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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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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6-17 ㅣ No.459

2012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화해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명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요한 20,19)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일치, 세상이 하나 될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셨던 주님(요한 17,11이하 참조)을 기억한다면, 평화란 화해와 일치를 향한 노력의 결실임을 우리 신앙 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를 하느님과 화해시켜 주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로마 5,10-11참조). 하느님과 우리를 참사랑으로 화해시켜 주시고, 그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화해시켜 참된 일치를 가능케 하시고자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신앙인이 무엇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명백히 제시해 줍니다.

 

세상을 화해시켜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근본적인 삶이라면, 분단의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한국 교회에 주어진 시대적 소명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참된 일치를 향해 나아가도록 함께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더욱 깊어가는 분단의 아픔

 

민족 해방과 더불어 시작된 분단, 그리고 이어진 끔찍한 전쟁, 그 후 지속된 이념 갈등의 역사가 벌써 60년의 세월을 넘어섰습니다. 휴전의 상황 속에서 언제든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늘 한반도를 감싸고 있고, 그로 인한 크고 작은 충돌 속에 아픔과 상처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잠시 동안의 화해의 기운이 엿보이기도 하였지만, 세상의 악은 그 소중한 기회를 늘 앗아가기만 하였습니다.

 

분단이라는 상황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큰 상처가 되어 남아 있습니다. 곧 다시 돌아오겠다는 굳은 약속이 마음속에 피맺힌 응어리가 되어 가족과 고향땅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이산가족들이 있습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있고, 다시 만날 그날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사람들 역시 세월의 무게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념의 문제와는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 탈북하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습니다. 낯선 땅에서 갖은 인권 유린을 당하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는 그들도 역시 우리의 동족이며 가족들입니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늘 불안하게 생활하다 북송의 위기를 맞아 절규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남북 분단의 처참함을 다시금 보게 됩니다.

 

목숨을 걸고 험난한 국경을 넘고 또 넘어 우리나라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벌써 23,000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차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새로운 체제에 정착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도 힘겹지만, 정작 그들 마음 안에 남아 있는 큰 상처는 두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입니다. 그들 역시도 분단의 시대가 만든 새로운 형태의 이산가족임에 틀림없습니다.

 

 

한반도의 현재

 

지난해 말 북한 지역에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북한의 권력체계와 남북관계에도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지금 북한 내부의 상황은 과거와 다름없이 움직여 나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모습으로 남과 북이 대치 상황을 이루며 서로를 자극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 한반도가 처해 있는 상황을 ‘위기’로 진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위기’란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내포하는 표현입니다. 위험을 고조시켜 전쟁과도 같은 끔찍한 공멸의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함께 마음과 지혜를 모아 현 상황을 미래를 위한 기회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위기관리란 전쟁의 승리를 위해 힘을 무한대로 키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슬기롭게 상황을 조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차원의 위기관리가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반도가 위험천만한 군비경쟁의 장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이 넘쳐나는 평화지대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통일을 향한 발걸음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통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통일비용’과 관련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공론화 시키려는 시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통일은 지역과 지역이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즉 주민통합이 그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20여 년 전 통일을 맞이하고, 그에 따른 어려움을 아직까지도 겪고 있는 독일의 경우를 살펴볼 때, 주민통합의 중요성이 더욱 잘 드러납니다.

 

따라서 통일을 위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잦은 만남, 즉 활발한 교류와 협력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하나로 나아갈 수 있는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종교?사회?문화 차원의 만남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의 허용과 나아가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합니다.

 

현재 남한이든 북한이든 우리가 안고 있는 경제 문제의 가장 확실한 해법은 남북 경제 교류와 협력에 있습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은다면 경제적 동반 성장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며, 또 그것이 남북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남과 북의 주민들이 함께 협력하고, 함께 성장하며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넓어진다면 그것이 통일 시대에 겪을 수 있는 혼란을 줄여주는 중요한 토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더욱 절실한 기도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평화는 우리 신앙인들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은 단지 일부 정치인들의 몫이 아니라, 바로 우리 신앙인에게 주어진 기본 사명입니다. 이웃의 불행과 아픔 그리고 상처를 외면하는 완고함(마르코 3,5 참조)에서 탈피하여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7) 하신 주님의 유일한 계명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반도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마르코 9,29 참조)는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합시다. 분열과 갈등의 먹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우선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평화의 길’(루카 1,79 참조)로 이끌어주시는 주님께 간절한 마음을 모아 봉헌한다면 주님께서 기꺼운 마음으로 응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평화의 사도로 불리움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심어주시는(에제키엘 36,26 참조) 주님께 의탁하며 세상의 평화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됩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노력은 주님의 은총으로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2012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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