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9일 (수)
(녹)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강론자료

연중 05 주일-다해-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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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1-02-03 ㅣ No.265

연중  5  주일 (다해)

 

        이사 6,1-2ㄱ.3-8     1고린 15,1-11     루가 5,1-11

    2001. 2. 4.

주제 : 세상의 변화-하느님의 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겨울추위가 끝난 듯 하다가 또 추워지기를 반복하는 계절입니다. 오늘은 봄을 맞이하는 첫 번째 절기 입춘(立春)입니다. 이 때가 되면 대문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을 써 붙이고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나 그 글을 보는 사람에게도 그 축복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같은 정신을 찾기가 쉽지는 않으나, 여러분의 가정에 입춘대길을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또,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축복을 기원하셨으면 합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삽니다. 그래서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사실이냐고 재우쳐 묻고<재우치다:빨리하여 몰아치다> 정말로 봤느냐고 확인합니다. 하지만 전하는 사람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특별히 강조해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기에 그런 일에 잘못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똑같은 것을 보고 난 다음에도 말하는 내용에 차이나는 일이나, 같은 시간 공부를 하고 나서도 시험성적을 달리 내는 사람들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일에는 사람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능력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 능력은 조작할 수 없기에 결국은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판단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이야기하거나 하느님을 체험했기에 삶이 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거나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행동이거나 둘 중의 한 가지 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서 보여주신 구원의 혜택을 받고 사는 여러분은 어떤 쪽에 여러분 인생의 저울추를 두고 사십니까?

 

오늘 복음과 독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군중이 많이 모여있을 때 배에 올라앉아 그들을 가르치고 나신 예수님은 전업(專業) 어부(漁夫)였던 사람들도 놀랄 만큼 고기를 잡게 합니다. 그에 관련된 놀라운 소식을 전하는 것이 복음의 말씀이고, 우리가 맨 정신을 가지고서는 접근할 수 없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그곳의 영광을 이야기하는 이사야 예언자의 모습을 전하는 것이 첫 독서의 말씀입니다.  첫 번째 독서와 복음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본 그들은 놀라운 일에 자신이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전업 어부였으면서도 자신보다 더 뛰어나게 고기를 잡게 한 예수님의 기적에 대한 반응을 수습하고 난 다음 그가 자기 곁을 떠나기를 요청했고, 하느님의 놀라운 모습을 가까운데서 체험한 이사야 예언자는 &#39;입술이 더러운 사람으로서 이제 자신의 생명이 끝났다&#39;고 느낍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일을 거기서 맺지 않으십니다. 시몬 베드로에게는 이제는 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새로운 일이 임무로 주어지고, 이사야 예언자의 입술은 깨끗해지고 하느님의 놀라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그 모습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그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으로서 이 성당을 떠나면서 달라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우리를 채워주신 하느님이나 예수님은 분명 슬퍼하실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세상에 아주 놀라운 일을 남길 중요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 나이를 먹어서는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서서 말씀드리는 일로 바뀌었습니다만, 이런 경우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이루어내는 힘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큰 것이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보여주셨던 순교의 역사가 그것을 보여주는 본보기입니다. 이번 주간부터 또 예비자 교리를 시작합니다. 그에 참여하는 새로운 형제와 자매들이 우리들이 믿고 따르는 신앙의 힘에 합류할 수 있도록 기도 가운데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독서에 등장하는 바오로 사도도 하느님의 은총 때문에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분열과 대립으로 서로 다투고 시기하던 공동체였던 고린토 교회에 바오로 사도께서 자기 역사의 어두운 면, 밝히고 싶지 않았던 체험을 이야기하는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분열과 분란이 판친다면 올바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자신이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했던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시기의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교회 공동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일입니다. 어디라고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닙니다. 이런 말씀이 반복되는 현실을 보신다면, 바오로 사도 역시도 마음이 편치 않으실 것입니다.

 

사람의 생활이 혼탁해지고 어려워지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는 태도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39;아무도 보지 않았으니까 내가 한 옳지 못한 일은 아무도 모르겠지!&#39; 하는 것은 개인의 생각입니다. 사람의 세계에 비밀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나 혼자 아무도 모르게 잘 한 일 같아도 그것이 드러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에 구관이 명관이었는데...라거나, 그래도 옛날이 좋았지...라고 말하는 것은 쓸데없는 푸념일 뿐입니다. 현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현실은 과거의 완성이고, 현실은 미래의 시작이기 그렇습니다. 이런 일처럼 과거를 그리워하며 말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하는 자위수단일 뿐입니다. 사람은 과거에 사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살 것도 아니고, 지금 현실을 지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이 현실을 올바로 만들어가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힘 우리의 뜻을 바꾸고 바르게 이끌어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내 주변에 머무는 이웃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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