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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가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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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59

가정에 대하여

 

 

1. 가정 : 교회의 길

 

가정 - 교회의 길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가정의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비인간화인 바, 사람다움을 되찾는 출발점은 정치체제나 경제 구조, 혹은 사회변동에 앞서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가고 또한 영향을 받는 人間이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인간의 비중은 예외일 수 없고 오히려 보다 강조되어 "인간은 교회의 길이다"(인간의 구원자 14항) 고 정의된다. 교회의 사명과 봉사가 가야할 길은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뜻이다. 

 

교회가 가야할 길인 인간의 길 가운데 "가정이 첫째가는 길이요 가장 중요한 길이다"(요한 바오로 2세, 가정 교서 2항). 가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길로써,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가정으로부터 나와 새로운 가정 안에서 자기 인생의 구체적인 소명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창조주 하느님과 일체이신 외아드님께서 가정을 통하여 인류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사실은 인간의 구원에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게 웅변한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듯, 교회는 가정에 대한 봉사를 자신의 근본 의무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과 가정은 모두가 다 "교회의 길"이다(상동). 

 

가정은 본연의 것이 되어라

 

현대인의 가정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어떻게 문제가 해결되어 정상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명확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교회의 길인 가정이 갈 방향은 무엇일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에 대해서 한 마디로 "가정은 본연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신다(가정 공동체 17항). 본연의 것이 된다함은 다름이 아니라 '시작'에로 돌아가는 것, 하느님의 창조행위의 시작에로 돌아감을 뜻한다. 다시 말해 가정은 본래 하느님이 계획하신 대로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로 돌아갈 때,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며 전달할 사명"을 수행하여 본연의 것이 된다. 결국 가정의 본질과 역학은 사랑이라는 말씀이다. 너무도 원론적이고 단순하여 싱겁게 들릴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안고있는 산적한 문제들은 이러한 본연의 처방을 외면한 채, 무슨 새롭고 신기한 방법이나 모임 등 마치 마약과 같은 단방 처방을 찾는 가운데 더욱 더 증세가 악화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 볼 일이다.

 

가정의 네 가지 임무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인 '가정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의 본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다음 네 가지로 제시한다(18 - 64항).

 

1) 인간 공동체의 형성

2) 생명에의 봉사

3) 사회 발전에의 참여

4)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의 참여

 

간략하나마 각 항목을 함께 살펴보기에 앞서 간곡히 권하고 싶은 것은 진정 내 가정이 성화된 모습, 가야할 본연의 모습을 이루기를 원한다면 위 회칙을 읽어보자는 부탁이다.

 

 

2. 가정 :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 - 인간 공동체의 형성

 

사랑을 출발점으로 하고 그것을 기준점으로 삼으면서 본연의 것으로 되돌아가야 할 가정은 어떤 역할, 어떤 임무를 지니는가? 첫번째 역할은 인간 공동체를 형성하는 임무이다. 

 

공동체의 구성 원리

 

인간 공동체란 무엇인가? 가톨릭의 신학에서 완전한 인간 공동체란 삼위이신 하느님의 각 위격(Persona) 성부, 성자, 성령이 다른 두 위격에게 자기를 완전히 내어주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고 가르친다(사목헌장 22-25).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삼위일체적 일치에 참여하도록 당신 은총의 선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우리도 인격체(Persona) 또는 위격으로서 세 위격이신 성삼위의 일치를 본받으려면 다른 인격체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 인격체에 대등한 나의 인격을 선물로 내어 주는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여기에 참된 인간 일 즉 인간 공동체가 이루어질 것이다. 

 

가정 공동체의 정체(Identity) - 자기 증여의 사랑

 

"인간은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줌으로써만이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있다"(사목헌장 24). 사랑한다는 것은 구할 수도 팔 수도 없는 것을 서로에게 자유롭게 주고 받음을 의미한다. 자신을 내어 준다는 것은 특성상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며, 철회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헌신의 논리가 없다면 결혼은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이 논리에 따라 이루어진 두 사람의 일치는 부모의 일치로 발전하게 된다 (요한 바오로 2세, 가정 교서 11)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는 이러한 상호 사랑과 자기 증여에 기초한 일치를 형성해야 한다. 부부의 사랑은 자녀들과 조부모와 다른 가족들과 친척들을 포함한 더 큰 인간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핵심이 된다. 남편과 아내를 묶어 주는 사랑은 삼위일체의 자기 증여의 사랑의 일치와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일치된 교회를 상징하기에 절대로 풀릴 수 없는 항구한 결합이다. 가정의 일치를 이루는 것은 가족 전원의 책임이다. 이 일치는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서로 주고 받는 "교육적 교환"으로 증진되며 희생과 화해의 항구한 정신으로 강화된다. 가정의 구성원들 간에 이 인격적 일치를 항상 심화시키지 않으면 그리스도인 가정은 다른 나머지 세가지 임무인 생명에의 봉사, 사회 발전에의 참여,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의 참여를 성공적으로 실천할 수 없다. 

 

인간 공동체의 최종 목표인 사랑

 

이러한 "인간 공동체의 내적 원리, 영원한 원동력, 최종적 목표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이는 가정이 살아 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성장할 수 없다"(가정 공동체 18).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사랑에 깊이 참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不可解한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은 무의미하다" (인간의 구원자 10).

 

 

3. 가정 : 누가 이 아이들을 가르칠 것인가?

 

그리스도인 가정의 기본적 임무 중에 둘째는 "생명에의 봉사" 이다. 인간 생명에 봉사하는 임무는 크게 나누어 1)생명을 전달하는 임무와 2) 자녀 교육의 임무인 바, 전자에 해당되는 피임이나 낙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실천이 되든 안되든 매우 자주, 그리고 많이 언급되어왔기에 건너뛰고 그 두번째 임무인 자녀 교육 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함께 생각해보자.

 

성당에서 이것도 안가르쳐요?

 

"우리 아이는 주일학교에 빠지지 않고 나가는데 삼종기도도 못해요. 성당에서 이것도 안가르쳐요?" 피아노 학원에 보내면 피아노를 배우고, 태권도 학원에 돈만 내면 태권도를 배우듯, 교무금 내고 주일학교에만 보내면 인성 교육이나 신앙교육 모두 해결될 줄 믿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과연 누가 이 아이들을 가르칠 것인가?

 

"교육에 대한 부모의 권리와 의무는 인간 생명의 전달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본질적인 것이다. 교육에 대한 부모의 권리와 의무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특유한 사랑의 관계 때문에, 타인들의 교육 역할과 비교해 볼 때, 원초적이고 최우선적이다. 따라서 이 의무는 대치되거나 양도될 수 없는 것이다" (가정 공동체 36). 교리교사에게 모든 교육을 맏겨 놓는 부모는 결국 하느님께 받은 소명을 외면하는 것이요, 자녀에게 부끄러운 책임회피를 하며, 자기 자신에게 직무유기죄를 짓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애는 고 3이라서...

 

그런가 하면 자못 열심하다는 부모들조차 왜 자녀가 성당에 안나오느냐고 물으면 "우리 애는 고 3이라서..." 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발견하기는 어렵지않다.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르는 짓이다. 이런 부모의 모습을 두고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자녀가 지옥을 가더라도 상관없다'는 태도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독설일까? 구원은 유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수능 준비처럼 일정 기간에 합격 불합격되는 것도 아니다. 더나아가 신앙은 현실의 삶을 풍요롭게하는 것이지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녀가 신앙에 열심할 수록 수능 점수도 좋을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부모의 교육적 역할은 "이렇듯이 중대한 것이므로 그것이 결핍될 때 그것을 보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 3). 하루 하루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고 감사와 기쁨으로 매사에 충실하도록 이끄는 신앙이 수능고사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가 믿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왜곡된 교육체제이리라.

 

우리 애 기죽이지 마세요!

 

첫영성체까지 받은 아이가 미사시간 중에 심하게 떠들기에 꾸중을 했더니 젊은 엄마가 항의를 한다: "우리 애 기죽이지 마세요!". 문득 성당안에서는 물론이요 사람들이 여럿 모이는 버스안이나 박물관안에서 서너살 된 꼬마들이 결코 뛰어 다니는 일도 없지만 말할 때 조차 엄마아빠 귀에 손을 대고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본 가정의 모습이 떠오른다. 

 

덕성 교육을 위해서는 "모든 참다운 자유의 조건인 자기 희생과 건전한 판단력과 자제력의 훈련이 요구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육체적이고 본능적인 차원을 내적이고 영적인 차원에 종속시키도록" (100주년 36항) 가르쳐야 한다. 자녀 교육의 목적은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교리서 2222)이지 제멋대로 하도록 기를 키워주는 것은 아니다. 더우기 자식이 귀엽다고 마음대로 행동하기를 부추기는 것은 자식의 기를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자제력 없는 미래의 문제아를 키우는 것이다.

 

 

4. 자녀 교육 : 완전한 부모


유아세례를 꼭 주어야 하나요?

 

"우리 아이에게 유아세례를 꼭 주어야 하나요? 큰 다음에 스스로 선택하여 영세받게 하면  안됩니까?" 가끔 신앙의 자유를 내세우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의 세례를 연기하자며 이런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신앙은 각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앙은 순전히 개인적인 선택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교리서 153)이라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부모는 혼인때 하느님께 한 약속으로 아이에게 이 선물을 전달할 중차대한 의무를 지고 있다(교회법 1055조). 

 

따라서 "혼배성사의 은총과 의무를 갖는 그리스도교적 가정에 있어서 자녀가 성세로 말미암아 받은 신앙에 따라 벌써 유아기부터 하느님을 알고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다" (그리스도교 교육에 관한 О언 3). 자녀들은 여기서 건전한 인간사회와 교회를 처음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자란 다음에 스스로 선택하여 신앙을 갖게 하자는 주장은 마치 자녀들 스스로 머리가 큰 다음에 자발적으로 결정하여 유치원도 보내고, 본인이 원한 후에야 초등학교에도 입학시키겠다는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어떻게 하면 신앙 교육을 잘 시킬 수 있습니까?

 

굳이 孟母三遷之敎를 말할 것 없이 가정에서의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느님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신심으로 찬 가정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리스도교 교육에 관한 선언 3)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정의 구성원들이 복음과 일치하는 그리스도교적 삶을 보여줌으로써 신앙안에서 성장하도록 서로 도울 때, 이는 가정의 구성원들이 이미 신앙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교리서 2226)이기 때문이다.

 

기실 훌륭한 구교우 가문의 가정을 돌아 볼 때 부모가 하는 신앙 교육은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정 환경이 신앙에로 정향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신학교에 입학하던 해 겨울방학에 지금 훌륭하게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는 친구의 시골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저녁 아홉시 뉴스가 끝나자 십자 고상 아래 가장을 중심으로 모두 모이더니 저녁 기도를 드리고, 묵주의 기도를 합송하고, 부모들은 자식을 위한 기도를, 자식들은 부모를 위한 기도를, 부모 함께는 부부의 기도를, 신학교 다니는 아들을 위해 성소를 위한 기도를, 군대간 아들을 위해 군인을 위한 기도를 등등, 신학교 기도시간 보다도 훨씬 긴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함께 사는 가족 중 누가 외출하여 다 모이지 못하면 무릎을 꿇은 채 다 모일 때 까지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이른 바 '신문교우'인 나는 마음 속으로 '이런 가정에서 신부가 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할 것이다'라는 확신과 놀람을 고백하였다.

 

자녀의 도시락에 성서 귀절을 써서 함께 넣어 주는 어머니를 보았다. 그렇다. 부모는 이 때 "교육 직무의 이행과 생활의 증언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복음의 첫번째 전달자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읽으며,...  부모는 자녀를 성체와 교회속으로 인도함으로써 육체적 생명뿐 아니라 성령의 쇄신을 통해서 십자가와 부활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출산자가 된다는 점에서 완전한 부모가 된다" (가정 공동체 39).

 

 

4. 자녀 교육 :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신품성사와 혼배성사

 

"어떤 사람은 영신적 직무를 통해서 단지 영신적 생명을 낳고 보호하는데, 이것은 신품성사의 역할이다. 다른 이들은 영신적 생명과 육체적 생명을 둘 다 낳고 보호하는데, 이것은 자식을 낳고 하느님을 예배하도록 그들을 기르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를 결합시키는 혼인성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 그리스도인 부모의 교육 임무의 중요성은 자녀들 안에 교회를 건설한다는 뜻에서 사제의 직무에 비교되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 이상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이다. 자녀들을 육체적으로만 출산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고 성숙시킬 이 중대한 직무앞에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인성 교육이란?

 

금년도 남한의 년간 사교육비가 13조원를 넘어선다고 한다. 가구당 월 평균 18만원이상이 학원비로 지출되고, 서울 강남지역은 월 40만원을 넘기 때문에 이젠 학원비를 위해 부업이 아니라 대출을 받는 시대라고 한다. 꽤 오래 회자되어온 '교육 개혁, 교육 정상화'의 구호에 기대를 거는 국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럴 때 마다 뜻있는 이들이 주창하는 것이 '인성 교육'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에 비춰볼 때 과연 이 인성교육이 무엇인가 하는 명확한 정의이리라. 인성교육이란 한마디로 "인간의 가치는 무엇을 가졌느냐에 있지 않고 어떤 인간이냐에 있다" (사목 헌장 30)는 충분한 확신을 갖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가정 공동체 37). 다시말해서 세상을 살아갈 능력 가운데 첫번째는 수능 점수가 아닌 '사람다움'이라는 말이다. 

 

사람다움을 가르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사람다움을 가르칠 것인가? 대출받아 치루는 사교육비가 이니라 다음과 갇은 가정 교육을 통해서 인성교육이 이루어짐을 교회는 제시한다: 

 

1) 신앙 교육: 부모는 자녀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보아야 하고, 인격을 갖춘 인격으로 존중해야 한다(교리서 2222). 구체적으로 부모는 자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소명을 발견하도록 가르칠 사명을 띠고 있다(교리서 2226) 

 

2) 생명 교육: "교육 활동의 어려움, 오늘 날에는 더욱 커진 어려움 중에서도, 부모는 신뢰와 용기를 갖고 인간 생명의 본질적 가치에 관하여 자녀들을 훈련 시켜야 합니다"(가정 공동체 37). 이는 또한 물질적 재산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검소한 생활 양식, 참된 정의감, 공평 등을 가르침을 의미한다.

 

3) 사회 교육: 가정은 사회 생활에 필요한 덕행들을 가르치는 최초의 학교이다. 구체적으로 사회교육은 일치와 나눔을 가르침을 뜻한다. "일치와 나눔은 사회의 넓은 지평에서 어린이들이 적극적이고 책임성 있으며 결실있게 참여하기 위한 가장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이다" (가정 공동체 37).

 

4) 부모의 사랑과 표양: "부모의 교육 의무를 성격지우는 가장 기본적 요소는 부모의 사랑이다 부모의 사랑은 교육의 원천이기에, 생기를 불어 넣는 원리이기도 하며 따라서 모든 구체적 교육활동을 고무하고 지도하며, 사랑의 가장 소중한 열매인 친절, 항구함, 선함, 봉사, 공평, 자기 희생으로써 교육 활동을 풍요롭게 하는 규범이다(가정 공동체 36).

 

[출처 : 인천교구 가정사목부 자료실, 남궁민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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