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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흥종교의 위협과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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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29 ㅣ No.704

[새로운 유혹과 도전] 신흥종교의 위협과 유혹



“신부님, 저희 아이가 신천지에 빠졌어요.” 이런 문의전화를 받으면 언제 끝날지 모를 지루한 전쟁이 또다시 시작된다. 한국의 신흥종교들에 대한 대응이 쉽지 않은데, 그 숫자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며, 그 진화 속도 또한 빠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는 신흥종교 문제에 대한 대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단 상담이나 사후 관리는 고사하고 예방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신흥종교 신도양성소’라 불릴 정도로 신흥종교에 빠져있는 가톨릭 신자가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교회의 대응이 미미한 이유는 이 문제를 여전히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신흥종교에 연루된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 문제가 우리 자신의 일임을 깨닫게 된다. 신흥종교는 우리 교회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준다. 거기에는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 정체성과 교회의 신앙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신흥종교에 대한 무지와 무기력증

신흥종교 문제로 상담을 요청받을 때 처음 드는 느낌은 무기력함이다. 신흥종교라는 신세계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신흥종교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실제로 신흥종교에 빠진 자녀를 발견했을 때 보통의 경우 분노와 화를 참지 못하고 흥분하여 감정적으로 대응하는데, 오히려 일을 그르쳐 돌아설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가족이나 친구 가운데 누군가 신흥종교에 빠진 것을 알았을 때 당사자가 알지 못하게 즉시 전문가에게 요청하여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이미 신분이 드러날 경우를 대비하여 체계적인 세뇌교육을 받았다. 신흥종교 문제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예방교육일 것이다.

신흥종교에 한 번 빠진 사람을 되돌리려면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시간을 들여야 성공할 수 있을까 말까 하지만, 한두 시간의 예방교육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문제는 우리 교회 안에 신흥종교의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

“사랑에 빠진 로미오와 줄리엣을 어떻게 떼어놓을 수 있겠어요?” 한 상담자의 말처럼 신흥종교 신도들은 깊은 ‘사랑’에 빠져 있다. “마음 도둑도 도둑질 아닙니까?” 이제는 ‘손을 씻고’ 일반인으로 돌아온 전직 교주의 말대로라면 그들은 사랑에 빠져 마음이 빼앗겨 있는 상태다.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자기네 종교 생각뿐이다.

필자가 만나본 신흥종교에 빠진 사람들을 회상해 보면, 그들은 교리뿐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품성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교인들의 반듯한 삶의 모습과 열정적인 신앙을 보며 적어도 그들은 거짓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한 형제자매처럼 아껴준다. 교주와 함께했던 시간이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시간처럼 너무나 행복했다고 지난날을 회상하기도 한다.

최근 사례를 보면 그들은 심각한 중독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 세뇌과정은 갈수록 짧아지며 중독성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심지어 인격과 분별력을 심하게 파괴시킨다. 정상적인 대화나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는 이들을 보게 된다. 그만큼 한 번 빠지면 스스로는 절대로 헤어날 수 없는 것이 신흥종교다.

신흥종교에 빠진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갖고 있으며, 특히 살아오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위기를 겪었던 이들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무한 경쟁 사회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청년들은 대체로 앞날에 대한 암울하고 불안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불안과 소외를 경험한다.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앞날을 불확실하게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이 신흥종교에 쉽게 매료된다. 그곳에서 나름대로 정체성을 주입시켜 삶의 중심을 확고히 잡을 수 있는 것처럼 도와주고, 앞날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며, 끈끈한 대인관계에 의존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그곳에 빠진 사람들은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설정된 가상의 세상에 푹 파묻혀 살게 된다. 신흥종교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정 문제와 개인의 정체성 문제가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흥종교에서 빠져나온 뒤에도 정체성 위기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신흥종교, 우리 자신의 문제

예방도 중요하고, 문제가 일어날 때, 지혜로운 대응도 중요하지만, 신흥종교 문제가 우리 스스로의 신앙 문제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흥종교는 우리 교회가 내부적으로 겪고 있는 신앙 정체성의 위기와 신앙교육의 위기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들을 이단이나 유사종교로 치부하는 가운데 신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정도로는 결코 온전한 대책이 될 수 없다.

신흥종교에 빠졌다가 교회로 돌아와 열심히 봉사하는 한 자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신부님, 교사들을 비롯해 성당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이나 하느님 말씀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신흥종교에서 활동하며 만났던 신도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성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 사실이 오히려 더 괴로웠다고 한다.

가톨릭교회가 가진 엄청난 영적 보화를 발견하며 큰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이 신앙적으로 무감각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모습은 그에게 적잖은 실망과 근심거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신흥종교에 빠진 청년들을 보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교회에서 멀어져 신앙을 잃고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신앙교육에 대한 소외를 경험하였다. 신앙은 그들에게 삶의 중심이 되지도, 삶의 의미를 제시해 주지도 못하였다. 그들의 신앙 정체성은 신흥종교 앞에서 쉽게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연약한 것이었다.

신흥종교 문제는 이처럼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실제로 많은 신자들이 신앙의 무기력증을 호소하고 있다. 형식화된 신앙생활로 회의감을 느끼는 신자가 점점 늘고 있다. 겉으로 비치는 모습과 달리 가톨릭교회의 영적 활력은 점점 쇠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지적하시는 ‘영적 세속성’이 이미 우리 교회를 잠식하고 있는 듯하다. 현 상황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진단,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태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훨씬 대규모의 교회 이탈 현상이 빠른 속도로 일어날 것이다.

신흥종교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체계적인 준비를 해야 할 때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톨릭교회의 신앙 정체성과 신앙교육을 더 걱정해야 한다. 가톨릭 신자들만의, 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신앙교육 방법을 새로이 창출해야 할 때다.

가정과 성당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신앙교육 요람’과 같은 것이 마련되어 확산되면 좋을 것이다. 사목자만이 아니라 온 신자가 신앙교육의 주체임을 깨달으며 책임감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바란다.

* 한민택 바오로 - 수원교구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기초신학을 가르치며, 신학생들에게 영성지도를 하고 있다. 수년 동안 교구청과 신학교에서 신흥종교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7월호, 한민택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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