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1-1120...그리스도왕대축일...하느님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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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11-19 ㅣ No.1120

연중 제 34 주일 - 가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

에제키엘 34,11-12.15-27            1코린 15,20-26.28              마태 25,31-46

2011. 11. 20.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선언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큰 논리는 힘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을 향해서 자랑할 힘이 있으면 살맛난다고 말할 세상이고, 드러낼 만한 힘이 없다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그 힘이 약하다면 주눅 든 모습으로 살면서 자신을 위한 소리조차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힘의 논리만 판치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에서 제 모습을 갖추고 허리를 펴고 할 말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고, 힘이 세다고 하는 사람이 빨리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할 줄 안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와 무슨 힘으로 살아야 하는지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연중 34주일,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간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마지막이라는 표현에 따라서 느낌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만, 사람은 같은 기간을 지내면서도 시작과 끝을 정하고 그 기간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하기도 하고 지낸 다음에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을 찾아내고, 그렇게 해서 알아낸 것을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올바로 보충하겠다는 결심도 합니다.

 

오늘은 2011년도, 전례력의 마지막 주간을 시작하는 날이며 동시에 성경을 우리 삶에 가까이 할 방법도 찾는 성서주간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주간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우리들 마음에 와 닿는 감흥은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저마다 다를 수도 있고, 내가 세상에 살 수 있는 기간이 1주일은 더 남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면 어떤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시작과 끝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평가는 반드시 뒤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잘 한 일에는 상이 따르는 법이고, 정성을 기울이지 못해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일에는 벌칙이나 손해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삶에 이런 기준을 적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인의 삶에 대해서도 같은 조건을 적용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오늘 복음말씀은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판단기준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너희 오른쪽에 선 사람들은 <세상의 삶에서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이웃들도 생각한 사람들>이니, 너희는 내가 세상창조 때부터 준비한 나라를 차지하라고 선언하시고, 너희 왼쪽에 선 자들은 저주받은 자들이니,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고 선언하십니다.

 

세상에서는 얼마나 이름을 드날렸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뻐기고 살았거나 자랑할 만한 일을 했는지에 따라서 평가를 합니다만, 오늘 복음은 사람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기에 그들을 사람으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사람들을 세상에서 어떻게 대했는지 그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 세상의 기준과 하느님께서 적용하실 기준의 차이입니다.

 

세상과는 그렇게 다른 기준에, 오른쪽으로 자리 잡은 사람들은 나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 그것 때문에 상을 받는 일은 과분하다고 말하는데 비해서, 왼쪽에 자리 잡은 자들은 어찌 그리 비정상적인 방법을 들이대면서 우리의 삶을 심판하느냐고 항의합니다. 심판자의 오른쪽과 왼쪽에 자리 잡은 자들의 서로 다른 판단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의 모습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요?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할 기준을 우리가 태어날 때에 미리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충분히 알거라고, 또 그렇게 살았을 거라는 자세로 심판하십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미리 알고 그에 맞춰 사는 제대로 산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늘 심판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착각하지 말아야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판기준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내가 어떤 대우를 받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행동을 했느냐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신앙인들이 자기 삶을 돌이키는 얘기를 듣다보면, 그에 알맞은 올바른 자세보다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음을 탓하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내가 받을 것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나는 좋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심판자 앞에서 앞뒤가 바뀐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의 이러한 판단은 예수님시대로부터 500년 이상 600년 가까운 세월 전에도 통했던 삶의 기준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비슷한 내용을 전하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에는 심판에 따른 벌칙내용은 없습니다. 사람이 쉽게 두려워할 것은 벌칙이지만, 사람의 삶을 올바로 이끄는 것은 벌칙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인의 삶은 부활을 향합니다. 부활을 향한다는 것은 벌칙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축복을 찾는다는 말로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이러한 축복의 표현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상 삶에 끝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먼저 올 것을 말한다면 세상에서 내 목숨이 다하는 날이고, 나중에 올 것을 말한다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당신의 뜻을 펼치실 완성의 날에 올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고백하고, 그분의 심판이 나에게 떨어질 때, 자비와 너그러우심으로 함께 하기를 기다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을 심판하실 분의 기준을 미리 아는 사람들로서 바르게 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잠시 기도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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