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연중 19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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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8-06 ㅣ No.140

연중 19 주일 (가해)

        1열왕 19,9a.11-13a     로마 9,1-5    마태 14,22-33

      1999. 8. 8.

주제 :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엄청난 비 피해를 겪고 이겨내고 오랜만에 며칠동안의 밝은 햇빛을 보고 있습니다.  누구나 피해 없이 잘 지내기를 바라기는 한 것이지만 별탈 없이 잘 지내고 난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입니다.  우리가 별탈 없이 지냈고 큰 걱정 없이 지낸다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잘 생각해 볼 줄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삽니다. 그런 삶에서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는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할 때이고, 이럴 때에 자칫 잘못하면 다른 사람을 오해하고 급기야는 담을 쌓게 되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누구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나 다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걸음이라도 물러서서 다른 사람을 오해하지 않을 수 있고, 이 자리에 함께 있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의 길을 걷지 않도록 마음을 모아 조금이라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도움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또 한편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는 하느님의 도움을 찾습니다.  우리가 원망의 눈길로 하늘을 쳐다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하느님이 어떤 때에 당신의 힘을 드러내시는지를 깨달아 알고,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올바로 이용할 줄 아는 지혜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또 한 가지 방법입니다.

 

오늘은 연중 19번째 주일입니다.

연중 19주일의 복음은 오천명을 먹게 하신 기적 다음에 이어지는 제자들의 곤경을 담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내용을 우리가 제대로 살핀다면, 과연 하느님께서 언제 당신의 힘을 드러내시는지를 깨달아 알고 우리가 삶에서 하느님께 올바로 그 힘을 청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의 힘으로 ’남자’만도 오천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은 뒤, 예수님은 감사의 기도를 하시기 위하여 남으셨고, 제자들은 호수반대편으로 떠납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제자들이 우쭐하고 떠난 다음순간 바로 곤경이 그들을 찾아듭니다. 풍랑이 일고 노를 젓기가 힘들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곤경을 겪으면서도 제자들은 스승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기억할 줄 모릅니다. 인간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하느님을 이용하는 것도 올바른 자세는 아니지만, 참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뜻이 무엇인지도 올바로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뜻을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비우고 겸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여전히 겸손할 줄 모르는 제자 베드로가 나옵니다.  유령이라고 큰 소리쳤던 사람들이 다음순간에는 ’물위를 걷겠다’고 도전하고, 그 마음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다시 두려움에 빠져 물속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세상을 현명하게 살려면 지나치게 인간의 힘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태어나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리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의 힘을 믿을 수 있는 범위를 올바로 구별하는 것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런 지혜는 우리가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바알의 예언자 400명과 대결했던 엘리야는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느님이 찾아오시어 하느님이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하느님을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자세로 하느님을 찾는지 살필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이 귀먹었다고 생각하면서 큰 소리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하느님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시끄럽고 복잡한 어수선한 가운데서 찾으려고 하는지, 올바로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첫 번째 독서 열왕기는 하느님이 어디에 계신지, 우리가 그 하느님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올바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 곳, 정성을 모아 간절한 도움을 청하는 곳, 바로 그곳이라야만 하느님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이 말을 달리 바꾸면, 하느님의 뜻에 맞아야만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어디에서 찾습니까?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는지를 먼저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뵙지 못한 것에 대해서 커다란 슬픔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자신은 어떻게 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올바로 깨닫게 하려면,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이 먼저 그 길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멀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10,8에서 "말씀은 네 바로 곁에 있고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고 하십니다.  이제 남아있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삶에 다른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어디에서 찾습니까?  지혜를 주시기를 함께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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