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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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2011-0612.....하느님의 은총을 얻기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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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6-11 ㅣ No.1046

성령강림 대축일 - 가해
사도행전 2,1-11                코린토112,3-7.12-13              요한 20,19-23
2011. 6. 12.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방문 은총을 얻기 위하여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교회의 전례력은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을 지내고 나면, 부활시기를 마치고, 연중시기라고 해서, 그 전례시기를 구별해서 올해 말까지 계속 기념할 것입니다. 부활시기가 되었든지, 연중시기가 되었든지 세상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고 성실하게 움직이려고 하는 분들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시기일 것입니다.
 
오늘 성령강림대축일은 우리 신앙인들이 하느님에게서 선물을 받는 날입니다. 물론 그 선물은 받을 준비를 갖춘 사람,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물을 받으려고 특별히 준비를 한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혹시 제가 하는 선물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오늘은 집에 무엇을 갖고 갈 수 있도록 성당에서 무얼 주려나......하고 생각할 분들에게는 차원이 다르지만, 오늘은 우리가 선물을 받는 날입니다.
 
이 하느님의 선물은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거나 대할 수 있는 것처럼, 아버지나 어머니의 자녀로 태어나고 그분들의 뜻을 어기지 않고, 아직 목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유산을 물려받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선물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의 것을 물려받거나 나누어 받을 때는 목숨의 차원이라는 표현을 쓰고, 하느님에 관련된, 우리 삶의 본질에 관련된 좀 더 본질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생명의 차원이라는 말을 분리해서 사용합니다. 제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그 구별에 놀라운 마력이 들어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물을 받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분명히 정답은 있을 테지만 그 정답대로 모든 사람이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 참 서글프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가 우리 신앙인들의 전반적인 삶을 생각하면서 서글퍼한다고 해서 무엇이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성령강림은 사건이었습니다. 사건(事件)이라는 표현을 쓰는 의도는, 이 성령강림이 우리가 예상하거나 세상에서 바라던 대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 위의 최고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모든 것을 사람의 생각대로 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갖는 마음의 바람에 따라 현실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방향이나 의도는 저만치 앞서 가고, 몸은 그렇게 따르지 못한다고 한다면, 우리가 삶에서 아무리 좋은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좋은 일들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뜻을 담아서, 성령강림은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강림은 음식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뒤에서 누군가 우리를 부르는 것과 비슷한 세상의 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어나는 세상의 일들은 우리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아주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성령강림은 그런 것과 차원을 달리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던 날에, ‘올리브산에 모여 있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물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며칠이라고 그 기간을 말씀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하느님께서 정하신 만큼 시간이 흐르자, 그 말씀에 따라서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성령이 선물로 내려온 것입니다. 우리가 읽는 사도행전에는 그렇게 모여 있던 사도들과 제자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우리가 짐작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머물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함께 머물러 있으면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특별히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요? 복음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연거푸 평화를 빌어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만, 세상살이에 바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그 말씀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느님의 선물이 오는 것은 우리들 각자가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성령의 선물로 말할 것은 아니라고 해도, 세상살이에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일 것입니다. 그럼 이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세상의 기준에서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위협이나 협박을 당하지 않을 만큼, 핵무기나 전투기나 사람을 많이 죽일 수 있는 폭탄 같은 무기를 먼저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준비하고 힘을 키워야 평화를 누릴 수 있고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신앙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에 따라서 우리가 성령강림을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만나는지, 우리 삶을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그분의 의도대로 따라 살게 되는 사건(事件)이 되는지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세상살이에서 다양한 일을 하도록 배려하십니다. 하지만 욕심 많은(?) 세상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많은 것을 선물로 베풀어주시기를 바라면서도 늘 더 갖고 싶다고 말하고, 내가 적지 않은 것을 받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다시 내어놓을 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을 보면서,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그런 고민 자체가 아무런 쓸데없는 일입니다. 다만, 그렇게 바라보고 구별할 수 있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기준을 따라 사는지 잠시 돌아본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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