파리 외방 전교회, 필리핀 선교회 등이 활동하고 있다.

 

바탐방 지목구는 파이린에 새 본당을 세웠다. 이 본당은 타이 국경에서 1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데, 크메르인 8가구로 시작하였다. 서북부 반테이메안체이주에 있는 타옴 마을에서는 지방당국이 과거 몰수했던 교회의 땅을 교회에 돌려주었다.

 

 

젊은이의 교회, 협력하는 교회

 

전국 차원에서는 주교회의 홍보국이 설립되었는데, 프놈펜 주교관에 사무실을 두었다. 홍보국은 전국에 배포하는 크메르어판 가톨릭 신문과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을 시작했다. 또 웹사이트(www.catholiccambodia.org)도 곧 열린다.

 

이렇게 새롭게 전개되는 선교활동의 결과 캄보디아 교회는 새롭게 형성된 예비신자들의 교회이며, 젊은이들의 교회, 그리고 협력과 희망의 정신으로 가득한 교회가 되고 있다.

 

프놈펜 대목구의 에밀 데스통브 주교는 지난 3월, 캄보디아 교회는 이미 세례를 받은 크메르인 신자보다 세례를 준비 중인 예비신자가 더 많기 때문에 “예비신자의 교회”라고 표현했다. 그는 또한 캄보디아 교회는 “젊은이의 교회”라고도 했다.

 

여러 교회는 신자 대부분이 젊은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캄보디아 교회는 협력하는 교회이기도 하다.”고 했다. 여러 나라에서 모인 수도자와 사제들이 캄보디아 교회를 이끌고 있다는 다양성뿐 아니라 서로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향잡지, 2004년 5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뉴스(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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