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사순 6 주일-나해-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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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4-12 ㅣ No.400

수난 성지주일 (나해)

 

이사 50,4-7    필립 2,6-11    마르코 14,1-15,47

    2003. 4. 13.

 

주제 :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우리가 오늘 기억하는 일은 삶의 시작과 끝이 연결돼있는 특별한 일입니다.  삶의 시작이란 특별한 기대를 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 들인 많은 사람들의 삶을 말하는 것이고, 삶의 끝은 자기 기득권(旣得權)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백성들의 지도자들의 행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전하는 내용이 평상시 주일보다 월등히 길기는 합니다만, 그 내용을 돌아보면서 내 삶은 어느 쪽에 가까운지 뒤돌아보는 일도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단죄한 사건은 과월절 축제 기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과월절, 파스카 축제는 건너뛴다는 의미입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는 일입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집트 땅에서 탈출하기 전날 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내리치는 징벌을 피하고 생명으로 건너뛰었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것이 약 15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다음, 이스라엘 백성들의 축제일에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축제의 모습이 사라지고 고통과 한탄의 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았던 백성의 지도자들은 로마제국의 편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백성의 통치자들로서 군림할 수 있게 해주었던 힘은 점령군 로마제국의 힘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예수님을 단죄할 때는 로마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을 근거로 심판합니다.  그 죄목의 내용은 예수님이 ‘사람이면서도 하느님을 사칭하고 하느님을 모독했다(마르코 14,63)’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그 판단하는 사람들의 행태(行態)가 가관입니다.  세속의 힘을 등에 업고 하느님의 백성을 다스리던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들을 대할 때는 자신의 삶과 전혀 관련이 없는 하느님의 율법으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되는 행동이겠습니까?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가관입니다.  편리한 대로 이것이나 저것을 이용하는 것이 사람이라고는 합니다만, 정말로 봐줄만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너무한 것이 하느님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오늘, 백성의 환호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지도자들의 박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삶에도 백성의 지도자들이 보여준 이율배반(二律背反)의 요소,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요소가 있지는 않은지 제대로 살펴야 합니다.  

 

하느님도 놀라고 자연도 경악하게 하는 잘못된 행동을 우리가 피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느님의 분노를 삭혀드릴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모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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