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7일 (월)
(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 손자선 토마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99

성 손자선 토마스(?-1866, 농부, 병인박해  때 교수)

 

 

성 손자선 토마스는 충청도 홍주 거더리 마을의 3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1866년 3월 거더리에서 안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가 체포된 후 덕산 관아로부터 안 주교를 체포할 때 압수한 돈과 물건을 찾아가라고 기별을 받았으나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어서 그는 혼자서 그 물건들을 찾으러 덕산 관아로 갔다가 체포되었다. 덕산 관장은 손자선이 천주교인임을 알고 옥에 가두어 고문하며 배교를 강요했으나 굴하지 않자 해미로 보냈고, 해미에서 손자선은 두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심한 고문과 심문을 받았으나 배교하지 않았다. 결국 공주 감영으로 이송된 손자선은 5월 18일 공주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

 

손자선은 충청도 홍주 거더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3대째 내려오는 교우집안으로, 아버지와 형은 1868년 무진년 박해 때 순교하였고, 그의 당숙 손 니콜라오도 순교하였다. 부인과 함께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중심으로 전교했으며 순교 자료를 모아 성직자들에게 전하였다.

 

1866년 3월 거더리에서 안 다블뤼 주교가 체포된 후 덕산관아로부터 압수한 물건을 찾아가라는 기별을 받았으나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손 토마스는 혼자 덕산관아로 가서 찾아온 사유를 밝혔다. 이때 원님이 천주교 신자냐고 묻자, 그는 신자임을 밝히면서 자신은 사실 죽음도 두렵지만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배교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토마스는 그 자리에서 즉각 체포되었고, 원님은 갖은 고문으로 그의 의지를 꺾으려고 애를 썼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다리를 묶어 거꾸로 매달게 하였다. 그리고는 포졸들이 토마스의 입에 온갖 쓰레기를 쏟아 부으며 "야, 좋지!" 하고 놀려댔다. 토마스가 "좋습니다" 하고 응수하자, 포졸들은 "그래, 무엇이 좋단 말이냐?" 하고 되물었다. "나는 며칠동안 세수를 못했는데 여러분들이 내 얼굴을 씻어주고 있으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니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피를 흘리게 한 죄인에게는 이같이 좋은 일이 없으며 또한 목이 몹시 탔는데 쓸개와 식초 대신 이런 것들을 내 입에 넣어주니 나는 마치 내가 범한 죄들을 마셔버리는 듯하여 무척 즐겁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후 토마스는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며 더욱 참혹한 형벌을 받았고, 마침내 공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손자선은 그곳 원님이 "네가 끝까지 배교하지 않는다는 증표로 네 손으로 네 살점을 떼내든지 아니면 피를 보이든지 하여라" 하고 말하자 즉시 자기 이빨로 손등을 물어 뜯었다. 원님도 어쩔 도리가 없어 "이젠 너는 살 길이 없구나" 하자 "죽어도 좋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결국 1866년 3월 30일 공주 옥에서 목을 졸려 순교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다. [경향잡지, 1996년 3월호]

 

[* 편집자 주] 손자선 성인의 순교 당시 나이가 위의 경향잡지 원고에는 23세로 나옵니다. 28세에 순교하셨다는 말씀이 있어서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간행된 "한국가톨릭대사전" 제7권을 확인해 보니 출생연도가 물음표로 되어 있기에 이를 수정했습니다. 공신력있는 "한국가톨릭대사전"의 내용을 따라 순교 당시 성인의 나이에 대해서는 그냥 물음표로 두겠습니다. 추후 정확한 출생 연도가 확인이 되면 그 때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76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