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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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37: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영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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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24 ㅣ No.760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37)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영성 ④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 섭리에 온전히 의탁

 

 

성녀 에디트의 일상 영성

 

하느님을 알고 세례를 받은 이후부터의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를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일관된 모습은 언제 어디서고 늘 하느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그분 안에서 살고자 했던 그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손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매일 일상의 삶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시는 모습을 감지하고 그분의 섭리에 온전히 의탁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가톨릭 신자로서 에디트가 살았던 전형적인 삶의 방식이자 그의 영성이었습니다. 에디트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선사해주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섭리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

 

우리는 이 점을 에디트의 삶의 많은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역경에 처했을 당시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과 함께하며 섭리적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알아들었으며 그 하느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겼습니다. 

 

예를 들어,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자, 에디트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 이면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알아들으려 했습니다. 그는 역경 속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가운데, 지인들에게 하느님의 섭리 그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에 대해 전하면서, 자신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에,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는 없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가 그런 확신에 찬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느님 손안에 있고, 착한 목자이신 하느님께서 그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섭리적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알았고 또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통해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

 

이러한 에디트의 모습은 훗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머물던 시절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우리는 에디트가 죽기 전까지 수용소에 머물며 지인들에게 남긴 몇 통의 편지를 통해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에디트는 어느 편지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하느님이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음을 깊이 체험하고 있다고 쓴 바 있습니다. 그는 삶의 어떤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언제나처럼 하느님이 거기에 현존하고 계심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통해 선(善)으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감지하고 그분의 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드렸습니다. 이러한 그의 의탁은 삶의 가장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자신을 동반하며 인도하심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존재의 허무함에 대한 인식에서 영원으로

 

사실, 에디트 슈타인의 이러한 하느님 체험은 자기 자신에 대한 체험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하느님이 누구신지 알아듣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이전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즉 자신의 본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의 허무(虛無)를 직시함으로써 진리를 향한 첫걸음을 떼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허무, 다시 말해 자신은 생명의 원천을 간직하고 있지 않으며 생명의 근원이신 절대자가 아니라면 한 줌의 재로 돌아가고 말 것임을 아는 것, 자신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그 생명의 주인이 끊임없이 생명을 선사하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듣게 되면서, 인간은 점차 그 절대자를 하느님으로 인지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에디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허무한 존재에 불과하다.… 나는 매 순간 허무 앞에 서 있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 나에게 존재라는 선물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허무에 불과한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매 순간 존재의 충만함을 더듬어 간다.” 

 

에디트는 이 글을 통해 허무에 불과한 우리 존재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하느님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에디트는 우리가 지닌 본성을 향해 눈을 열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비록 허무가 자리하지만 동시에 그 허무를 끊임없이 지탱해주는 존재의 근거, 생명의 원천으로 인도하는 실마리도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허무와 비참함 곁에는 하느님의 위대하심이 자리하고 있음을 그는 직관적으로 알아들었습니다. 80~90년이라는 짧은 세월을 살다 허무로 돌아갈 인생, 그러나 그 삶은 온 우주의 주인이자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매 순간 생명을 선사해 주셨기에 가능한 놀라운 기적입니다. 에디트는 오늘 우리 존재의 허무를 통해 영원을 바라보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1월 24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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