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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10) 십자가의 신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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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9 ㅣ No.40

제10강의 : 십자가의 신비 2(5월 12일 오후)

 

 

십자가는 참으로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극치를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즉 십자가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으로 구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수많은 죄인들이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회개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이 너무나 분명하고 크기 때문입니다.

 

제가 언젠가 아주 영성이 깊은 벨기에의 맹인 신부님을 만나 뵌 적이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벨기에에 어떤 여자 환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무신론자이며 대학교 교수라고 합니다. 벨기에에서는 어렸을 때 거의 다 영세를 받기 때문에 그 여자 환자는 이미 신자였지만, 나중에 완전히 하느님을 믿지 않게 되었고 어쩌다가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병원 원목 신부님이 이 여자 환자를 회개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여자가 대학교 교수니까 그 여자를 토론으로라도 굴복시켜 보려고 신학자도 불러서 같이 이야기도 해보고 했지만 아무리 해도 그 여자가 회개하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 맹인 신부님께 와서 청을 했다고 합니다. 맹인 신부님은 청을 받고, 그렇게 훌륭한 신학자들도 안 되는데 어떻게 내가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거절했지만 원목 신부님이 하도 청하는 바람에 그 병원에 갔답니다. 그래서 그 환자의 방에 들어가긴 했는데, 들어갈 때부터 벌써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부터 앞서고 그래서, 그저 '병 문안을 왔습니다. 좀 어떠십니까'하고 인사만 하고, '하느님께서 제발 좀 무슨 말이든지 이 환자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생각나게 해 주십시오'하는 마음으로 기도만 했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렇게 그냥 반시간 가량 앉아서 땀만 흘리다가 그냥 병실을 나왔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원목 신부님이 맹인 신부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더라는 겁니다. 맹인 신부님이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더니, 그 여자 환자는 회개하고 고해 성사를 잘 보고 선종 했답니다. 맹인 신부님이 그게 무슨 이야기냐고 했더니, 신부님이 그렇게 기도하실 때 그 여자는 땀을 흘리는 신부님의 모습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자신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회개했다고 하더랍니다.

 

제가 경험한 것도 있는데, 우리가 아는 분인데 환속하신 이 용선 신부라고 있었죠. 그 분이 사제직을 떠나고서 한참 있다가 암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사제직을 떠날 때, 우리 주교들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는 저와 경 주교님이 계실 때인데, 우리가 병원에 가도 우리 얼굴을 쳐다보기도 싫어하고 그랬습니다. 참 마음 아픈 일이었죠. 그래도 또 가보고, 또 가보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에 원목 신부님이셨던 매리암 신부님께서 잘 인도해 주셔서 이용선 신부가 정말 달라졌습니다. 정말로 하느님과 화해하고, 말로 설명할 것도 없이 우리와 화해한 것이 그 모습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병원이 명동에 있어서 가까웠기 때문에 거의 매일 같이 병문안을 갔는데, 방문하는 제가 오히려 그분을 방문함으로써 기쁨을 얻을 만큼 그렇게 그분이 평화로웠어요. 그러다가 제가 무슨 일이 있어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분이 돌아가실 때 제가 옆에 있지 못할 것 같아서 어느 날 밤에 인사를 하러 갔죠. 그랬더니 그분이 제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저는 기쁘게 갑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아주 기쁜 작별을 하고 병실을 나왔습니다. 저는 그 신부님의 경우에도 역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에 의해 그분이 그렇게 변한 것으로 믿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잃었던 사람은,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나는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다시 믿음을 얻게 됩니다. 희망을 잃었던 사람도 십자가를 통해 다시 희망을 얻고, 사랑을 잃었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에페소서 2장 13-1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피흘리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 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회개시키고, 원수가 되어 갈린 사람들이 서로 용서하고 회개하게 합니다. 또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베르자예프라는 사람이 {역사의 의미}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 "십자가는 인류 역사의 지평의 한 가운데 세워져 있다." 여기에 제가 더 보탠다면,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서 십자가의 가로축으로 모든 사람을 일치시키고, 십자가의 세로축으로 하느님과 인간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를 묵상하면 할수록 거기서 우리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은 먼저 우리의 모든 죄를 당신이 껴안으셨습니다. 우리는 자기 탓도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 모든 것을 당신의 죄로 짊어지셨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주님의 한량없는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안토니 블룸이 쓴 {기도의 체험}이라는 책을 보면, 거기서 저자는 겸손에 대해 말하면서, 겸손(Humilitas)은 "humus"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 단어는 "땅"을 의미하고, 땅은 모든 것 아래, 가장 낮은 데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땅은 모든 것을 지탱해 주지만,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모든 더러운 쓰레기를 땅에 버리는데, 땅은 자기를 열고 모든 것을 받아 줍니다. 그렇게 땅은 자기를 열고 있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리는 빛과 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겸손이라는 겁니다.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할 때, 십자가의 예수님의 바로 그 겸손을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과연 제쳐두신 죄가 있었겠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가끔 이스가리옷 유다스 생각을 합니다. 물론 예수께서도 유다스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했다'고 하셨고, 그래서 우리는 유다스는 틀림없이 지옥에 갔을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과연 당신을 따른 제자였던 유다스의 죄만은 지실 수 없다고 제쳐놓으셨을까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의 죄, 아주 쓸모 없어 보이는 사람의 죄 까지도 모두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겸손, 그분의 자비, 갈대가 부러졌다고 해서 꺾어버리지 않으시고, 심지가 깜빡거린다고 해서 꺼 버리지 않으시는, 끝까지 살리려고 노력하시는 그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용서 - 예수께서는 당신 손과 발에 못을 박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는 묵상을 하면 할수록 십자가의 에수님으로부터 모든 덕을 다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시작되던 그날부터 박해가 있었습니다. 또 교회가 들어가는 곳에는 박해가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 박해 아래서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리며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들의 믿음의 힘,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순교자들은 기쁘게 형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도 주님과 같이 자신의 목을 치는 사람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형장으로 나갔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십자가는 참으로 하느님의 힘이고,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또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믿음을 주고,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사랑이 메마른 사람에게는 사랑을 가져다주는 십자가는 참으로 가장 밝은 빛입니다. 이 빛은 그 어떤 빛보다도 우리를 밝게 비추어 줍니다. 오전에도 말씀드렸던 시몬느 베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신 것을 묵상하면서 질투심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었는데, 나는 왜 그렇게 모든 이를 위해 죽을 수 없는 것인가'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의미는 우리가 비로소 그 십자가를 살아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서울엔 밤이 되면 수많은 교회의 십자가가 불을 밝힙니다. 그렇게 해서 십자가의 의미가 더 밝아졌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십자가의 빛을 더 어둡게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십자가의 빛은 그렇게 한다고 밝혀지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살아야 그 빛이 밝혀집니다. 예수께서도 "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 24 ; 마르 8, 34 ; 루가 9, 2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에서는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15, 13)고 말씀하셨고, 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들 역시 같은 뜻으로 주님을 따르고자 하면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자기가 십자가를 살지 않고 우리는 십자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들 역시 그랬습니다. 사도들 역시 처음에는 십자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겪으셔야 할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말씀하시면서(마태 16, 21-23), 당신이 대사제나 바리사이와 같은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잡혀서 죽게 되리라고 예언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앞을 가로막으며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호되게 꾸짖으십니다. 이렇게 사도들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러한 사도들이 이 십자가를 이해하게 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성령을 받고, 그 때 비로소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의 빛을 받아 그리스도 십자가의 필요성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주님을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하실 때, '당신이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똑바로 매달릴 수는 없다. 나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달라'고 하면서 참으로 겸손된 자세로 순교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박해와 시련의 고통 속에서, 더 깊이 자신의 몸으로 주님의 죽으심을 체험했던 것 같습니다. 십자가는 이렇게 믿음을 가지고 몸으로 체험할 때 그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십자가의 의미를 몸으로 깊이 깨달을 때, 우리도 사도 바오로와 같이 주님의 생명, 그 부활의 의미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주님의 사제로 부름 받고 주님의 사제로 살아야 할 우리가 조금이라도 십자가의 주님의 그림자를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증거의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매일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특별히 고통을 당할 때에만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그 말은 자신의 처지, 자신의 부족, 자신의 나약함, 자신의 실패 혹은 겪어야 하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것은 참으로 깊은 믿음의 자세입니다.

 

제가 앞에서 폴 틸리히의 말을 인용하면서 "믿음이란 자기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라고 했는데, 하느님께서는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나도 부족함, 실패, 나약함 등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하느님께 보여드릴 수 있을 만큼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매일의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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