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 (토)
(녹)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강론자료

2011-0831.....믿음을 고백하는 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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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9-01 ㅣ No.1082

연중 22 주간 수요일 - 홀수 해 콜로새 1,1-8     루카 4,38-44

 

2011. 8. 31. 등촌3

주제 : 믿음을 고백하는 이의 삶이 중요함

세상살이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많습니다. 그렇게 말할 때, 그 순서는 보통 우리 목숨과 관련되는 것을 그중 먼저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제 개인의 이야기라면, 아무래도 목숨에 관한 것이 그중 첫 번째 고려할 조건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유아기적인 자세를 벗어난다면 우리는 다른 조건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일으키시는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전하는 복음을 여러차례 읽고 들으면서, 그리고 그냥 무심코 넘기는 일이 많기는 하지만, 오늘 복음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마귀들이 고백했다는 내용에 대한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의 기적 때문에, 자기들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면서, 예수님을 가리켜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는 표현도 나왔습니다. 이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신앙의 길에서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드러나는 결과만 옳다면 그 과정이 어떠한지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이론도 있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신앙에서 그 원칙은 타당하게 여길 수는 없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마귀들이 외치는 항복선언의 내용이나 우리가 고백할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내용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 말은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그 삶의 바탕이나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으로 잘 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내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드러내는 삶의 자세가 진정으로 하느님의 뜻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내 생각대로만 그 판단을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삶을 올바르게 드러내려면 그가 갖고 있는 자세도 바를 수 있어야 합니다. 바꿔 말하면, 겉으로는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어도, 내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이라면, 아무리 훌륭한 칭찬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결실은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께 아주 가까이 다가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있도록 더 큰 도우심을 청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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