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주님수난성지주일]대구주보

스크랩 인쇄

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1999-03-26 ㅣ No.48

[대구주보에서 옮겨왔습니다.]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가 KBS TV에 반영된 일이 있습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권력이 뭐길래, 태종 이방원은 권력을 잡기 위하여 골육 상쟁을 일으키고 많은 반대파를 숙청합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태종 이방원은 처가나 사돈까지 역적으로 몰아 처형합니다. 왕은 권력의 상징입니다. 왕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왕의 말이 곧 법이며 왕은 국가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개선장군과는 달리 유순한 나귀 등에 앉아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이 모습은 섬김을 받지 않고 섬기러 오신 겸손하고 유순한 임금님의 모습을 잘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입성으로 온 예루살렘 백성들은 이제 바야흐로 메시아 시대가 왔다고 들끓습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승리와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와 팔마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데서 호산나!" 외치면서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열광적으로 환영하던 예루살렘 백성들은 얼마 후에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외치면서 예수님을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INRI)"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박아 죽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많은 유대인들이 간절히 바라는 대로 속세의 왕관을 쓰시고 지상 왕국을 건설하기 위함이 아니라 파스카의 신비를 완성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영광으로 가는 파스카의 여정입니다.

 

예수님은 고통과 죽음에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몸소 쓰라린 십자가의 고통을 취하셨고 참혹한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노예들이나 정치범, 흉악범들에게 내려진 치욕적이고 잔혹한 형벌이며 저주 받은 죽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저주 받은 십자가를 몸소 지시고 죽음으로써 자신을 아버지께 온전히 맡기시고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길만이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시는 길이고 이 길만이 인간이 천상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제2독서는 예수님의 메시아적 모습을 잘 드러냅니다. 필립 2,6 - 8의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하느님이시지만 자신을 낮추어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되어 오시고,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 보면 INRI(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우리는 세례성사로 십자가의 인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떼어서 생각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마태 16,24)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기 위해 매일매일 묵은 인간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생활을 청산하고 의로운 생활을 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매일 묵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욕을 보이는 배교의 죄를 짓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의 어리석음만이 나와 우리 모두를 구원합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게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갈라 6,14).



67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