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2011-0423.....부활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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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4-23 ㅣ No.1036

부 활 성 야 - 가해
창세 1,1-2,2                      탈출기 14,15-15,1          이사 55,1-11
에제 36,16-17.18-28   신약독서:로마 6,3-11    복음: 마태 28,1-10
2011. 4. 23. () 등촌3
주제 :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기
오늘 저희에게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안겨주신 주님은 찬미와 찬양을 받으소서. 알렐루야!!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재현하는 부활대축일미사이고, 이 시간은 그 기쁨을 한 걸음 먼저 앞서서, 하루 앞서서 부활성야에서 그 기쁨을 노래하는 시간입니다.
 
해마다 부활대축일 전례를 거행할 때가 되면, 긴장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이렇게 강론시간에 되면, 그 긴장감은 모두 끝난 다음이지만, 부활성야미사를 시작하기 전, 성당입구에서 성당안의 전등을 끄고, 촛불을 축성할 준비를 하고, 준비한 부활초를 들고 행렬하기 전, 또 부활찬송을 하기 전에는 긴장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올해는 틀리지 않고 정성을 갖추어 부활전례를 잘 할 수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가진 부담감을 떼어낸지 이제 두 해째를 지내고 있습니다. 예전에 지냈던 본당보다 더 큰 곳에 왔고, 보좌신부님을 만났으니 행복한 것이지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사람은 때때로 이렇게 기쁨과 행복을 노래합니다만, 그 기쁨과 행복의 순간을 오래 간직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게 다가왔던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 짧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사람이라는 존재가 갖는 특징이 망각(妄覺)’이기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드러내는 특징의 하나가 망각이라고 할 수 있기에, 우리는 해마다 부활대축일을 지내고, 그 기쁨을 반복해서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며, 오늘처럼 부활축제 전례를 해마다 반복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부활성야에서, 우리는 여러 개의 독서와 복음을 읽고 들었습니다. 7일 동안 진행된 세상창조이야기(1독서), 이스라엘민족이 노예로 400년을 살았던 이집트 탈출이야기(3독서), 하느님을 따르는 백성에게 희망의 순간이란 어떤 것인지 얘기해주는 이사야예언자의 선언(5독서), 우리가 마음에서 더러움을 없애고 하느님을 올바로 대하고 맞이하도록 새 마음과 새로운 영을 주시겠다는 희망을 전하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선포(7독서)까지 4개의 구약독서와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죽음에서 벗어났으니 이제는 죄의 종을 벗어나 달리 사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안식일다음날 새벽 동틀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무덤에 계시지 않고 부활하셨다는 천사들의 선언을 담은 마태오복음에 이르기까지 5개의 독서와 1개의 복음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말씀들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어쩌면 이렇게 질문하는 것도 잘못일 것입니다. 어느 것이 중요하고, 어느 것이 중요하지 않은지 순서를 매기라는 잘못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기에, 특별한 한 가지를 더 중요하게 얘기하는 것이 사람의 한계이기는 하지만, 신앙의 모습에서는 세상과 달리 한 가지만을 중요하게 대하지 말고 좀 더 큰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復活)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낱말의 뜻을 얘기하고,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면 이 부활을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한다는 전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혹시라도 내가 부활하는지 아니면 부활하지 못하는지 체험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자살(自殺)하겠다고 덤빌 사람은 없겠지만, 작년에도 살았고, 내년에도 다시 부활대축일 미사를 거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이 부활이라는 낱말과 그에 앞서야 한다고 하는 죽음의 의미나 그 관계를 잘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목숨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진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영화에서는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 무척이나 밝은 세상으로 나갔다가, 그곳에서 너는 아직 올 때가 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고서 되돌아온다고 합니다만, 혹시라도 그렇게 놀라운 체험을 한 사람이 나에게, ‘나는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입니다!!’하고 말한다면, 나는 과연 그 말을 믿고 따를 수 있는지, 또 그렇게 하는 증언이 우리 신앙에서 기억하는 부활의 의미와 연결되는 것인지도 잘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활을 체험한 사람이 없는 곳에서, 부활에 관련된 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신비입니다. 경험과 체험을 중시하고 그것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세상에서, 현실로 체험하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일 수 있고, 신앙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것이라면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저도 죽었다가 부활한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육체의 힘과 그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일을 체험한 일은 있습니다. 그렇게 체험한 몇 가지 일들이 우리 신앙에서 얘기하는 부활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런 일들이 모여서 세상완성의 날에 하느님께서 제 삶에 선물로 주시는 것이 부활일 수도 있다고 저는 믿는 마음으로 삽니다.
 
내가 부활을 체험하고, 부활의 선물을 받을 사람이 되고 싶다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금 세상에서부터 부활을 내가 경험하고 살아야 합니다. 숨이 멈췄다가 다시 이어진 체험만이 부활은 아닙니다. 그것을 복음으로 선포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활은 예수님만 이루신 아주 특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부활대축일 전례에 참여한 우리 신자들 모두가, 하느님께서 세상완성의 날에 아주 크게 주실 선물을 미리부터라도 조금씩 맛보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기쁨은 내가 이웃에게 빌어주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부활의 선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 저희가 죽음을 얘기하는 무덤에서 뛰쳐나와 진정한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게 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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