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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한국 사회 부부 관계의 현실과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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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70

한국 사회 부부 관계의 현실과 진단

 

 

결혼식에 입장하며 자신이, 결혼하는 세 쌍 중 이혼하는 한 쌍이 될 수 있음을 상상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결혼을 해서 10년을 넘게 멀쩡히 잘 살아도 이혼할 가능성의 50%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이혼을 예상하며 결혼하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현실은 둘이 하나 되는 미래를 꿈꾸며 결혼하는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 제도는 여타 제도에 비해 강력한 이데올로기와 유지 기제를 깔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적 이혼율을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혼은 혼인 관계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곧 함께 살아 왔던 아내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남녀의 분리를 뜻하는 것이다. 가족 안에서 아내와 남편이라는 이름의 남녀 문제는 가족 집단의 해체로 직결되고, 여기서 2차 3차에 걸친 가족 분리가 이루어진다. 이혼의 사유가 부부의 불화에 따른 것이라는 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사회는 번번이 수치로 확인하곤 한다. 통계청에서 내놓은 이혼 사유에 관한 자료에서도 80%가 부부 불화로 헤어진다고 드러난다. 이혼 문제는 엄밀히 말해 부부의 문제요 남녀의 문제에서 출발해서 가족의 붕괴로 드러나는 사회 문제인 것이다.

 

 

1. 부부 관계 기대의 변화

 

이혼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 부부 관계의 특성과 현실이 그대로 녹아 나온다. 시대에 따라 가족 구조의 형태와 내용이 변화를 하듯 이혼을 하는 이유도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여성과 남성이 공감하는 동반의 내용과 부부 관계에 대한 기대의 양상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되었든지 부부 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어그러져 있고 이에 대한 표현 방식이 더욱더 적극적이 되고 있음이다.

 

이혼 상담 현황을 보면 남성보다 여성이 6배 정도 많지만 실제 이혼 소송 청구에서는 남성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혼을 상담하는 여성의 수가 계속해서 늘고 있는 현실은 부부의 불화가 이혼으로 유도되는 과정임을 볼 때 이혼율 증가의 잠재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혼 사유는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바람직하지 못한, 의미 없는, 또는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역으로 부부 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가 비춰지는 것이다.

 

5, 60년대에는 배우자의 부정 행위가 남녀 모두에게 중요한 이혼 사유였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그 비율이 낮아지는 추세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배우자의 부정 행위는 과거 이혼 사유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지만 1990년대 이후 20%대로 낮아진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요인으로 높아진 교육 수준과 1980년대 이후 들어오면서 여성들의 경제적 능력 향상, 법제도의 변화, 여성들의 의식 변화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배우자의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이혼 사유로 꼽는 여성은 증가 추세에 있다. 가정 폭력 등을 무조건 참고 숨기던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여성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1990년대 들어 무려 4배 이상 급증한 60세 이상의 황혼 이혼의 경우 여성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80%가 넘고, 남편의 가부장적인 권위 의식으로 비인간적인 대우가 주된 요인으로 특징지어진다.

 

요즈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 대화 단절, 애정 결핍 등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다. 구체적이고 생존과 관련된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정신적으로 자신이 인간으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과 무력감이 더 이상 혼인 관계를 유지할 의미를 상실하게 하는 주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혼의 현실에서 드러나는 부부 관계의 가장 큰 갈등 요소로 부각되는 것은 바로 동반자라는 이름 값의 기대에 못 미치는 관계적 특성에 있다. 이제는 특정 연령층이 아닌 사회 전반에서 부부 관계의 인권 지수는 평등 지수라는 개념이 성립되고 있는 것이다.

 

 

2. 남녀 평등 지수와 여성 권한 지수의 갈등

 

결혼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회적 계약으로 성립되는 것이라 볼 때 가족은 분명 사회적 관계로 출발하는 집단이다. 사회적 관계가 혈연적이고 생물학적 관계망을 구성하는 시초가 된다는 말이다. 결혼 외적 영역에서 드러나는 남녀 관계의 양상으로부터 가족 영역 안에 있는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자유롭지 못하다.

 

UNDP(유엔개발계획)에서 발표한 우리 사회 남녀 평등 지수는 130개국 중 37위이다. 이는 1인당 국민 소득 순위인 38위보다 높다. 우리 나라의 경우 교육 관련 지표인 문자 해독률과 취학률은 남녀 모두 선진국 수준으로 매우 높다. 이것이 남녀 평등 지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여성 권한 척도로 들어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여성 권한 척도는 여성 의원 비율, 행정 관리직, 전문 관리직, 소득 구성비 등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각국 여성들이 정치 경제 활동과 정책 결정 과정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점수로 환산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여성 권한 척도는 인도네시아나 방글라데시와 같은 경제 수준이 낮은 국가 수준에도 못 미치는 116개국 중 90위이다.

 

여성 권한 척도가 이렇게 낮은 이유는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의 여성 참여율이 극도로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는 성별에 따라 나뉘어지는 공·사 영역의 구분이 그만큼 완고함을 뜻한다. 성별 역할 의식이 다른 여러 성별 고정 관념보다 강하게 성별 체계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 평등 지수로 짐작하건대 부부 관계에서 부딪치는 여성과 남성의 의식 수준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 의식 수준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데 권한의 문제로 오게 되면 성별이 하나의 신분이 되어 엄청나게 수위가 달라진다. 일종의 성별에 따라 부여되는 권한 차별인 것이다. 이것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아내와 남편이 겪는 현실이 된다. 합의하지 못하는 권한 차별로 부부 권력 관계가 강화되고 주인인 남자와 그를 보조하는 여자로서의 남편과 아내의 위치가 성립된다.

 

평등하지 못한 부부 관계는 결국 한쪽이 다른 한쪽의 인간적 권리를 훼손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가부장적 권위 의식에 따른 비인간적 대우'가 이혼의 중대 사유가 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 부부 관계의 평등 지수를 드러내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평등 부부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실시하고 있는 모 신문사의 평등 부부상 수상자의 평가 기준을 보면, 의사 결정 과정이 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재산권이 평등하게 행사되고 있는가, 육아에 부부가 동등하게 참여하여 공동 책임을 실천하고 있는가, 상호 발전할 수 있도록 모자라는 점을 서로 보완해 주는 관계인가, 부부간에 서로 다른 점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가,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는가, 가사 노동에 부부가 협동하는가 등을 묻고 있다.

 

공동 책임, 공동 결정, 상호 존중이라는 주요 개념은 동등한 관계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사항들이다. 평등한 부부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공평한 삶의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평(equity)이 평등(equality)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평등 부부 지수로 나오는 재산권, 의사 결정권, 역할 분담 내용, 상호 인정과 헌신의 항목은 인간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신체적, 문화적 권리 등과 상통한다. 평등의 기대치와 현실에서 용인되는 권한이 만들어 내는 갈등이 태풍의 눈으로 부부 관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3. 가족 제도에 내재된 부부 평등의 걸림돌

 

1) 부권주의와 부부 권력 관계

 

문제는 전통이라 일컬어지는 한국의 가족 제도에서는 결코 여성과 남성의 공평한 결혼 조건이 구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일부일처제는 철저한 부계부권 가족 제도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다. 연애 과정에서 다분히 수평적이었던 남녀 관계가 결혼을 하면서 수직적 관계로 바뀔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원인은 혼인이 부계부권 가족 제도의 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유교주의적 부계부권 가족 제도의 축은 아버지(父)와 아들(子)의 관계이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들이라는 존재가 있을 때이다. 아들을 가질 때 가족 제도의 주변에 머물러 있던 며느리라는 위치에서 어머니라는 위치로 옮겨지고 타성(他姓)의 가족 성원에게 한 가족으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부-자 관계로 가족의 대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떠받들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부계는 철저한 부권의 구조에서 유지된다.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권한은 가족의 의사 결정권뿐 아니라 경제적 소유와 분배의 권한 그리고 배우자의 신체적 성적 소유 권한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은 범주이다.

 

유별(有別)이라는 단어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횡적인 영역에서뿐 아니라 종적인 구조로 놓이게 된다. 남편과 아내의 수직적 관계는 가족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결정하고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와 가부장적 가족 제도 질서 수호를 위해 정해진 규율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진 자로 이분화된다. 이는 곧 지배와 종속이라는 구도로 드러난다. 이런 구도 속에서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이 부여하는 상징 체계가 만들어진다.

 

연애를 하면서 함께 같은 결혼을 꿈꾸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 아내의 결혼과 남편의 결혼은 다른 경험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가보지도 않았던 곳이 자신의 본적이 되고 자신을 낳아 준 부모의 생일보다도 얼굴도 보지 못한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현실, 당당하게 '아들' 집을 올 수 있는 부모와는 달리 '딸' 사는 것 보러 왔다가도 눈치보고 가야 하는 부모를 보면서부터 결혼이 깔고 있는 두 얼굴과 자신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선택한 남자에 대한 배신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 원인은 개인의 자발적 선택과 의지를 넘어서서 존재하는 것이다. 결혼이 현 가족 제도의 범주에서 구성되는 것인 한 당연히 흐를 수밖에 없는 통로인 것이다. 동등한 관계에서 동반자적 언약을 하는 결혼에서 불평등한 남녀 관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수해 왔던 가족 제도 속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이미 귀속적 신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속성을 모르고 결혼을 한다는 데 있다. 결혼식은 이별을 불사하면서까지 치열한 준비를 하면서 막상 결혼 생활에 대한 준비 과정은 갖지 못한다. 결혼식의 화려함이 결혼 생활의 화려함을 보장해 줄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유교주의적 부계부권 가족 제도가 남녀 모두에게 던지는 화살을 피할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 없이 '가족'을 만드는 것이다.

 

2) 가부장제 가족 구조 안에서 여성 위치의 주변화

 

유교주의적 부계부권의 가족 제도 안에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결정 권한은 주로 여성이 머무르고 있는 사적 영역에서 행할 수 있는 것들이고, 가족과 관련된 대소사의 최종적인 결정권은 가장에게 귀속된다. 여성은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와 자원의 사용에 있어서도 자기결정권을 갖지 못한다. 이것들이 사용될 수 있는 것 또한 가장의 '허락'이 있는 범위 안에서 요구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

 

결국 최종적인 결정 권한에서 배제되어 있는 여성의 위치는 독립적인 존재로 자기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최소한의 힘마저 '착취'당한다. 이미 오래 전에 이름 붙여진 중산층 이상의 40대 중 후반 전업 주부들이 겪는 '빈둥지 증후군'이 우울증으로 대표되는 것은 삶의 어떤 조건도 변화시킬 수 없는 무력감이 만들어 놓은 결과이다. 이러한 과정은 가부장제 가족과 사회 구조 안에서 남성과는 엄청나게 다른 내용으로 여성은 가족 속에서 끊임없이 긴장과 갈등으로 유도된다.

 

3) 이상화된 가족 이데올로기

 

부계부권의 일부일처제 가족 제도는 신비화된 가족 이데올로기로 유지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 성원들이 공통의 욕구와 삶의 양식 그리고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리라는 가정은 대표적인 가족 신화의 하나이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이타적 사랑이 작동하고 있으며 가족의 의사 결정은 조화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미지는 실제 가족 관계에 상존하는 권력 관계, 가족 성원들 간의 경쟁 관계 그리고 가족 생활의 정서적 측면에 내재하고 있는 부정적 측면을 부인하거나 애써 숨기는 기능을 한다. 사랑과 조화 그리고 결속을 이상화하는 가족 감정의 이면에는 경쟁과 갈등, 증오와 이기심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음에도 어느 한 면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가족의 일상은 성과 세대에 가족 성원들간의 이해 관계와 갈등이 일상화되어 있는 공간임에도 가족 신화는 가족 안에 존재하는 갈등과 긴장을 은폐시킨다. 공통의 욕구와 삶의 양식을 가지지 못할 때 가족 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죄의식'은 가족의 의사를 결정하는 가장의 권한에 복종하지 못하는 갈등과 맥이 통하게 된다. 이상화된 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한 울타리에 들어온 남자와 여자가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으로 각기 다른 내용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평등한 동반을 하고 있는 듯한 허상을 재생산시키는 것이다.

 

 

4. 단절되어 있는 부부 관계

 

현재 우리의 부부 관계에는 이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남녀의 분리 구조가 그대로 녹아 있다. 성별 역할 분리로 만들어지는 성별 지위가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가정 안에서 성역할 분업 구도의 담은 여전히 높다. 1980년대 말 가족법이 개정되면서 호주가 가지고 있는 실질적 권한이 대거 삭제되었으나 여전히 호주(戶主)가 갖는 상징성은 집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명백한 성별 분업 구도는 생계 책임자로서의 남성과 가사 책임자로서의 여성을 구분하고, 생업 활동과 가사 활동의 평가 또한 나누어 놓는다. 노동의 가치가 노동력의 대가로 평가되는 사회 구조에서 여성의 가사 활동은 대가를 받지 못하는 노동력이고, 이는 노동(일)하는 존재로서의 의미마저 왜곡시킨다. 가부장제를 깔고 태생한 자본주의는 여성의 집안에서의 일을 철저히 무력한 것으로 밀어 놓았다. 문제는 여성의 일(역할)에 대한 비하는 집안에서의 일뿐 아니라 사회적 노동마저 평가절하하는 결과를 낳았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하는 일의 내용뿐 아니라 평가에서도 우열의 구조로 나뉘는 것이다.

 

단절되고 이분화되어 있는 결혼 생활은 완전히 다른 삶의 경험을 가졌던 화성과 금성에서 살다 온 남녀인 듯한 이질감으로 점점 빠져들게 만든다. 남편과 아내의 단절감은 단지 마주하는 시간이 적기 때문만은 아니다. 함께 있는 시간에도 함께하는 내용을 갖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남성과 여성을 관계 짓는 사회적 각본이 서로에게 수단과 도구가 되는 의미로 드러날 뿐 동반자적 학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에게 여성이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사고는 의도를 갖고 노력하지 않는 한 쉽지 않다. 같은 시공간에 섞여 살면서도 의사소통의 공감과 통용 방식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 구조에 녹아 있는 남녀의 성별 분리 구조가 얼마나 완고한지를 드러내는 일면이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려면 대화라는 다리를 건너야 가능한데, 마음과 몸을 섞고 살아도 1시간 이상의 대화 시간을 가지고 사는 부부는 절반도 안 된다. 우리 나라 남편의 2명 중 1명은 아내와 30분 이상 대화를 하지 않고 산다.

 

1시간이 못 미치는 대화라는 것도 돈과 살림 이야기, 집안 대소사 통보 등의 업무상 대화나 "애들은 어디갔나" "밥 먹자" "자자" 등의 대화라 하기에는 뭐한 것들이다. 부부 관계에서 대화가 의미를 갖는 것은 결혼을 유지하기 어려운 중대 사유로 이혼을 결심하는 부부 중 반 수 이상이 부부간의 대화 단절을 꼽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결혼 만족도를 조사한 한 논문에 따르면 결혼 만족도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부부간의 대화라고 한다. 특히 연령층이 내려갈수록 대화는 결혼 생활과 부부 관계의 만족도에 직결되는 변수로 작용한다. 우리 나라의 부부들은 2쌍 중 1쌍이 결혼 생활에 만족을 못한다고 한다. 그 원인은 바로 대화 부족 때문이다. 대화할 줄 모르고, 대화하고 싶어도 그 방법을 몰라서 조용한 부부가 되어 가는 것이다.

 

물론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남자에게 드리워 있는 성역할 기대는 말(言)과 남성다움의 긴장 관계를 끊임없이 일깨우고 있다. 남아의 일언은 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과도 같다는 성별 인식은 해야 하는 표현도 하지 않고 들어야 하는 말마저도 듣지 않는 과묵함을 남성다움으로 사회화시켜 놓았다.

 

의논이 아닌 통보, 대화를 통한 절충이 아닌 일방적인 결정만이 부부 대화의 전부가 된다. 당연히 부부간 대화는 자취를 감추고 가족 관계도 삐걱거리게 된다. 부부간 대화는 이미 가정 내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요즘 여성들은 '평등한 가부장'을 바라고, 남자는 살림도 잘하고 직업도 있으면 좋고 '친구 같은 아내'를 바란다. 문제는 평등과 친구라는 단어를 메울 각본도 훈련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머리의 기대가 무너지는 허탈감만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어떤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 대화의 방향이 좌우된다. 아내를 동등한 인격으로 대접하지 않으면 명령, 지시 등의 대화 아닌 대화로 일관하게 된다.

 

만약 부부간에 대화가 없다고 생각되면 가장 먼저 바꿔야 되는 것이 대화하는 태도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조언하다. 공통의 화제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말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령과 지시에 익숙한 사람이 자신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을 때 결국 쉽게 선택하는 방법이 강제와 폭력이 된다. 평등하지 못한 부부 관계가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5. 평등한 부부 관계는 가족 해체 방지의 묘약

 

공평한 결혼 생활 조건과 평등한 부부 관계는 '한국 가족 어디로 가고 있는가'의 문제를 풀어내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가정의 민주화가 사회적 민주화의 잣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정이 사회화의 첫 집단이기 때문이다. 평등하지 못한 부모 관계와 공평하지 못한 삶의 조건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사회는 결국 태생적 신분으로 불평등을 정당화시키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가족 해체가 가속화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무엇이 부부의 갈등을 화해시키지 못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평등함과 존엄함을 유포한 시민 사회의 역사는 인간의 기본 권리가 무엇이고, 최소한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가르쳤다. 천부적 권리로 인권을 언급해 온 속에서 아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의 인권 또한 다르지 않음을 또한 각인시켰다.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을 가지고 인권의 공감을 만들어 내지 못할 때 부부 갈등과 가족 해체는 정지되지 못할 것이다. 또한 힘 있는 자의 강제와 폭력은 언제든 정당화될 수 있음을 부모의 모습에서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인권 교육은 항상 비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인격이 존중되고 서로에게 헌신을 다 할 수 있는 부부 관계와 가정 공동체의 회복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 있는 온갖 가지의 불평등한 부부 관계의 모순을 제거하고 공평한 삶의 조건에서 평등한 부부 관계를 만들어 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목, 2003년 5월호, 이상화(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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