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0806-변모축일-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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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8-05 ㅣ No.467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 [0806] - 나해 평일

 

        다니 7,9-10.13-14        마르코 9,2-10  

    2003. 8. 6. (수)

주제 : 내가 바라는 삶

 

사람은 누구나 영광스러운 모습을 꿈꿉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고 만족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남과 비교하여 남보다 더 높은 직책에 올라서려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허리를 굽히려고 하지 않기도 합니다.  내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면 괜히 그 사람보다는 높은 것처럼 보이고, 내가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삶에서 비교하는 삶이 항상 옳은 길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이 비교라는 것이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저녁 뉴스마다 부쩍 늘어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어이없는 것으로 만드는 모습입니다.  험난한 세상에 어린 것들만 남겨놓자니 그것도 먼저 갈 부모로서 못할 일이기에 함께 데리고 간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모습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해결책을 생각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신 날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신 하느님이기에 인간의 마음을 가졌던 세 명 제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얼만 전 출애굽기에서 읽었던 모세의 모습에서도 비슷한 말을 우리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느님에게서 ‘십계판’을 받으러 올라갔고 하느님과 대화하고 내려오던 길이었다고 출애굽기는 전합니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모습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도들 가운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영광스러운 곳에서 그저 머물 수 있기를 청합니다.  하지만 베드로 사도의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그 소리에 들려온 하느님의 말씀은 나만 영광스러운 곳에 머물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 영광스러움에 함께 하도록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현실에 매여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기도 어려운 이야기이고, 내가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더더구나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우리가 삶에서 욕심을 버려야만 참된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바라보았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한 생활을 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된 제자들처럼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생활은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이 준비하시는 영광에 참여할 방법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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