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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그리스도교의 입문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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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9-17 ㅣ No.642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그리스도교의 입문성사


세 가지 성사, 곧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적인 삶에로 나아가는 문입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그리스도교의 입문성사인 이 세 가지 성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이는 자연적 생명의 탄생과 그 양육과 성장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세례성사로 새로 태어난 신자들은 견진성사로 굳세어지고, 마침내 성체성사로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먹게 되므로, 신자들은 이 세 가지 그리스도교 입문성사들로 하느님 생명의 보화를 점점 더 풍부히 받고 사랑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다”(견진성사에 관한 교황령 「하느님 본성에 참여」).


세례성사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고,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다른 성사들로 들어가는 길을 여는 문입니다. 또한 세례성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친교의 기초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와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세례는 물로써 말씀 안에 다시 태어나는 성사입니다. 물은 생명을 유지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또한 깨끗하게 씻어줍니다. 그래서 인간 안에 내적, 외적인 것을 서로 일치시켜 줍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정화는 또한 영적 쇄신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홍수는 생명체를 쓸어가 버리고 파묻어 버리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 세 가지 의미 모두가 세례성사 안에서 함께 작용합니다. 곧 죽음의 물은 예수님의 죽음과 묻히심에 대한 참여로서의 세례성사이며(로마 6,3), 정화의 물은 재생의 목욕으로서의 세례성사이며, 생명의 물은 새로운 삶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는 부활로서의 세례성사입니다.

사실 세례는 신앙생활로 들어가는 성사적인 관문이기 때문에, 특히 ‘신앙의 성사’입니다. 세례를 위해서 완전하고 성숙된 신앙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신앙의 시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의 근원이며, 이 근원에서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솟아나옵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로마 6,4-5).

우리가 새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새로 태어나게 하는 세례는 죽음에서 우리를 살리는 성사이며,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세례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해있음을 나타내는 지워지지 않는 영적인 표지(인호)를 받습니다. 이 주님의 인호로 자신이 받은 세례가 요구하는 것에 충실한 신자는, “신앙의 표를 지니고”, 세례 때에 고백한 그 신앙을 보존하고, 신앙의 완성인 지복직관을 바라면서 부활에 대한 희망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견진성사

세례성사가 사람이 처음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받으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는 성사라면, 견진성사는 사람을 성숙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교회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게 해주는 성사입니다. 이 점에서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완성이고, 사람이 더욱 완전한 구원을 얻는 데, 곧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데 필요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도 신체적, 정신적인 성장이 있듯이 신앙에도 성장이 있습니다. 비유로 얘기하면 세례를 통해서 신앙의 씨앗이 심어졌고, 그 씨가 싹트고 튼튼한 나무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견진성사입니다.

세례성사는 개인을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합니다. 견진성사에서는 새로운 동기가 주어집니다. 단지 개인이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개인에 대한 공동책임과 약속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견진성사는 바로 이 점을 특별히 나타내고 영적으로 능력 있는 젊은 그리스도인이 미래에 교회의 선교사명을 위해 헌신하도록 이끌어줍니다.

견진성사는 우리에게 성령과 그 특은을 주는 ‘성령의 성사’로서 신자 각 개인의 성령강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두려움이 많은 제자들을 용감한 증거자로 만드셨듯이, 성령은 은총의 근원으로서 여러 가지 은총과 함께 견진자들에게 오시어 그리스도를 굳세게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또한 견진은 주교의 안수와 축성성유의 도유를 통하여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며, 그리스도인이 되는 세례성사를 완성하는 성사입니다. 그리고 이 성사를 받는 신자는 성령과 특은을 받게 되어 교회의 일원으로 교회를 보호하고 확장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견진성사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칩니다. “견진성사로 신자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 성령의 특별한 힘을 받아 그리스도인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고 옹호하여야 할 더 무거운 의무를 진다”(교회헌장, 11항).


성체성사

일곱 성사는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며, 각 성사는 중요한 자신의 위치를 지니는데, 성체성사는 모든 성사 중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닙니다. 거룩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성사를 완결 짓습니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절정이기에 다른 성사와 교회 직무와 사도직 활동은 모두 성체성사와 연결되고 성체성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극한 거룩한 성사’라고 부르는 것은 이 성사가 성사들 중의 성사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스도인 생활의 두 가지 움직임이 교차하는데, 하나는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에게 내려오는 것과 또 하나는 인간으로부터 하느님께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먼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위대한 선물입니다. 곧 당신의 아들을 선물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또한 성체성사는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모든 선물의 원천이요 절정인데, 왜냐하면 성체성사는 그리스도 친히 그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부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그분까지 주셨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로마 8,32 참조). 그러므로 성체성사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주 오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사랑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와 화해하시고, 생명의 빵을 통하여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당신의 사도로서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성체성사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모든 응답의 원천이요 절정입니다. 왜냐하면 성부에 대한 예수님의 희생을 재현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의 예물과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희생에 하나로 합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는 하느님과 인간의 내적인 일치의 성사입니다.

* 김형민 베드로 - 제주교구 신부. 2010년 1월에 사제품을 받았으며, 동광본당 보좌로 있다.

[경향잡지, 2012년 9월호, 김형민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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