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1-0925.....선인과 악인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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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9-25 ㅣ No.1095

연중 제 26 주일 (가해)

에제키엘 18,25-28       필리피 2,1-11      마태 21,28-32

2011. 9. 25. 등촌3.

주제 :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에 대해

사람은 세상에서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면, 사람은 그 행복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교중미사---환영미사에 추가>

오늘 이 자리에는 아주 특별한(?) 분들이 함께 하셨습니다.

특별한 마음으로, 준비된 자신의 마음으로 오셔서 앞자리에 앉으신 분도 있을 것이고, 이웃이나 가족의 간곡한 손에 이끌려, 오늘 이 자리에 처음 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되었든, 성당이라는 곳의 낯선 분위기를 만나고 있는 여러분이 우리 신앙공동체의 사랑의 힘을 통하여 낯선 분위기를 이겨내고, 하느님이 주시는 행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시기를 함께 기도........

오늘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행복을 얻는 길에 때로는 도움을 주는 힘으로, 때로는 방해꾼으로 등장하는 선과 악에 관한 문제입니다. 선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준다고 할 것이고, 악은 우리를 행복에서 멀리 떼어놓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선과 악이라는 표현을 바꾼다면, 내가 선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느냐 아니면 악한 사람으로 살아도 좋으냐에 대한 문제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기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듣게 하시려고,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서로 다르게 말도 하고 행동도 한 두 아들 중에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질문을 들으면, 흑백논리나 양자택일의 논리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내 앞에 놓인 것들 가운데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맙니다. 그 안에 선이 있든지 악이 있든지 보지 못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서두르다보면 판단이 틀어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맏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고 아주 쉽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올바른 대답을 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사람을 말로 하는 대답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질문하시고 난 다음, 들려온 대답이 옳다고 하지도 않으셨고, 그르다는 평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일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인 것은, 나중에 뉘우치고 행동한 맏아들이었다는 사람들의 대답을 예수님은 인정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쉽게 대답했던 사람들을 탓하기에 앞서, 예수님께서 질문하신 의도를 알아야 할 일이고,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대로라면, 옳은 대답만 하고 행동하지 않은 둘째아들보다는 말은 비록 다르게 했지만 뉘우치고 행동했다는 맏아들의 태도가 더 낫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큰아들은 얼마의 시간도 견디지 못할 말을 행동에 앞서서 왜 했느냐고 물어야합니다. 어떤 대답이 가능하겠습니까?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또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죽을 것이라는 말씀은 이해할 수 있겠는데, 악인이 자기가 지은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자기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면, 내가 지금 세상의 어릴 때부터 착하고 선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지는 않을까요? 이런 소리를 그저 말로만 알아듣는다면, 인생의 마지막에 회개하고 하느님의 청하면 하느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을 얻고 싶은 자세에 따라, 우리는 하느님을 너그러운 분으로 대할 수도 있고, 아주 옹졸한 분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악인이 삶의 자세를 바꾸었다면, 그는 무슨 생각으로 올바른 길로 돌아섰으며, 그렇게 돌아설 사람이 처음에는 어째서 악인으로 살았을까 질문해보자는 것입니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악인이 삶을 바꾸어 공정과 정의를 실천한다면, 그것은 그의 삶에 갑자기 다가온 엄청난 위협이나 파멸을 두려워하여 사람의 기준에 따라 바꾼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여 다르게 살기로 작정한 결심에 따른 행동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살이에 선과 악의 문제는 몇 마디 말로 되지 않는 아주 복잡한 문제입니다. 내가 가는 길이 선의 길이라고 말한다면, 내 삶을 바꾸어 더 좋게 살겠다고 노력할 것은 없을까요? 아니면 내가 지금 선의 길을 가고 있다면, 하느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는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지만, 사람으로 태어나시면서 하느님의 특권을 내려놓으셨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셨고, 자신을 십자가의 제물로 다시 봉헌하셨다는 것이 바오로사도의 가르침입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예수님이 바친 정성을 보시고 다시 사람의 세상에 구원의 선물을 주셨다는 것이 바오로사도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본보기를 알게 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어떤 믿음에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까? 세상이 구원된다는 행복한 일에, 나는 어떤 노력과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인지도 살필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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