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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쁨 해설26: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는 새로운 관계의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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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15 ㅣ No.682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26)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는 새로운 관계의 수용


'톡'하는 손가락 끝에 사랑의 온기 전해질까

 

 

오늘날 사람 사이의 소통 수단의 발전은 가히 혁명적이다. 원하는 사람끼리의 소통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도 손쉽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 관계망을 통해 원하는 정보도 안방에서 온 세상을 주유하며 얻을 수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러나 걱정도 있다. 이와 같은 편리함이 낳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교황은 권고문에서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적극 수용하도록 촉구하였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순기능을 잘 이용하길 바라셨다.

 

 

진정한 소통의 부재 

 

그렇다면 우려하는 역기능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소통 수단의 발전이 진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실제적 만남과 나눔을 증진시키고 있는지 묻고 싶다. 사람 사이의 친교를 가능케 하고 서로의 완성에 기여하고 있는가? 소외된 사람까지 아우르며 모두의 행복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되묻고 싶은 것이다. 혹 그 역기능 때문에 점점 더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원치 않으면, 리모컨 스위치 하나로 외부 세계와의 단절이 가능한 사회가 되었다. 이를 일상화하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지 않는지 조심스레 묻고 싶다. 사람 사이의 실제적 만남과 사귐의 불편을 인내하며 감수하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남의 세계를 자신의 의식 속을 들여다보듯 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살피면서도, 실제의 세계에서는 서로 눈을 바라보며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여 이를 회피하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판단이 기우(杞憂)였으면 좋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혼자만의 세계 속에 갇혀 살고 있는가? 스마트폰 속의 세계에 빠져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건널목을 건너면서도 손바닥에 뭘 쥐고 거기에 열중한다. 학교 벤치에 앉은 학생들끼리도 각자의 세계에 빠져 대화가 없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온 세상이 중독되어 가면 갈수록, 사람 사이에는 심각한 관계 단절이 체험되고 있다. 교황은 이를 우려했다. “많은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서 벗어나 자기 사생활의 안락함 속으로 또는 가까운 친구들의 좁은 울타리 속으로 달아나며 복음의 현실적인 사회적 측면을 포기하고자 합니다”(88항).

 

 

복음을 전하려면 얼굴을 마주 봐라 

 

복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가? 교황은 말한다. “복음은 과감히 다른 이들의 얼굴을 마주 보고 만나라고, 곧 그들의 육체적 현존과 만나라고 끊임없이 초대합니다. (…) 강생하신 하느님 아드님에 대한 참 신앙은, 자기 증여, 공동체의 소속감, 봉사, 그리고 다른 이들과 직접 만나 이루는 화해와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강생을 통하여 온유한 사랑의 혁명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88항).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음을 말했다. 그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 그분이시기 때문이다. 

 

교황은 현대 사회의 유사 영성 운동의 폐해를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면서 ‘영적 소비주의’ 그리고 ‘병적 개인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타인과의 관계가 배제된 운동들이다. 오로지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 존재하는 직접적이고 개인적 관계밖에 없다. 뉴에이지 운동, 기 수련, 마음 수련 등은 이미 우리 사회를 한번 흔들어 놓은 것들이다. 교황은 현대 사회에서 이와 같은 경향이 나타나는 이유에 주목했다. 진정한 하느님을 만나고자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가 힘써야 함을 역설했다(89).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대중 신심’을 제시했다.

 

 

대중 신심으로 신앙의 갈증 풀어야 

 

대중 신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스도인 대중의 신앙심 표현을 말하는 것으로 성인들의 유해 공경, 성당 방문, 성지순례, 거리 행렬, 십자가의 길, 종교 무용, 묵주기도, 메달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신심 행위를 의미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4항 참조). 교황은 대중 신심의 고유한 형태는 관계를 증진하는 힘이 있기에 개인주의적 도피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했다(90항). 사목자들이 이 대중 신심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길 원했고 적절하게 활용하기를 부탁했다. “대중 신심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와 성인들과 맺는 인격적인 관계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심들은 몸과 얼굴이 있습니다”(90항). 한국 사회 안에서 대중 신심의 활성화와 그 적극적 표현 방법 그리고 신학으로의 발전은 깊이 연구해볼 과제라고 생각한다.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라 했다. ‘함께 사는 불편’을 감수하라고 했다. 하느님 사랑에 의탁함으로써 이 불편은 극복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형제의 일상의 거룩한 위대함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서로 치유된다. 이것을 ‘신비적이며 관상적인 형제애’라고 했다. “또한 이 형제애는 하느님 사랑에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고, 좋으신 아버지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다른 이들의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것입니다”(92항). 더불어 살면서 원수까지도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공동체를 빼앗기지 맙시다!” 

 

[평화신문, 2015년 6월 14일,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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