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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15: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 정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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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18 ㅣ No.698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15)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 정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영혼의 가장 심층부인 영(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정화 과정의 배경이 되는 인간 이해

십자가 성 요한의 영적 가르침에 있어 중심 주제는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기 위해 인간이 어떤 정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성인은 인간의 정화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막상 이 주제를 파고들기 위해 성인의 작품을 뒤적이다 보면 용어들이 어려워서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성인이 인간의 정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들은 500년 전에 통용되던 신학적, 철학적 용어들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성인이 말하는 정화의 대상은 인간이기 때문에 성인이 정화에 대해 말할 때면 끊임없이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서양 철학은 분석적인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철학적 틀을 바탕으로 발전된 신학 역시 상당히 분석적입니다. 십자가 성 요한의 영적 가르침 역시 다분히 이런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전망은 궁극적으로 하느님과의 인격적 합일이라는 목적 안에서 통합되고 있습니다. 여하튼 인간의 정화에 대한 성인의 설명은 분석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말하는 정화는 구체적으로 인간의 특정한 부분에 대한 정화로 소개되곤 합니다.


가르멜 산 등반과 인간 구조

따라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화 과정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인이 바라본 인간 존재의 구조는 어떨까요?

앞서 성녀 데레사의 인간 이해와 관련해서도 말씀드렸듯이, 역사적으로 영성가들은 ‘영’(spiritus), ‘영혼’(anima), ‘육체’(corpus)로 이루어진 통합적인 인간관을 선호했습니다. 이는 인간 존재의 영적 변화 과정을 보다 역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틀로서 소위 삼중적 인간관이라 불립니다. 이러한 인간 이해는 사도 바오로의 서간(1코린 5,23)에 처음 등장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역시 이러한 인간관을 자신의 영성을 설명하는 기본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관을 수용한 성 토마스의 가르침에 따른 ‘영혼’과 ‘육체’로 구성된 이중적 인간관 또한 혼용해서 사용했습니다.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성인이 제시한 하느님과의 합일을 향한 인간의 영적 여정은 ‘가르멜 산을 등반하는 여정’이라는 상징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여정은 완덕의 산을 향해 오르는 것이지만, 인간의 구조와 관련해서 본다면,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 즉 영적인 영역을 향한 내적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성 요한이 바라본 인간 구조

그러므로 성인이 말하는 영적 진보의 여정은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제반 요소를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 안에 현존해 계신 하느님을 잊은 채 육체적인 삶의 차원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영적으로 아주 낮은 단계에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영혼이 점차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갈 때 여정은 진보하게 됩니다.

성인은 영혼을 두 부분으로 나눴습니다. 영혼의 윗부분은 영혼의 주요 기관인 지성, 기억, 의지가 있는 부분으로 인간을 여타 다른 동물과 구별하게 해주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있는 부분입니다. 반면, 영혼의 아랫부분에는 그보다 낮은 여러 가지 기관들이 있습니다. 우선,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들을 기억하는 감각적 기억, 그런 정보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미지들을 조합해내는 상상, 환상 등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소위 성리학에서 말하는 사단칠정(四端七情)과 같은 감정들이 있습니다. 성 토마스는 인간의 11가지 감정을 제시하며 그 가운데 대표적인 4가지 감정에 대해 말한 바 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 4가지(기쁨, 희망, 고통, 두려움) 감정을 받아들여 영혼의 아랫부분에 배치했습니다. 또한 성인이 말한 영혼의 아랫부분에 속하는 것으로 인간의 ‘욕구’를 들 수 있습니다. 영혼을 구성하는 이런 일련의 요소들 너머 영혼의 가장 심층부에 ‘영’(靈)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바로 이곳에 현존해 계십니다.


인간 구조를 바탕으로 본 정화 단계

도표에 소개된 인간을 구성하는 제반 요소들만 잘 이해해도 여러분은 성인이 설명하는 정화의 단계들을 쉽게 알아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인은 인간의 정화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눴습니다. 영적 여정의 초반에 이루어지는 정화를 ‘감각의 정화’라고 하는데, 이는 육체의 오감(五感), 내적 감각(상상, 환상, 감각적 기억), 감정(기쁨, 희망, 고통, 두려움), 욕구에 대한 정화를 말합니다. 반면, 여정의 후반부에서 ‘영의 정화’가 일어나는데 이는 영혼의 윗부분에 속하는 지성, 기억, 의지의 정화를 말합니다.

또한 각각의 정화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능동적 정화와 하느님의 은총 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수동적 정화로 나뉩니다. 이런 일련의 정화 단계들은 어느 하나가 끝난 다음에 새로운 단계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혼재된 가운데 동시적으로 일어납니다. 다만, 여정의 초반에는 주로 감각에 대한 정화가 우세하며 인간의 노력이 주를 이루는 반면, 후반에는 주로 영의 정화가 우세하며 하느님의 은총이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평화신문, 2015년 7월 19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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