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의 대가들: 마더 데레사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2-09 ㅣ No.350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마더 데레사 (1) 생애


1997년 9월 5일 마더 데레사의 타계 소식이 매스콤을 통해 전해지자 온 세계는 한결같이 「인류의 참 어머니」를 잃게 되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애도했다. 그녀가 평상시 종교, 이념, 민족, 피부색을 초월한 모든 이로부터 얼마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는지 새삼 온 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녀가 존경과 사랑을 받도록 했을까? 그것은 사랑의 기적을 이룬 가난이었다. 마더 데레사는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렸던 가난한 이들 중 가난한 이였다. 그녀에게 가난은 참 기쁨이었고 자유였으며 사랑의 힘이었고 역설적이게도 풍요로움이었다. 그녀에게 가난은 막힐 곳 없이 어디든지 왕래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던 방편이었으며 비결이었다. 그녀는 '가진 것이 많으면 주기 어렵고 가진 것이 없을수록 더 자유롭게 많이 나눌 수 있다는 역설을 실천하고 증거하면서 각박한 오늘의 세상에 놀라운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도록 한 주님의 일꾼이었다.

마더 데레사는 1910년 8월 26일 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 공화국의 수도 스코페에서 아버지 니콜라 보약스히야와 어머니 드라나 베르나이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는 태어난 다음날 아녜스 곤히아라는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부지런하고 신앙심 깊은 어머니 드라나는 매일 아침 자녀들을 데리고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하루의 첫 과제로 여길 만큼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정성을 들였으며 가난하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대한 사랑을 실천하였다. 아녜스는 어려서부터 그러한 불쌍한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복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라났던 것이다. 아녜스는 소녀시절부터 성인전과 선교사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본당의 여러 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8세되던 1928년 어느 날 그녀는 기도 중에 선교에 대한 그녀의 관심이 수도생활로 이끄는 소명임을 깨닫게 되며 부르심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회 사제인 본당 신부의 지도와 도움으로 그녀는 더블린에 있는 로레토 성모 수녀회에 입회했다. 그 회의 수녀들이 인도에서 봉사하고 있는 일에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블린에서 두 달간 집중적으로 영어를 공부한 후 인도로 가 다질링에서 수련기를 시작했다. 1931년 5월 24일 유기 서원을 하면서 「데레사」라는 이름을 택했다. 그 후 7년간 데레사는 로레토 성모회가 운영하는 캘커타의 성 마리아 고등학교에서 지리와 역사를 가르쳤다. 1937년 5월 24일 그녀는 종신 서원을 했고 그 학교의 교장직을 맡게 되었다.

1946년 9월 10일 대피정을 참석하러 다질링으로 가는 기차 속에서 데레사는 획기적인 소명을 느끼게 된다. 그 수도회를 떠나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그들을 도우며 봉사해야 한다는 소명을 선명하게 마음의 귀로 듣게 된 것이다. 데레사는 그 날을 「영감의 날」이라 불렀다. 그녀에게 그 수도원을 떠난다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었으며 또 로마에서 특별한 허락을 받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다. 결국 1948년 로마에서 그녀가 수도회 밖에서 수도자로 살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 해 8월 16일 그녀는 로레토 성모회를 떠나 기초 간호학 3개월 속성 과정을 이수한 후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49년 3월 19일 제자인 슈바시니 다스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수도회의 첫 지원자로 마더 데레사와 합류했다. 다음 해 10월 7일 「사랑의 선교회」가 로마로부터 승인 받으며 10명의 회원이 수련기를 시작했다. 1952년 8월 22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임종자의 집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정원까지 아픈 이들로 꽉 들어차게 되었다. 1953년에 「사랑의 선교회」본원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빈민굴의 고아들을 위한 집을 운영했고 캘커타 외곽에 나환자들의 자립 센터를 열었다. 1962년 마더 데레사는 인도 정부가 수여하는 파드나 스리 상을 받았고 시토(SEATO) 국가들이 수여하는 막사이사이 상을 받았다.

1965년 2월 1일 바오로 6세 교황은 「사랑의 선교회」가 세계 가톨릭 교회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인가해 주었다. 그 동안 인도의 지역 주교의 관할 안에서 만 활동하도록 제한 받던 그들이 세계 어디에서든지 선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 이미 3백 여명의 수녀들이 여러 개의 시설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베네주엘라에 해외 첫 분원이 시작되면서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등 여러 대륙에 분원들이 진출했다. 바오로 6세는 마더 데레사의 적극적 후원자가 되어 선교 활동을 원활하게 하도록 그녀에게 바티칸 시민권을 수여했다.

1971년엔 세계 여러 나라에 50 여 개의 분원을 갖게 되었다. 1969년 3월 26일 「사랑의 선교회 협조자회」가 교황청으로부터 회칙을 인가 받아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끊임없이 늘어나는 이 협조자들은 세계 도처에서 사랑의 선교회의 일을 넓혀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맬컴 머거리지가 글과 전파를 통해 마더 데레사를 서방 세계에 소개함으로써 그녀는 가톨릭 신자들 뿐 아니라 세계의 각 층의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1970년대에 국제적으로 유명한 상들을 받으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미국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상」을 받았고 영국에서 「템플턴상」을 그리고 바티칸에서 「요한 23세 평화상」을 받았다. 1979년 12월 10일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노벨 평화상을 그녀가 온 삶을 바친 가난한 사람들의 이름으로 받게 되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 후 사랑의 선교회는 놀라운 속도로 세계 여러 나라로 뻗어 나갔다.

수많은 새로운 분원들이 열리고 놀라울 만큼 많은 새로운 성소자들이 몰려 왔다. 한국에도 사랑의 선교 수사회가 1977년에 진출했고 마더 데레사는 1981년 5월에 한국을 방문 한 후 두 차례(1982. 4, 1985. 1) 더 방문했으며 1981년부터 사랑의 선교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활동해 오고 있다.

1980년엔 14개 나라에, 1981년엔 한국을 포함하여 8개 나라에, 1982년에 12 곳, 1983년에 14곳에 분원을 열었다. 1986년부터 사랑의 선교회는 다른 선교사들에게는 닫혀있던 나라들에 들어가게 되었다. 에디오피아, 남 예멘, 니카라과, 쿠바 그리고 심지어 러시아의 모스크바에도 분원 설립 허가를 받았다.

1970년 이후부터 알코홀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하고 사회에 복귀시키는 치료 센터를 여러 곳에 열었다. 또한 나환자 병원과 나환자들을 위한 재활 및 사회 복귀 센터의 운영,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보호 시설,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 결핵 환자들과 영양실조 걸린 이들을 위한 치료소 및 요양소들을 설치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1990년 4월 16일 마더 데레사는 건강을 이유로 총장직을 물러났으나 같은 해 9월 총장직에 재선출되었다.

1991년 그녀는 걸프전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두 나라 정상에게 호소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조지 부시 대통령과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죄 없는 이들의 이름으로 열정적으로 호소하는 마더 데레사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1994년 2월 3일 미국 워싱턴의 조찬 기도회에서 초청 받은 마더 데레사는 클린턴 대통령 부처와 고어 부통령 부처 그리고 수천 명의 관중들에게 생명을 중시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해 주기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선언했다.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마더 데레사를 미국 시민으로 추대하는 헌장에 서명했다.

1997년 9월 5일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이며 세계 모든 이의 영적 어머니인 마더 데레사는 87세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이 때에 이미 그의 영성을 지속적으로 실현하는 분신들, 4000 여명의 사랑의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서 운영하는 구호시설, 사랑의 집은 무려 566개나 되었다. [가톨릭신문, 2001년 4월 22일,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본당 주임)]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마더 데레사 (2) 영성


마더 데레사의 성소의 특유성과 영성의 고유성은 그녀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의 제4서원에서 잘 드러난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봉사한다』. 이것은 그녀가 자주 인용하며 언급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35~36, 40).


물리적 가난과 영적 가난

마더 데레사는 가난을 두 차원으로 나눈다. 한 차원은 물질적 가난으로서 의식주 같은 일상 생활 용품들의 결핍을 뜻한다. 다른 차원은 영적 가난으로서 소외감, 고독, 이기주의, 윤리의식의 결여, 애정 결핍, 무엇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결여이다. 전자의 경우는 물질적인 것이 충족될 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의 가난은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며 이것은 개인, 가정 그리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황폐케 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흔히 가난이란 빵에 굶주리거나 의복이 부족하거나 혹은 시멘트 벽돌을 가지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훨씬 더 큰 가난이 있습니다. 사랑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가난, 애정과 사랑에서 제외되었다고 느끼는 가난입니다. 가깝다고 여길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가난입니다'

마더 데레사에 의하면,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그릇을 주거나 집 없는 사람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쉽고 그것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지만 버려짐, 애정 결핍 등 영적인 탈진에서 오는 쓰라린 분노와 외로움을 없애주거나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영적 가난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가정 안에서 있을 수 있으며 가난한 이는 실상 가장 가까운 가족 중에 있을 수 있다. 가난을 나누는 일은 멀리 있는 이에게 큰 일을 해주는 것이 아니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관심을 가지며 작은 일로 봉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질적 가난이 어떻게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겠는지 질문 받은 마더 데레사는 '모두가 함께 가난을 나눌 때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물질적 가난은 영적 가난이 해결될 때 자연히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나눔의 정신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대가없는 봉사

길바닥에 쓰러져 죽어 가는 이들을 데려다가 사랑을 체험하며 임종할 수 있도록 돕는 일로 마더 데레사의 사랑의 선교는 시작되었다. 버림받았다고 느끼며 쓰러져있는 이들을 만나는 대로 데려다가 따뜻한 말, 사랑의 손길로 물을 먹이고 씻어주며 상처를 치유해 주는 일이었다. 이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가 그런 불행 중에 있으며 그들을 구하기 위한 기금 조성과 사회 사업 기구가 필요한데 그러한 조그마한 행위가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과 자매들이 수행하는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힌다.

『우리가 하는 것이란 태평양의 물 한 방울 정도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이 물 한 방울이 태평양에 있지 않으면 그 물은 어떻든 한 방울이라도 줄 것이 아니겠습니까?…무엇보다도 자기네가 버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기네를 사랑하고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적어도 살아있는 몇 시간이라도 느끼게 해 주고 싶은 겁니다. 자기들도 하느님의 자녀이며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사실, 즉 자기들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는 자들이 있음을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나환자는 치유될 수 있습니다. 결핵을 위한 약도 있고 그 병의 치료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버림을 당한 이들에게는 마음속으로부터 진정으로 봉사하는 사랑의 손길이 아니고는 이 무서운 질병은 결코 고쳐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구호시설을 구비한 사회사업가보다 죽어 가는 가난한 이 옆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와 사랑의 마음으로 정성스러이 봉사하는 마더 데레사의 모습이 실로 우리에게 더 밝은 빛을 던져주고 있다. 그녀의 그런 모범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사랑의 기적을 이루어 온 세상에 퍼져나가도록 촉진해왔다.

그녀가 수많은 상과 노벨상을 받았고 온갖 매스콤을 통해 세계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그의 근본 정신과 자세는 변함없었다. 그리고 세계 백 여 개 나라의 560 개 이상 사랑의 집에서 4천 여명의 사랑의 선교사들이 (봉사 분야는 상황에 따라 다양해졌을지라도) 창립자의 근본 정신에 따라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가장 가난한 이들로서 오늘도 사랑의 봉사를 하고 있다.


복음적 가난 : 하느님 섭리에 맡기며 봉사하는 자세

마더 데레사는 가장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사랑하며 봉사해야하는 자신들을 가장 가난한 이들과 동일시한다. 『누가 가장 가난한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 배고픈 사람, 잊혀진 사람, 헐벗은 사람, 집 없는 사람, 나병환자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사랑의 선교사들 우리 또한 가장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일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선 성체성사적 일치가 필요합니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과 자매들에게 가난은 어느 것으로부터 구속되지 않고 나누며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자유이며 기쁨이라고 표현한다. 이 가난의 자유는 또한 그들 자신의 사명을 하느님의 섭리에 온통 맡기며 일하도록 해준다. 『우리의 사업을 국가가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교회의 어떤 원조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급료도 받지 않으며 대여세도, 은행에 구좌도 어떠한 경제적인 고정 수입도 없습니다…그러나 언제나 의지할 데가 있습니다…꽃이나 새나 들의 풀보다 소중하다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하느님께 대한 신뢰는 인간적 안전 장치의 유혹 마저 거부한다. 어느 날 인도의 한 부자가 마더 데레사의 구호 사업을 위해 큰 돈을 기금으로 은행에 예치해 주겠다고 제의해 왔다. 조건은 그 기금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더 데레사는 그의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회신을 보냈다. 그러한 기금이 하느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자세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동안 돈을 은행에 예치시켜 놓을 순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충격을 받았지만 결국 기금 조성이란 조건 없이 그 돈 전부를 기부했다.

한 주교가 그의 교구 안에서 활동하는 사랑의 선교사들의 경제문제를 염려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주님은 이 곳에서도 실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자원이 없어 하는 일을 중단 한적 없느냐고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에겐 남아 본적도 없었지만 부족해 본적도 없었습니다. 때로는 그런 일이 신기한 방법으로 기적에 가깝게 일어납니다.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을 거라고 불안으로 눈을 뜨곤 합니다. 그런데 몇 시간 후면 거의 항상 기대하지 않았던 물품이 무명의 희사자로부터 배달되어 오곤 합니다』

어느 날 아침 주방 책임 수녀가 먹을 음식이 없다고 난감해 하며 마더 데레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들이 쉬게되어 학생들에게 지급될 빵이 데레사에게 배달되었다. 그녀는 그 때의 일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어린이들과 7000명의 식구들이 이틀동안 그 빵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일생동안 그렇게 빵을 풍족히 먹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온 시내의 어느 누구도 왜 학교가 쉬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하느님의 신비로운 배려로 알아들었습니다』 [가톨릭신문, 2001년 5월 13일,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본당 주임)]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마더 데레사 (3) 선교의 영성


마더 데레사는 수도 서원 때 예수 아기의 데레사 성녀를 수호자로 정하면서 그 이름을 선택했고 생활과 활동에 있어서도 수호 성녀의 영성 자세를 본받고자 했다. 예수 아기 데레사는 「일상적 일을 비상한 사랑으로 실행하신 분」으로 확인되며 시성 되었던 것이다.

마더 데레사와 사랑의 선교회 자매들은 지칠 줄 모르게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해 지극히 평범한 봉사 활동을 뛰어난 사랑으로 실천해 왔다. 한편 성령께서 그들의 사랑의 봉사 활동에 놀라운 결실을 이루어 주고 계심을 도처에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1) 가장 버림받은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상의 관상가’

마더 데레사는 자매들이 가장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보고 만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일상의 관상가들이 되기를 가르쳐 왔다. 실로 그들은 길거리에 버려진 사람들, 나병환자, 에이즈 환자 등 죽어 가는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으며 사랑으로 봉사한다.

마더 데레사는 어느 날 한 입회자가 다른 자매들과 함께 임종자의 집으로 봉사하러 떠나려 할 때 이렇게 권고의 말을 했다.

『미사 드리는 사제가 빵의 형상 안에 계신 예수님을 얼마나 큰 사랑과 섬세한 정성으로 만지는지 여러분은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임종자의 집에 가면 그와 같이 하십시오. 가난한 이들의 고통받는 육체의 형상 안에 바로 예수님이 계십니다』

자매들이 세 시간 후 돌아 왔다. 그들과 함께 다녀온 입회자가 기쁨 충만한 모습으로 마더 데레사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 시간 동안 예수님의 몸을 만졌습니다. 우리는 하수구에 빠져있던 사람을 임종자의 집으로 옮겨왔는데 그는 불결했고 상처에 온통 구더기로 덮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를 예수님으로 생각하면서 씻어 주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를 사랑하시지만 고통 중에 있는 이를 각별히 사랑해 주신다는 메시지는 그러한 상태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사랑의 선교회 자매들은 그 진리를 그들에게 확신시키고자 한다. 한편 그들은 그 진리를 사랑으로 봉사하는 자매들 안에서 확인한다.

마더 데레사는 어느 날 나환자들에게 그들의 신체적 질병은 결코 죄의 결과가 아니고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은 특별한 애정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계시다고 격려했다. 그 때 나병으로 온통 일그러진 한 노인이 마더 데레사에게 가까이 와서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나를 기쁘게 했어요. 나는 언제나 어느 누구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들어왔지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군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2)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신뢰하며 임종자를 천국 문턱까지 동행

마더 데레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흔들림 없는 신앙의 증거자로 산 분이다. 그녀는 참된 신앙을 전제로 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구원의 가능성을 충만하게 확신하고 있음을 잘 드러냈는데 이것은 가톨릭 교회와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교의 한계를 가장 폭 넓은 선으로 포용하는 선의의 신앙이다.

이러한 신념 때문에 마더 데레사와 자매들은 매일 죽어 가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대하면서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개종이나 종교적 신앙고백을 변경시켜 주려는 시도를 자제한다. 그들은 각자의 믿음을 존중하며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최선의 도움을 베푼다. 힌두교인들에게 갠지스 강의 물을 가져다준다든지 가톨릭 신자들에게 사제를,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목회자를 모셔다 주는 일 등이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들에게 자매들이 결코 간과하지 않는 것은 잘못에 대한 뉘우침과 구원을 보증하는 절대자의 이름(하느님에 상응하는 이름)을 부르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마데 데레사는 이러한 일을 하면서 많은 이들을 천국 문턱에까지 동반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그러므로 병들고 버려진 이들은 임종자의 집에서 어떠한 차별 없이 사랑의 선교회 자매들의 따뜻한 사랑의 봉사를 받으며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평화로이 죽어 간다.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캘커타에서 우리는 2만7000 명 이상의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데려 왔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찾아오기도 하고 우리가 그들을 길거리에서 구호소로 데려 오기도 합니다. 그들은 매우 평화로이 죽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그들은 고요하게 죽어 갑니다. 자매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다음과 같이 말하길 꺼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하느님(혹은 그에 상응하는 절대자) 앞에서 잘못 한 것을 뉘우칩니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말하기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마더 데레사는 거의 죽어가고 있던 한 사람을 임종자의 집에 옮겨 왔다. 지극한 간호와 보살핌을 받고서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길거리에서 동물처럼 살았어요. 그런데 이토록 관심 속에서 사랑을 받으며 천사처럼 죽을 수 있게 되었군요. 나는 이제 하느님의 집으로 갑니다』


3) 사랑 실천은 가장 효율적 선교

마더 데레사와 자매들이 가장 가난한 이 들에게 실천하는 사랑의 봉사는 그 자체로 선교이다. 이슬람인들은 사랑의 선교회 자매들을 '사랑의 전달자들'이라 부른다. 그것은 자매들이 실천하는 영웅적 사랑에서 그들이 큰 감명을 받기 때문이다.

마더 데레사는 1978년 독일 프리브룩 주교좌 성당에서 강연 중에 이슬람 국가 예멘에 초대받은 사랑의 선교회 자매들의 증거의 삶에 대해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증거의 삶의 풍성한 결실을 살펴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행위가 아니고 오히려 행동에 옮기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입니다…우리가 초대받은 나라 예멘에는 그리스도교 신앙 금지 800년만에 우리 자매들의 현존이 그 백성의 생활 안에 새로운 빛을 밝혀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슬람 통치자는 로마에 이렇게 써 보냈습니다. 수녀님들이 여기서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굶주린 그리스도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그리스도에게 옷을 입히며 버림받은 그리스도를 맞아줍니다』

마더 데레사의 강연에서 소개한 수많은 감동적 이야기들 중 한 가지 더 인용한다면 이러한 것이 있다.

『자매들은 4만9000명의 나환자들을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장 버림받고 사랑 받지 못 하며 가장 소홀히 취급되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우리 자매 하나가 상처투성이인 나환자를 치료해 주고 있었습니다. 한 이슬람 사제가 그 자매 옆에 서 있다가 고백했습니다. 「그 동안 나는 줄 곳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예언자라고 믿어 왔습니다. 오늘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분은 놀라운 사랑으로 이러한 일을 하도록 이 자매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랑의 봉사는 무신론자들에게도 감동을 주어 하느님이 계심을 깨닫고 믿도록 이끌어 준다. 쓰레기장에서 죽어 가는 환자 하나를 자매들이 임종자의 집에 막 옮겨왔을 때 어떤 사람이 그 곳을 방문했다. 그 사람이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 한 채 한 자매가 아픈 이를 간호하고 있었다. 자매가 아픈 사람을 세심히 보살펴 주고 닦아주며 미소지어 주는 것 등 조그마한 것도 놓치지 않고 그 광경을 관찰한 그 사람은 마더 데레사에게 와서 말했다.

『저는 여기 올 때에 미움 가득 찬 마음으로 하느님은 제 의식에 없었습니다…지금은 하느님으로 마음이 충만해진 가운데 떠나갑니다. 저는 그 수녀님의 행동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 불쌍한 사람을 대하는 수녀님의 손, 모습 그리고 그 수녀님 전체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내려옴을 보았습니다. 지금 저는 믿습니다』 [가톨릭신문, 2001년 5월 20일,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본당 주임)]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마더 데레사 (4)


다음과 같은 마더 데레사의 기도문 안에서 그녀의 사도직 활동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살펴 볼 수 있다.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 안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하는 힘을 얻게 된다. 기도는 그 은총을 받는 통로이며 방법이다.

『고통받으시는 주님, 제가 오늘도 그리고 날마다 아픈 이들 속에서 주님을 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을 돌봄으로써 주님께 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이 분노와 범죄와 정신이상과 같은 매력 없는 가면 속에 숨어 계셔도 제가 주님을 알아보고 「고통받으시는 예수님, 당신께 봉사하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 일인지요」 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주님, 믿음으로 눈뜨게 해 주시어 저희의 일이 결코 단조롭지 않게 해주시고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열정 속에서 기쁨을 찾게 해 주소서』


1) 사랑의 봉사는 쉽지 않은 것

마더 데레사는 한 인터뷰 중에서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수행하는 일이 쉽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고서 이렇게 대답했다. 『집중적 기도생활과 희생정신 없이는 쉽지 않지요. 우리가 가난한 이들 안에서 수난의 슬픔을 겪으시는 그리스도를 볼 수 없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서로 평화스럽게 살아가도록 해 줄 수 있다면 우리도 행복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욕구를 빼앗긴 가난한 사람들이 지금 처한 상황보다 더 어렵게 되 않을까 두려워, 서로를 위협적인 경쟁 상대로 보지 않고 조화롭게 이웃을 도우며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비참한 모습에서 불쾌감을 경험한 적은 없는 지 질문 받은 마더 데레사는 자신에게도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시인했다. 『네. 우리는 주로 죽어 가는 이들, 버림받은 노인과 가난한 이들, 고아와 나환자들 사이에서 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 대부분이 힘들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일을 언제나 수용할만한 조건에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부자들 사이에서보다는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일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생 동안 할 일입니다』


2) 사도직 수행의 비결은 기도의 삶

마더 데레사는 자신들은 단순한 사회 사업가가 아니라 선교사들이며 세상에서의 관상가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마더 데레사에게 관상이란 기도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분과 일치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삶까지 포함한다.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가 단순한 사회 사업가로 비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서 살고있는 관상가들입니다. 우리는 매일 24시간 동안 그리스도의 몸을 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려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활동을 기꺼이 실천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을 때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 비결은 단순합니다. 기도합니다. 기도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에 저를 일치시킵니다. 그분께 기도하는 것이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며 또한 그분의 계명을 수행한다는 것임을 저는 깨닫게 됩니다…저에게 기도는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도록 그분의 뜻에 일치하며 매일 24시간동안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하느님의 유용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하느님의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현존 앞에 서있음을 늘 의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나는 모든 이들 안에서 주님을 보고 만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살아 있는 기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마더 데레사는 예수께서 지상에 계신 동안 언제나 기도와 활동을 일치시키셨듯이 자신들도 노동에 기도를 일치시켜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노동에 기도를 일치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노동을 기도로 전환시키도록」 우리 자매들을 이끌어 주며 그들 안에 이 원칙을 심어 주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노동은 기도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노동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노동을 기도로 전환시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노동을 하면서 가능해집니다. 이것은 우리 노동을 기도로 전환시키는 방법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들의 사도적 활동을 주님의 뜻대로 수행할 수 있기 위해 기회 있을 때마다 협조자들의 기도 지원을 청했다. 『우리들이 하느님의 일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하느님의 사업이 그분의 것 그대로 계속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이나 저는 세상을 정복하기 위하여 폭탄도 대포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이기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는 사랑과 선을 이용합니다. 이 「기쁜 소식」이란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기도 부대의 필요성을 느끼며 남 여 관상 수도 공동체를 세웠다. 관상 수도자들은 기도와 성체조배, 희생과 보속활동에 전념하면서 생활한다. 그러나 그들도 매일 두 시간 정도는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들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도록 도와준다. 하루의 일부 시간 동안 가난한 이들 안에서 만나는 그리스도를 관상하면서 자신들의 관상생활을 보완하는 것이다.


3)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침묵

마더 데레사는 기도를 잘 하기 위하여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침묵의 방법을 소개했다. 『하느님은 침묵 속에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기도와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직면하게 되면 그분은 당신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분 자신으로 당신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 스스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며 텅 빈 공백임을 깨달을 때입니다. 기도하는 영혼은 큰 침묵의 영혼입니다』

마더 데레사에 의하면 기도의 본질적인 국면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경청하는 것이다. 그것은 침묵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나 다른 이들에게 우리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도 침묵 중에 하느님의 음성을 경청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러할 때 마음이 하느님으로 가득 차게 되고 우리의 입은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더 데레사는 그녀가 가난한 이들의 비탄 속에 계신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필요한 힘을 침묵의 기도에서 얻고 있다고 밝혔다.


4) 성체성사의 삶

마더 데레사는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삶은 무엇보다 성체성사의 삶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랑의 선교사들이 성체 성사로 양육되도록 배려하였다. 『우리는 성체로 살아야 하고 마음과 삶이 성체로 짜져야 합니다. 사랑의 선교사가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지 않다면 그리스도를 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성체에 연결되어 있습니다…우리는 성체와 가난한 이, 또 가난한 이와 성체를 따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분께서 그분에 대한 나의 배고픔을 채워주셨으므로 이제 나도 그분의 영혼에 대한 그분의 배고픔을, 사랑을 채워주러 갑니다. 성체는 기도의 성사이자 그리스도인의 삶의 결정이며 샘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성체가 가난한 이에 대한 사랑과 봉사로 우리를 이끌어 가지 않는다면 그 성체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사랑의 선교회 자매들은 그들의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성체와 일치의 삶을 산다. 그들은 하루의 일과를 미사, 영성체 및 묵상으로 시작하고 한 시간의 성체조배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성체와의 일치에서 그들은 힘, 사랑 그리고 기쁨을 얻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1년 5월 27일,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본당 주임)]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마더 데레사 (5) 영성사 안에서의 위치


1) 마더 데레사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는 다른 수도원에서 일반적으로 행하는 세 가지 서원에 한 가지를 첨가해 제4서원을 한다. 그것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봉사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선교회는 가난, 정결, 순명 뿐 아니라 가장 가난한 이들처럼 살며 그들에게 기꺼이 사랑으로 봉사하고자 다른 하나의 서원을 더 선택하여 준수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 수도회의 특별 카리스마와 고유한 영성이 잘 드러난다. 마더 데레사와 자매들은 이 사랑의 서원을 통해 받는 은총이 '가장 가난한 이들을 특별히 사랑하도록 하며 동시에 하느님의 섭리에 온통 위탁하도록 인도해 준다'고 체험을 통해 고백한다.

2) 마더 데레사의 자매들은 고통받는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광의적 관상생활을 한다.

본 의미의 「관상」이란 침묵 중에 직관을 통해 하느님을 인식하고 사랑하면서 친교를 이루는 것이지만 마더 데레사가 자주 언급하는 「세상 안에서의 관상」이란 광의적인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서 살고있는 관상가들입니다. 우리는 매일 24시간 동안 그리스도의 몸을 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안에서의 관상」이 가능하다는 근거를 마더 데레사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찾아냈다. 『너희가 여기 있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0).

실로 그리스도인의 넓은 의미의 「수평적 관상생활」은 모든 사물 안에서 특히 이웃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과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고 만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한 수평적 관상생활은 하느님의 뜻을 끊임없이 찾고 감사드리는 기도와 성령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님이 분노와 범죄와 정신이상과 같은 매력 없는 가면 속에 숨어 계셔도 제가 주님을 알아보고 「고통받으시는 예수님, 당신께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 일인 지요!」 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3) 마더 데레사는 비참한 전쟁들과 참혹한 학살, 이념적 및 종교적 대립, 착취, 인권 유린 등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으로 얼룩진 20세기의 각박한 상황에서 「행동하는 사랑」으로 사랑의 기적을 일으킨 주님의 도구였다.

자매들과 함께 그녀는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 나병환자, 에이즈 환자 등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섬기듯이 그들에게 봉사하며, 그들이 사랑이 무엇인지 체험하고 하느님 나라를 느끼도록 해 주고자 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마더 데레사와 자매들이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릴 만큼 감정이 메마른 이들에게까지 동정이 아닌 참 사랑을 느끼게 한다고 증언한다.

4) 마더 데레사는 노벨 평화상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상들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로서, 그 상들이 하느님께 영광 드리며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하느님의 사업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어 가난한 이들의 이름으로 그것들을 기꺼이 수락했다.

그녀는 상을 받아들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상을 받을 때나 받지 않을 때나 저는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 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제겐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꺼이 상을 받아들인 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환자들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상이 사랑의 선교사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일하는 것을 사람들이 더욱 선의로 바라 볼 수 있도록 크게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은행장이며 장로교 신자인 로버트 맥라마라는 마더 데레사를 노벨 평화상의 후보로 추천하면서 그 타당성을 이렇게 진술했다. 『데레사 수녀는 인간의 존엄성과 신성함에 대해 확신감을 갖고 가장 진실한 태도로 인류 평화에 도모했기 때문이다』

노벨 평화상이 마더 데레사를 기쁘게 한 가장 큰 이유는 굶주린 이를 먹게 해주고 헐벗은 이들을 입혀주며 집 없는 이를 보호해 주는 복음적 사랑실천이 온 세계가 주목하는 오슬로에서 평화의 사업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5) 마더 데레사의 사랑 실천의 사도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시며 그분의 가르침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도록 종교, 이념, 민족, 계층을 뛰어넘어 놀랄 만큼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전파되도록 했다.

힌두교가 주종을 이루는 인도뿐 아니라 800 여 년간 그리스도교 신앙을 금지해 온 예멘을 비롯하여 이슬람교의 나라들 그리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 마저 마더 데레사의 사랑의 선교회원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적극 협력하고 있다. 어떠한 선교단체나 종교생활 단체도 철저히 배격해 오던 소련이 1988년 마더 데레사의 사랑의 선교회를 초청한 것은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얼마 후 마더 데레사는 소련 평화협의회의 최고상인 금메달을 받았다.

그녀와 사랑의 선교회 활동에 대한 세계 매스컴의 보도와 그로 인한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감동, 거기에 그녀가 받은 노벨 평화 상 등 수많은 세계적 상과 메달들은 더욱 그녀를 유명하게 했고 「살아있는 성인」으로 호칭하도록 했다. 그녀의 사도직은 교회의 복음선포뿐 아니라 수도자들의 생활과 헌신적 사도직의 존귀함을 세계에 널리 알렸고 또한 수도성소의 계발과 비신자들에게까지 수도자의 위상을 높여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6) 마더 데레사는 세상의 가난을 극복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살고 활동하고 있는 위치에서 조그마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시작되고 실현 가능하다는 진리에 빛을 비추어준다.

사람들은 세상의 수많은 지역의 거대한 가난의 상황에 비해 마더 데레사와 자매들이 수행하고 있는 일이 너무 미흡하고 그들이 펴고있는 의료활동도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이라 비판하면서 그녀의 명성을 이용해 기금을 모으고 거대한 현대식 구호시설을 갖추어 체계적인 사회 사업을 하기를 권고했다. 그녀는 간결하게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대답했다. 『하느님은 저를 성공하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성실하라고 부르셨습니다. 정부 기관이 무언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면 할수록 좋습니다. 가난의 원인을 뿌리뽑는 것은 정부가 할 일입니다』『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돌아 가셨습니다…우리는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마더 데레사에게 최대의 관심사는 해결되어야 할 산적한 문제 거리에 앞서 사랑을 받아야 할 인간들이다. 그녀는 무엇이 행해져야 할 것인가 하는 이론이 아니라 나, 너 그리고 우리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원하는 것이다.

마더 데레사는 『나눔 없이 평화는 없다』는 진리를 사람들에게 일깨우며 사랑의 나눔을 호소하였다. 『세상은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한없이 궁핍하다』는 간디의 명언대로 탐욕은 전쟁, 빼앗음, 이기주의 그리고 물질적 가난을 초래하는 영적 가난을 낳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마더 데레사가 제시한 과제를 명심하고 실행해야한다. 『가난의 해결은 모두가 함께 나눌 때 가능합니다』 [가톨릭신문, 2001년 6월 3일,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본당 주임)]


2,00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