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3-0512...주님승천대축일...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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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5-11 ㅣ No.1354

승천 대축일 (부활7주일)

사도행전 1,1-11           에페소 1,17-23        루카 24,46-53

2013. 5. 12. 등촌3

주제 : 예수님의 이별(?)과 새로운 만남을 위하여

사람의 삶은 만남과 이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집을 떠나, 오늘 이 미사에 오신 것을 만남이라고 말한다면, 미사를 마치고 성당 대문을 나설 때에는 이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전례에서 기억하는 예수님의 승천을 만남과 이별이라는 세상의 말로 온전하게 해석할 수는 없지만, 비슷하게 설명을 해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만남은 즐거운 일이고, 이별은 슬픈 일일까요? 언뜻 듣는 소리에 우리는 이분법 법칙을 적용해서 그렇다고 말하기가 쉽지만, 만남이 항상 즐거운 일이 아닐 수도 있고, 이별이 항상 슬픈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만남이 힘겨운 일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이별이 행복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전례에서 기억하는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서 적용한다면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예수님의 승천은 신앙에서 해석하는 이별(離別)입니다. 세상에 실현되어야 하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러 오셨던, 예수님의 세상 삶이 끝나고 천상으로 떠나신 날을 기억하는 것이 오늘 승천대축일의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 천상으로 가셨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는 무엇인지 질문하고 대답을 찾는 것이 승천을 제대로 기념하기 위한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33년을 사신 것으로 우리는 기념합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연표에 따라서, 예수님의 삶이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났는지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또 우리가 기억하는 신앙의 일에 그런 연표를 적용하는 것이 중요한 일도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이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그다지 높지 않은 올리브-산에서 하늘로 오르시면서,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을 사명으로 남기십니다. 우리도 사도들이 가졌던 믿음을 본받아 실천하면서 사는 신앙인들이니, 예수님께서 남기신 사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모양으로 내 삶에 실현하려고 애쓰는지 판단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중의 한 가지 입니다.

 

사람에게는 흔히 청개구리(=매사에 엇나가고 엇먹는 짓을 하는 사람의 별명) 심성이 있다고 합니다. 일반론을 얘기할 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청개구리 심성이 사람의 삶에 그 모양을 드러낼 때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몸은 표현하겠습니까?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하라는 일을 해도 반대로 해석해서 실행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청개구리 심성이라는 표현을 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사도들에게 남기신 사명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살고 있으며, 이 자리에 함께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우화에 나오는 청개구리는 딱 한번 정신을 차립니다. 그가 다른 이의 말을 듣고 그 말대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대상이었던 자기 어머니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다음이었으니 말입니다. 우리들 삶에 뭔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청개구리 우화가 만들어지기는 했겠지만, 그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갖고 있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삶의 변화를 새롭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 우화(寓話)의 특징입니다만, 실제 삶에는 우화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자세를 갖게 하는 일들이 매우 드뭅니다. 그나마 우리 신앙생활에는 고해성사라는 것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해성사를 화해성사로, 고해성사를 내 삶에 새로운 희망을 주는 일로 생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부담스러운 일이고, 피하고 싶은 일이라고만 생각할까요?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것은 자유입니다만, 그 자세에 따라서 우리들 삶에 달라질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바오로사도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자기 삶에 맡겨진 의무로, 또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값을 내지 않고 거저 전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1코린9,16-18) 그런 소식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들었을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세상에 죄를 용서해주는 일이 가능하다고 선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때로는 세상에서 완벽하게 살 수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는 합니다만, 실제로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요구하신 두 번째 일은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하신 것이라고 루카복음사가는 적습니다. 이 표현대로, 루카복음사가는 하늘로부터 사람에게 다시 내려오시는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의 강림을 사도행전 처음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승천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통보하신 이별사건입니다. 오늘 미사에 오신 여러분에게 하신 직접적인 이별은 아니지만, 우리는 같은 모양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예고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다음 주일에 기억하게 될, ‘성령강림대축일이 그 일입니다. 만남이 의미 있는 것은 이별을 예상할 때이고, 이별이 또한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실현의 때는 모르지만 새로운 만남을 예상할 수 있을 때일 것입니다.

 

오늘 승천대축일, 만남과 이별을 세상의 시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들은 날, 우리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이 자리를 물러나면서, 어떤 사명을 마음에 새기고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별만 기억하고 떠나시겠습니까? 그것은 세상에서 사용하는 회자정리(會者定離,사람은 누구나 만나면 헤어지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이르는 말)’만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별만 기억한다면 우리가 세상 삶에서 무슨 힘으로 살겠습니까?

 

우리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만남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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