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ㅣ 봉헌생활
유럽 수도원 기행: 그레고리오 성가의 본산 프랑스 솔렘 수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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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수도원 기행] 그레고리오 성가의 본산 프랑스 솔렘 수도원
로마에 돌아오자마자, 나와 블라시오 신부는 필립 아빠스에게 받은 감동이 사그라지기 전, 성탄 방학 때 얼른 솔렘 수도원을 방문하기로 뜻을 모았다. 필립 아빠스께 메일을 보냈더니 곧 답장이 왔다. 대단히 기뻐하면서 수도원 찾아오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써서 보내 주었다.
멀고 험난한 솔렘 가는 길
역에서 사르트Sarthe 강을 따라 약 3km를 달리다가 강을 건너니 곧바로 수도원이었다. 마중 나온 수사는 수도원 식당 안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우리가 늦게 온다고 따로 챙겨놓은 저녁식사를 온장고에서 꺼내 식탁 위에 차려놓았다. 수도원에 머무는 동안 우리가 앉을 식당 자리를 지정해 주고는 칼, 포크, 숟가락, 티스푼을 돌돌 말아놓은 하얀 식수건과 유리컵 하나씩을 나누어주었다. 솔렘에서는 접시를 공동으로 씻어도 위의 개인 도구들은 식탁에서 적당히 알아서 물로 씻고 식수건으로 쓱쓱 닦은 다음 식탁 아래 자기 서랍 칸에 보관한다. 끝으로 씻은 물을 쭈우욱 들이키면 이로써 초간단 설겆이가 마무리된다.
솔렘에서 치룬 첫 영적 전투
다음날 새벽부터 수도원 시간표에 따라 솔렘 공동체 속에 섞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성당 입구로 가니, 손님 담당 수사가 우리한테 각각 꾸꿀라(전례 때 수도복 위에 덧입는 커다란 망토) 한 벌씩을 옷걸이에서 골라 주었다. 담요처럼 묵직한 그걸 입고 성당으로 따라 들어가는데 제대 양쪽 기도석에 수사들이 이미 빼곡히 차있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아빠스의 신호와 함께 일제히 제대를 향해 좌향좌 우향우 하면서 두 손을 모으고 “하느님, 절 구하소서!” 하는 시작기도를 했다. 기도석에서 수사들 틈에 끼여 나도 자연스레 합장하고 몸을 제대쪽으로 돌리니, 저 앞에 우뚝 솟아 계신 아빠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치열한 기도의 전투를 앞에 두고도 아직 비몽사몽인 나를 향해 마치 ‘나를 따르라’ 하고 말없이 외치는 듯했다. 그런데 전투는 예상보다 훨씬 치열했다. 차가운 겨울밤공기가 코끝을 스칠 때마다, 머리까지 푹 덮어 쓴 꾸꿀라는 이불처럼 포근했고, 아담한 성당의 부드러운 벽과 기둥을 퉁기며 잔잔히 울려 퍼지는 그레고리오 성가 소리는 30분이 지나자 자장가처럼 달콤했다. 이곳을 찾는 신자들은 수사들의 기도하는 표정에서 구원의 기쁨을 읽는다고도 하는데, ‘나는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스스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전투는 그렇게 한 시간 동안 계속된 뒤 끝났다.
패잔병처럼 꾸꿀라를 끌며 성당을 나오니, 아빠스가 다가와 반갑다며 인사했다. 잠시 살짝 우울했던 마음이 싹 가시면서 내가 지금 어떤 행운의 기회를 누리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번쩍 깨달음이 왔다. 아빠스가 부탁했는지, 수사 한 분이 방에 찾아왔다. 성탄절 전례 준비 때문에 시간을 많이 낼 수 없어서 미안하다며, 저녁에 우리만 괜찮으면 수도원 소개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날 밤, 그 수사는 수도원 소개 책자를 들고 와서 솔렘 수도원 1000년의 긴 역사를 한 시간 동안 아주 짧게 요약해주었다.
그레고리오 성가 부흥의 산실
지금도 많은 지친 영혼들이 솔렘 수도원을 찾는다. 새벽부터 밤까지 성당에서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을 들으면 누구라도 신비로운 평화를 느끼게 될 것 같다. 정말 이곳 솔렘 수도원의 생활은 영화 “장미의 이름으로”에서 본 중세 수도원 분위기가 물씬 느껴질 만큼 고풍스럽다. 왠지 여기야말로 진짜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면서도 뭐랄까, 뭔가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약간 불편한 느낌도 있었다. 내가 수도원에 벌써 한 이십 년 살면서도 세속 때가 많이 묻은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내 주변의 덕망 있는 수사들도 간혹 솔렘에 대해 나와 같은 느낌을 말씀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아름다운 충격과 전율
가끔 왜관 수도원을 찾는 한국 신자들도 솔렘 수도원을 찾는 신자들이 하는 말과 비슷하게, ‘수사님들의 그레고리오 성가 소리에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고백한다. 나 역시 이런 느낌에 몰입되어 아예 수사가 되기까지 했지만, 프랑스의 유명한 루이 부이에Louis Bouyer 같은 신학자는 전례 부흥의 이런 경향에 대해 솔렘 수도원을 사정없이 비판했다. 그런 식으로 옛날 모습을 무조건 그대로 재현해놓고 부흥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죽은 개구리에 전기 충격을 가해서 개구리가 파닥파닥 움직이게 해놓고는 개구리를 살렸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까지 말했으니, 비판도 보통 심한 비판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신학적 성찰이 그리 예리하지 못해서 그런지, 나의 경우도 많은 일반 신자들처럼 메시지보다 이미지 때문에 마음이 더 많이 움직이는 편이다. 솔렘 수도원 전체에서 풍기는 거룩한 이미지들이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다. 내가 아주 예전에 느껴봤던 수도생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내 안에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솔렘 수도원에서 받은 아름다운 충격 덕분에 그때 내 심장이 찌릿찌릿, 내 사지가 파닥파닥 움직였다.
마침내 일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왔다. 솔렘에 있으나, 로마 안셀모 수도원에 있으나 생활은 변하지 않는다. 늘 기도하고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며 하느님을 찾는다. 그런데 여기서는 가끔 성가 부르는 것이 고역일 때가 있다. 노래할 때 음이 제대로 안 맞아서 서로 눈을 흘길 때도 생긴다. 아주 가끔은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화도 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때 나는 느낀다, 내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깨닫게 된다. 영성의 아름다운 이미지는 삶의 리허설이고, 참고 인내하는 것이 삶의 본무대라는 것을. 솔렘 수도원만큼 그레고리오 성가를 잘 부르지는 못해도 우리 왜관 수도원에 살면, 참고 인내할 게 많아서인지, 개구리가 펄펄 살아서 뛰어다니는 것 같다. 천 살 잡수신 노인의 입장에서 볼 때, 백 살 된 어린아이의 모든 질풍노도는 행복한 성장통이지 않을까. 이것이 내가 솔렘 수도원을 부러워하면서도, 솔렘 수도원이 아닌 왜관 수도원에 더 큰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이유이다.
[분도, 2010년 겨울호, 글 · 사진 최종근 파코미오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0 1,843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