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7일 (월)
(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 김성우 안토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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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72

성 김성우 안토니오(1795-1841, 회장, 기해박해 때 교수)

 

 

경기도 광주 구산에서 부유한 외교인 가정의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성우(金星禹) 안토니오는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어 입교차기 전부터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천주교를 알게 되자 즉시 두 동생과 함께 입교하여 열렬한 신앙으로 친척과 이웃에게 전교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그 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도 중년에 이르러 입교하고 세상을 떠나자 김성우는 유방제 신부에게 직접 성세(세례) 성사를 받고는 서울로 이사하여 사신의 집에 공소를 만들어 신부들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김성우는 천주교인으로 밀고되었으나 미리 피신했었다. 고향 구산에 남아 있던 두 동생만이 체포되어 큰 동생 김덕심은 2년 후인 1841년 1월 28일 광주 옥에서 옥사했고, 작은 동생은 여러 해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피신해 있던 김성우도 1840년 1월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김성우는 매우 가혹한 형벌을 받았으나 참아냈다. 옥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며 외교인 죄수들에게 전교하고 그중 2명을 신앙으로 인도했다. 이렇게 옥중에서도 열렬한 신앙으로 무수한 고초를 견뎌낸 김성우는 옥중 생활 15개월 만인 1841년 4월 28일 마지막으로 치도곤 60도를 맞고 그 다음 날 47세를 일기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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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천주교인으로 남기를 원했던 김성우는 경기도 광주 구산에서 태어났다. 삼형 제중 맏이인 그의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어 입교하기 전부터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천주교를 알게 되자 즉시 동생과 함께 입교하였고, 여러 친척과 이웃들에게 전교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전체를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그후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김 안토니오는 유방제 신부에게 직접 성세성사를 받고 서울로 이사한 뒤 자신의 집에 공소를 마련하여 신부들을 모시며 생활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어 이곳 저곳으로 피신해 다니던 안토니오는 결국 1840년 1월경 가족들과 함께 붙잡혔다. 안토니오 포장 앞에 끌려와 거듭 신문을 받고 곤장을 맞으며 배교할 것을 독촉당했으나, 그는 "나는 천주교인이오. 또 천주교인으로 죽고자 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옥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며 외교인 죄수들에게 전교하여 주명을 신앙으로 선도했다. 이렇게 옥에서도 열절한 신앙으로 언도했다. 이렇게 옥에서도 열절한 신앙으로 무수한 고초를 견뎌낸 심성우 안토니오는 옥중생활 십오개월만인 1841년 4월 28일 마지막으로 치도곤 육십 도를 맞고 그 이튿날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마흔 아홉 살이었다. 구산에 복음을 전한 안토니오의 일가에는 모두 여섯 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경향잡지, 199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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