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2-0923...주일...한국순교성인들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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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9-23 ㅣ No.1312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대축일 [0920]

지혜서 3,1-9       로마서 8,31-39      루카 9,23-26

2012. 9. 23. (주일). 등촌3.

주제 : 신앙의 자세를 돌아봄

세상살이가 쉽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을 벌고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자꾸만 멀어진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신앙인으로 잘 산다고 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신앙인이라는 사람들이 자기 삶을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천국에서 사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힘겹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땅에서 신앙 때문에 목숨을 내놓고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사람들 가운데, 요한바오로2세 교황님께서 성인으로 선포하신 103위 성인성녀들을 특별히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런 날에 그분들의 뒤를 이어서 사는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한 이 땅의 성인들을 기억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920일이 되면, 해마다 반복하는 전례기념일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와 삶의 태도를 가져야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요즘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해서, 과거 세상에서 순교자로 목숨을 바쳤던 것이 더 쉽고 편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버리거나 내려놓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오늘 루카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알려줍니다.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고, 그 말씀을 그대로 듣는 것보다는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선언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고는 합니다만, 우리가 쉽게 꺼낼 법한 이야기는 나는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서 죽음으로써 그것을 드러내려고 신자가 된 것도 아니고, 나는 내게 오지도 않은 고통을 미리 앞당겨서 그걸 겪으려고 신자가 된 것도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한 세상에서 뭔가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의 위로와 도움을 받으며, 뭔가 이익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얻으려고 신자가 됐다고 말하기 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가 신앙인으로 사는 이유나 목적은, 내 목숨도 구하는 것이 첫째 목적이고, 십자가로 표현되는 고통도 피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이 세상 삶의 끝에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영광에 곧바로 참여할 수 있다면 더욱 더 좋은 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말씀, 신앙인의 앞길을 예고하는 말씀에 그런 내용은 없고, 우리가 반기지 않을 힘겨운 내용들만 전하고 있습니다. 이 부조화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시작해서, 이 세상의 것만 있고, 이 세상의 일로써 끝나고 만다면 우리가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거나 걱정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고 말할 것이고, 굳이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살 이유도 없고, 다른 사람과 협동하는 문제를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삶이 그렇게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돕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신앙은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지금부터 2100년 쯤 되는 시간 전(=지혜서의 저작시기, 아무리 빨라도 BC50)에도 그렇게 하는 삶의 반성은 있었다고 오늘 1독서, 집회서는 말합니다. 세상에서 의롭게 산 사람이 왜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삶에는 더 큰 고통을 왜 겪으면서 살아야 하는지, 또 누구나 악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의롭게 산 사람이 더 빨리 죽어야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아주 큰 영광을 약속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삶에 고통이 오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세상에서 다가오는 풍파에 눌려서, 신앙을 쉽게 등한시하고, 하느님의 뜻을 소홀히 하면서도 자신은 달 살고 있다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삶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탓하는 비난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 비난은 자기 생명을 다하는 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비난은 아무리 옳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삶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성인은 당신을 죽이려고 늘어섰던 12명의 희광이들 앞에서 나는 오늘 천주를 위해서 죽는 것이고, 이 죽음으로써 나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된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만, 우리가 이와 똑같은 삶의 자세를 가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땅에서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신앙의 증거자, 우리의 선조들, 우리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면서, 그분들의 본보기를 본받으려는 기도를 할 시간입니다. 기도만 한다고, 좋은 일이 나에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시작은 정성을 담은 기도이어야 하고, 그 기도를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순교하신 성인과 성녀들이여, 당신들의 도우심을 청하는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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