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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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84

성 남이관(南履灌) 세바스티아노(1780-1839)

 

 

서울의 양반 교우 가정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남이관은 18세 때 교우인 조증이 바르바라와 결혼했다.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아버지와 함께 체포되었다. 아버지 남필용(南必容)은 전라도 강진(康津)으로 귀양가 그곳에서 죽었고, 남이관은 경상도 단성(丹城)으로 귀양갔다가 30년만인 1832년 풀려 나와 처가인 이천(利川)에서 살았다. 그후 상경하여 처가가 정하상 바오로와 인척인 관계로 그의 신부 영입운동을 도와 1833년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맞아들이게 했고, 그에게서 성세와 견진성사를 받은 후 회장으로 임명되어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남이관은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처가인 이천으로 내려가 숨었다. 그러나 9원 16일에 체포되어 서울 포청으로 압송되었다. 포청에서 간단한 신문을 받은 후 김제준과 함께 국사범으로 간주되어 의금부로 이송되어 여기에서 유진길, 정하상과 함께 신문을 받고, 다시 형조로 이송되어 거기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9월 26일 남이관은 8명의 교우와 함께 60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했다.

 

- 성녀 조증이(趙曾伊) 바르바라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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