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가톨릭 교리

교리상식: 기도 - 진정한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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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1-17 ㅣ No.687

[알기 쉬운 교리상식] 기도 - 진정한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지금의 대구가톨릭신학교가 남산동 캠퍼스로 옮기기 전에는 대구 앞산자락에 있었다. 학교가 교구청 근처로 옮기기로 확정되면서 운동장에서는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었고, 운동장이 없어진 우리에게는 오히려 운동공간이 넓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학장신부님께서 오후 시간에 한하여 학교 바깥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한 주간에 두 번 허락되던 신학교 대문 출입이 매일 가능하게 되었고, 우리는 주로 산행을 하였다. 지금도 앞산의 작은 골짜기들이 눈에 선할 정도로 누볐던 기억이 난다. 입시철이 다가오면 부수입도 생긴다. 계곡 바위 밑이나 장소가 아늑한 곳이면 촛불 흔적과 함께 탐스런 과일이 놓여 있는 곳이 더러 있었는데, 그 과일들은 우리의 배낭에 담겨서 훌륭한 산행간식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도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물론이고 불교신자들도 기도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백팔 배는 일상화 되어 있고, 심지어 삼천 배도 한다. 팔공산의 ○바위는 입시철이 되면 수험생을 둔 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기성종교인들 뿐만 아니라 비종교인들도 은연중에 기도를 한다.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하는 장면들을 우리는 드라마에서 자주 본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은 적어도 잠정적인 종교인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전에 보면 기도(祈禱)는 “사람이 절대적 존재에게 어찌해 달라고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빌다.”라고 되어 있다. 한자 사전에도 기도는 ‘빌 기(祈)’에 ‘빌 도(禱)’로 되어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기도는 청원기도(請願祈禱) 정도일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기도는 그 이상을 말한다.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아버지나 어머니를 만났을 때를 상상해 보자.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부모님께 부탁할 수도 있고, 도움을 청할 수도 있으며, 무언가를 자랑할 수도 있고, 부모님의 능력에 대하여 감탄할 수도 있다. 때로는 아버지나 어머니께 서운한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다.

기도는 대화이다. 일방적으로 무엇을 해달라고 조르는 것은 ‘나는 가만히 있을 테니까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라는 식이다. 초보자가 기도할 때는 ‘내가’ 말을 많이 하지만, 기도의 묘미를 느낀 사람일수록 말수는 줄어들고 말씀을 듣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말하는 기도에서 듣는 기도로 바뀐다는 것은 나 중심의 기도에서 하느님 중심의 기도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된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내용에 따른 기도의 분류

통회의 기도


하느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기도이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죄이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이 회개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하느님을 떠나 있었던 것에 대한 용서를 청하고, 아울러 다시는 하느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바치는 기도이다. 내용으로 따진다면 모든 기도의 기초가 되는 기도이다.

청원기도

너무나 익숙한 기도이다.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이다. 살다가 보면 우리의 능력으로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청원기도는 어린아이처럼 해야 한다. 내 잇속을 위한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실까? 청원기도의 전제조건은 항상 하느님의 뜻이다. 예수님의 기도를 떠올려 보자.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전구(중재의 기도)

청원기도와 연관되는 것이 중재의 기도이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떠올려 보자. 아브라함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기보다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타락에 빠진 소돔을 벌하시려는 하느님께 끝까지 매달려서 죄인들을 구해보려 했던 중재기도의 모범이시다. 우리의 중재의 기도(전구)는 성인들의 통공을 나타내며, 특히 연옥영혼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 가톨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감사기도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기도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모든 사건과 모든 필요는 청원기도의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감사기도의 동기가 될 수 있다.”(2638항) 고 가르친다. 바오로 사도도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8)라고 하면서 감사의 기도는 신앙인의 기본자세임을 강조한다.

흠숭의 기도

절대자이신 하느님께만 드리는 찬미의 행위이고 기도의 절정이다. 흠숭의 기도를 ‘찬양’ 혹은 ‘찬미의 기도’라고도 부른다. 기도를 많이 할수록, 특히 감사의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면 저절로 흠숭의 기도를 하게 된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이해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은 이해관계를 완전히 초월한다. “찬양은 단순히 하느님께서 하느님이시기에 그분을 기리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에’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649항)

[월간빛, 2012년 11월호, 하창호 가브리엘 신부(매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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