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2-0909...주일...행동과 연결돼야 할 신앙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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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9-08 ㅣ No.1303

연중 23 주일 (나해)

이사야 35,4-7ㄱ       야고보 2,1-5      마르코 7,31-37

2012. 9. 9. 등촌3.

주제 : 행동과 연결돼야 할 신앙인의 삶

지난 여름동안 우리를 힘겹게 했던 더위도 이제는 물러간 듯,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합니다. 이 더위가 물러가기 전, 두 개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지나가면서, 아주 큰 역경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름도 낯설었던 태풍 2개가 남긴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겪은 도시에 사는 우리가, 힘겨운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상처가 나에게 오지 않았음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끝내도 될까요?

 

오늘은 순교자성월에 맞는 두 번째 주일, 연중23주일입니다.

사람의 삶을 요약하는 표현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잘 산다/혹은/잘 살았다는 말도 있고, 신앙심이 부러울 만큼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도 있을 것이며, 세상에서 자기 위치를 확실히 드러낸 성공한 사람이라는 표현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의 자리가 빈공간이 되었을 때, 그의 삶에 대해서 아쉬움을 먼저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몇 가지 좋은 표현만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세상일에는 상대적인 일이 많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런 표현과는 맞지 않는 반대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들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우리가 듣기를 원하는 소리가 어떤 것인지에 따라, 우리네 삶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론이 그렇듯이 우리가 귀를 울리는 아름답고 멋있는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우리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귀만 울리고 사라지는 소리의 영향이나 결과가 아니라, 그 소리를 귀로 듣고 가슴으로, 행동으로 드러낸 사람들이 있을 때라야만 가능한 법입니다. 혹시 이와는 다른 이론을 말하면서도, 그 결과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남긴 일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사람의 귀를 열어주시는 예수님의 기적이야기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도 참으로 궁금하고 또 궁금한 것은 귀 먹고 말 더듬는 이를 대하는 예수님의 자세입니다. 이런 역경에 있던 사람이 자기 발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들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숫가로 돌아오셨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 다음에, 그 환경에 처해 있던 사람, 귀먹고 말을 더듬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귀먹고 말을 더듬는 그를 군중들 가운데서 따로 데리고 가시어, 사람들이 간절히 바랐을 일을 그에게 일어나게 하신 다음, 자신을 예수님께로 이끌어왔던 사람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이상한 명령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신 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과거에 이렇게 하신 일을 오늘 전해들은 우리가, 이 시대에 알아들어야 그 기적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은 같은 일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판단이 다르면, 십중팔구 행동도 다르게 할 것입니다. 또 행동이 다르다면 결과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전해 듣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과 가르침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신앙생활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다분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우리가 차원을 분리하여 말할 수는 있지만, 생활까지 함께 생각한다면 머리로 알아듣는 것으로 완벽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귀먹고 말더듬는 이가 예수님에게 온 것까지는 군중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도와준 일은 맞지만, 예수님의 기적으로 귀도 풀리고, 말도 더듬지 않게 된 바로 그 사람이, 자기들의 신앙을 행동으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셨던 군중이나 그 무리들의 삶과는 뭔가 달라야 한다고 판단하셨을 거라는 얘깁니다.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놀라운 자세를 보이기는 쉽습니다. 내 뜻과 생각에 일치하는 모습을 보고서도 그렇게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고, 나와는 차원도 다르고 판단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서도 놀라운 자세를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어떤 것이 옳다거나 어떤 것이 그르다거나 하는 판단은 별로 의미 없는 일입니다.

 

말로 하는 올바른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올바른 판단대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본보기를 오늘 두 번째 독서, 야고보서간은 알려줍니다. 이왕이면 누추한 옷을 입은 사람보다는 화려하고 금가락지를 낀 사람이 우리의 시선을 더 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그 모습 때문에 우리가 차별을 두는 행동을 한다면 잘못이라는 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모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올바른 길을 따라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삶의 중심으로 세우면, 세상의 기준과는 아주 많은 일들이 달라진다고 이사야예언자는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오늘 이 자리에 얼마나 있겠습니까?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우리 삶에 이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진 삶의 자세에 따라서 아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9, 순교자성월을 지내는 우리가 얼마나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하고, 얼마나 바른 길을 가도록 노력해야하는지 잠시 묵상할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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