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14: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 어두운 밤을 거쳐야 하는 인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13 ㅣ No.696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14)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 어두운 밤을 거쳐야 하는 인간

 

어두운 밤, 사랑의 순도 높이는 정련(精鍊)의 시간

 

 

사랑의 순도를 높이는 정화의 시간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소명을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이 하느님과 온전히 사랑으로 일치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합당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사랑에 빠진 청년이 사랑하는 연인을 버려둔 채 다른 아가씨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거나 취미 생활에만 몰두한다면 그 연인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머지않아 그 사랑은 깨지고 말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제시하는 삶의 비전은 쉽게 말해 이승에서의 우리들의 삶이 하느님과 연애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연애를 잘하고 그분과의 사랑을 완성하려면, 그 사랑이 방해받지 않도록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성인은 이 사랑의 가지치기 작업을 ‘정화’(淨化)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라져버릴 세상의 헛된 것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애착을 끊어내는 작업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작업은 애착에 사로잡혀 있는 당사자에게는 많은 아픔이 동반될 수밖에 없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인은 그런 뉘앙스를 담아 ‘어두운 밤’이라는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쉽게 말해, 어두운 밤은 초자연적인 사랑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자 주님과 나 사이의 사랑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사랑의 에너지를 정련(精鍊)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 에너지가 다른 데 새어나감 없이 하나의 커다란 힘으로 모아져서 혼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럼으로써 그분과 완전히 일치할 수 있게 해주는 작업, 그것이 바로 정화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잘못된 집착의 인연들을 통합함

성인은 이 정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주 강조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새가 노끈으로 지상에 묶여 있는 한, 그 끈이 아무리 가늘다 하더라도 새는 결코 하늘로 날아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이 세상 피조물들에게 매여 있다면, 비록 그 집착의 끈이 아무리 가늘다 할지라도 그것을 끊어버리지 않는 한, 결코 하느님이라는 거대한 태양을 향해 날아오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집착을 끊어버리라는 성인의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집착이라도 끊어버려야 한다면,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의 인연을 끊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논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건 광야에 나가 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은수자들에게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성인의 말은 내가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물들과의 관계를 하느님 안에서 올바로 통합하고 성숙시켜가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무질서해진 우리들의 사랑 에너지를 하느님을 향한 사랑 안에서 제대로 질서 지우라는 뜻입니다.


참된 그리스도교적인 도(道)

그래서 예를 들면,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 다루는 다양한 것들, 가령 집이나 돈을 비롯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적인 것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는 헛된 수고를 하지 말고, 그것을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사랑하며 그 사랑 안에서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육체적 존재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음식도 먹지 않고 집도 없이 돈도 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설혹 그렇게 산다 해도 그게 참으로 그리스도교적인 도(道)를 닦는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구원은 혼자 면벽 수행해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이웃, 사회 더 나아가 원수까지도 포함하는 온 인류의 구원입니다.


영원을 향한 사랑 안에서 사랑함

이러한 십자가 성 요한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참된 사랑의 길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해 줍니다. 사람을 사랑하되 그 사람을 소유하지 않는 지혜, 주님을 향한 사랑 가운데 그를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다해 사랑하되 내 마음을 그에게 고착시키지 않는 지혜, 그를 마음에 담되 또한 담지 않는 지혜, 그가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동반하는 지혜를 성인의 가르침에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승의 여행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결코 우리 존재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부부 사이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만난 좋은 벗일 뿐입니다. 영원한 진리를 향한 사랑 안에서가 아니라면 모든 인간적인 사랑은 헛된 집착이며 곧 사라져 버리고 말 환상일 뿐입니다.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노는 “피조물에 대한 사랑은 창조주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반대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랑하는 대상들 사이의 우선순위에 대해 숙고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향유하는 사랑의 대상과 거기에 이르기 위해 디딤돌이 되어주는 상대적 사랑의 대상을 구분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 안에서 그리고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서로에게 디딤돌이 되어주어 함께 그분께 이르러야 이승에서의 우리 삶이 의미 있지 않겠습니까? 머물되 떠나가는 지혜, 사랑하되 그 사랑을 넘어서는 지혜, 십자가의 성 요한은 그런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비결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지금 여러분의 사랑은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평화신문, 2015년 7월 12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1,84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