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연중 33 주일-다해-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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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8-11-13 ㅣ No.5

연중 33주일 (다해)

 

        말라기 3,19-20ㄱ  2테살로니카 3,7-12  루가 21,5-19

    1998. 11. 15.

 

오늘은 '평신도 사도직'을 강조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여러 본당에서는 사목 회장님들께서 강론하시곤 합니다.  본당의 경우에 따라서 다르긴 합니다만, 많은 경우 지난 한해의 본당 살림살이를 돌아보고 다음 해를 위한 재정보고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당에서는 사목회장님께 그 기회를 드리지 않고 욕심 많은 제가 다 하기로 했습니다.

 

교회의 전례력은 연중 34주간, 토요일까지 있습니다. 오늘은 연중 33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전례력으로 한해인 1998년 다해는 이제 두 주일을 남겨놓은 시점에 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끝'이라고 하는 때는 여러 가지 감정을 갖습니다.  그런 대로 계획을 세운 일들에 대해서 안도의 숨을 내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I.M.F라고 하는 반갑지 않은 친구를 만나서 그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애쓴 분들에게 올 한해는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기에 와 있는지,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시간을 허락해주신다면 나는 과연 나의 삶을 어떻게 꾸밀 수 있겠는지 새로운 생각도 해 봐야 합니다.  그것이 마침이면서 시작을 다시 지낼 우리가 해야 할 일 입니다.

 

오늘 연중 33주일, 평신도 사도직을 강조하는 주일에 우리는 세상 끝 날에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을 들으면서 세상 끝날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보고 체험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 세상에서 일어나는 보통의 일과 유사한 과정을 묘사하고 있기에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바램은 더 오래 살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래도 순간 순간의 최선을 위하여 마감의 자세를 돌이켜 봐야 합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 말라기 예언서의 말씀은 아주 짧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주제는 두 가지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의 끝이 다가왔을 때, 나는 어느 쪽에 속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서 현재 살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불에 닿기만 하면 봄기운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릴 검불처럼 가볍고 무게 없고 결실 없을 삶을 올 한해 살아왔는지, 아니면 하느님 두려운 줄 알고 살았기에 승리의 태양이 우리 앞에 비춰줄 때를 맞을 자격을 갖추며 살았는지를 판단해 봐야 합니다.  즉 구원과는 거리가 먼 삶으로 살아왔는지, 구원의 열매를 맺을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서 판정할 수 있는 자신은 없겠지만, 한번쯤 생각은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도 못했지만, 삶에서 올바른 정신을 갖고 사는 방법을 이야기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현재 보이는 아름다움의 바탕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몸은 이 세상에 있지만, 그 나머지 모든 것은 이미 하느님의 뜻에 완벽하게 일치하고 살 줄 아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살고 있는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부족한 힘을 하느님께 청해야 하는 것이 한해를 마감하는 이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삶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세상의 종말을 두려워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지 몰라도 저는 그렇습니다.  아직 이 세상에 더 많은 미련이 있기에 그렇지 않은가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미련을 깨끗이 털고 일어날 때에 나의 삶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행복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는 것인데도 그런 일들을 제 자신에게 적용시키기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면서 멋있는 돌로 치장돼 있던 눈에 보이는 지주(地主)를 감탄하는 일만으로는 참된 구원의 길로 가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 말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이겨내야 하며 때로는 그것이 우리의 목숨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견뎌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여하려면 첫 번째 독서 끝에 나왔던 것처럼 '하느님 두려운 줄 알고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을 피하는 올바른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언제 우리의 목숨을 요구할지 모르는 세상 끝 날에 좋은 몫을 차지하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서 찾아보아야 할 방법은 늘 한 가지 길로 흐릅니다.  그 대답은 게으르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이고, 수고하고 애써 노동하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삶의 본보기가 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실만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구원의 길에서 멀리에 떨어져있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하느님의 뜻에 올바로 살지 못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구원은 없다'는 심판의 선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세상의 완성을 향해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우리가 모르기에 넋을 놓고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 말씀 "말없이 일해서 제 힘으로 벌어먹도록 하십시오"라는 말을 기억하며 한해의 끝을 향하는 연중 33주간을 지냈으면 합니다.  잠시 우리의 삶의 자세를 봉헌하고 마음을 다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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