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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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사순 2 주일-나해-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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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3-16 ㅣ No.396

사순 제 2 주일 (나해)

 

  창세기 22,1-2.9.10-13.15-18      로마 8,31ㄴ-34  마르코 9,2-10

 

 2003. 3. 16.

 

주제 : 신앙인으로서 내가 세운 목표는?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세상에서는 내가 몸을 움직이지만,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모범을 보이신 하느님의 아들을 따라 살겠다고 약속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신앙인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복음에는 신앙인인 우리가 기대할 영광스러운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특별한 의도로 보여주신 것이기에, 우리가 지금 당장은 체험할 수 없는 ‘미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아름답고 환상적인 모습에 우리가 참여하려면, 육체의 짐을 벗어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의 삶을 벗어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 자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그저 놀라운 모습에 쉽게 참여하고 싶었던 제자들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선택한 세 명의 제자들에게 조차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광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 영광은 합당한 노력이 없다면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언젠가 얻고 싶은 영광 때문에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뜻을 실천한다면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소리도 됩니다. 우리가 격언으로 기억하는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에서도 삶의 진리는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이 편하고 쉽고 안락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이 나보다 쉽고 편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각자의 상황에 누구나 견디기 힘든 어려움은 함께하는 법입니다. 각자의 삶에 예고도 없이 다가오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좋은 본보기를 보이는 사람이 되느냐, 좋지 않은 기억이 되느냐가 달라집니다.  기쁜 것을 찾는 사람이라면 현실에 주저앉지 말고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이론(理論)은 누구나 압니다.

 

세상에서 편한 삶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는 우리가 아무리 힘든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예수님의 고통’에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내가 커다란 곤경에 빠져있다고 하더라도 그 곤란함이 ‘나이 99살이 되어서 얻은 아들을 번제물로 바쳐야 하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고통’에 비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엄청난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사람으로서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같은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죽기 얼마 전에야 하느님의 축복에 따라 아들을 얻습니다.  인생의 말년에 아브라함에게 그런 축복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에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아브라함이 따랐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특별한 자비를 입어 남다른 체험을 했기에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지 않고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할 심각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일어나는 현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현실을 이끄는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이라면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고 그가 보인 행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반대로 해석해서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신앙인의 목적은 하느님의 축복을 얻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축복은 내가 하느님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축복을 달라고 큰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하느님이 마련하신 그 축복은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빨리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축복을 얻는 사람들이 되려면, 깨끗한 마음으로 사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는 일은 출발부터가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는 자세로 살고 싶다면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려는 삶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죄와 떨어져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진정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다면, 우리를 죄로 유혹하는 세상의 삶을 과감하게 헤치고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모아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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