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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사목] 해양사목의 역사와 의미: 목마른 바다 나그네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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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6 ㅣ No.433

[경향 돋보기] 해양사목의 역사와 의미


목마른 바다 나그네를 위하여

 

 

폭풍 속의 이방인들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 벗은 두 배가 / 나란히 누워 /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 응, 바다가 잠잠해서.” 정끝별 시인의 ‘밀물’이라는 시입니다. 파도를 헤치고 돌아온 배의 휴식을 의인화한 이 시는 마치 선원들의 삶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습니다.

 

선원들은 바다를 떠다니는 나그네입니다. 항구에 닻을 내려도 폭풍의 바다를 지나오다 생긴 상처를 싸매줄 따뜻한 가정이나 쉴 곳도, 반겨줄 사람조차 없이 이국의 낯선 항구를 전전하는 떠돌이 이방인입니다. 그래서 선원의 직업을 3D 업종이라고 합니다. 더러는 3D에서 ‘더러운’(Dirty)이라는 단어는 빼고 ‘격리’(Distant)를 넣어 3D 업종 가운데 가장 깨끗한 직업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에서 청년은 실연의 고통을 안고 겨울의 육지를 방랑하지만, 선원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육지가 아닌 바다 위에서 사람들과 동떨어져 짧게는 수십 일에서 길게는 수 개월간 거대한 폭풍우, 피할 수 없는 외로움과 맞닥뜨려야 하는 신세입니다. 아무리 단련된 선원들이라도 폭풍우가 길어지면 지옥 같은 멀미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9,6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대 용량)의 컨테이너 선박은 그 길이만 해도 321미터로서, 63빌딩 높이보다 43미터가 더 길고 표준 축구경기장 길이의 세 배를 넘으며, 크기는 섬 덩이만 합니다. 그러나 그런 거대한 선체도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는 작은 나뭇잎일 뿐, 파도와 바람따라 전후좌우로 요동치며 비명을 질러대는 것입니다.

 

선원들이야말로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실이 두려워 떨기도 하며, 안정된 생활 속에 자신을 추스르면서 절대자에게 의존하고 싶지만 생계 때문에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가족들 또한 선원 아들과 남편 또는 아버지를 둔 사람들이기에,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그들의 외로움과 근심 걱정도 이에 못지않을 것입니다.

 

 

떠도는 배 위에 복음의 씨를

 

해양사목은 1920년대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항구에서 헌신적인 평신도들과 다니엘 수사님, 그리고 도날드 매킨토시 신부님의 활동으로 싹을 틔웠습니다. 그 헌신적인 봉사를 비오 1l세 교황님께서 강복하셨고 이를 널리 퍼뜨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이때부터 해양사목이 세계 각국의 항구로 전파되었으며, 지금은 100여 개 나라에서 천주교의 특수사목으로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탈출 22,20).

 

따라서 교회는 사회적 약자이며 이방인인 선원들과 그 가족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믿음을 가지도록 돕습니다. 특히 거친 바다에서 주님의 평화가 함께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육지에서는 선원 복지가 잘 시행되도록 도와주며, 신앙 안에서 나그네인 선원과 가족이 서로 깊은 친교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는 봉사와 선교 활동입니다.

 

우리나라의 해양사목은 1978년 6월 1일에 부산교구가 사목국 산하에 해양사목실을 설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카리타스 봉사활동으로 선원들과 조선소 노동자들을 상담하였던 평신도 박숙자 요세피나 자매가 담당자로 임명되어, 해양가족회를 조직하고 상담과 고충처리, 봉사와 복지활동을 주로 전담하였습니다.

 

사목자로는 메리놀 외방선교회의 파명건 다윗 신부님께서 1984년까지 외항선박을 방문하여 미사와 선교활동을 주로 하셨습니다. 파 신부님께서 미국으로 돌아가신 뒤 침체에 빠졌던 해양사목이 다시 뿌리를 내린 것은 1987년 무렵입니다. 여기에는 해양사목을 전공하신 예수성심전교회 길반석 베드로(필리핀) 신부님의 공이 컸습니다.

 

먼저 선원들이 많이 출입하는 ‘마린 센터’에 사무실을 마련하여 선원의 고충처리와 선박 방선활동을 증대하였고, 해양사목 자문위원회와 가족회를 구성하여 조직을 활성화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인 1991년 7월 25일, 국내외 선원들을 위로하는 ‘선원의 날 행사’를 우리나라 최초로 개최하였습니다. 이 행사는 우리나라 해양산업과 종사자를 위한 ‘바다의 날’(5월 31일) 제정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씨앗은 큰 나무 되어

 

여명기가 지난 1997년 2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해양사목을 전공하신 예수성심전교회의 안창호 발타사르 신부님이 제4대 사목자로 부임하면서 바야흐로 해양사목 활동은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자문위원회를 해양사목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후원회도 결성하여 교회 안팎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존 활동을 비롯하여 부활 대축일에 외국선박을 방문하여 부활달걀을, 성탄절에는 외국인 선원 위로행사와 함께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 밖에 부산에 기항한 외국선원들의 휴식과 고충처리 공간인 ‘마리너스 클럽’과 해양노동 상담소 운영, 해양대와 해양수산연수원의 미래 선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예비신자 교리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 활동입니다.

 

해양 소식지도 내고 부산 해양사목이 걸어온 30년 발자취도 엮어냈습니다. 해양사목의 이름을 내걸고 차린 불우이웃 돕기 하루찻집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금년 10월에 개최될 제16회 해양인의 날 행사에는 더욱 많은 국내외 선원들과 해양산업종사자, 그 가족들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너희는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36). 해양사목 종사자들은 대부분 해상의 나그네였던 선원 출신입니다. 그들이 이방인이었을 때 외국항구에서 교회와 해양사목 활동을 통해 받은 따뜻한 환대와 사랑의 씨앗아 귀국한 뒤 가족들과 함께 하느님을 알고 보은하는 나무로 자란 것입니다. 그래서 해양사목 활동에 기꺼이 참여하며 봉사하는 것이지요. 지금도 정박 중인 배를 방문할 때 복음으로 맞게 되는 이방인 선원들의 물기 어린 눈빛을 보면 바다 나그네였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콩나물에는 물이 고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양사목 활동을 통해 나그네에게 드린 마실 물은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가득 고여 먼 훗날 하느님 나라의 깊고 큰 우물이 될 것입니다!

 

* 조천복 윤호 요셉 - 15년간 선원으로 일하다가 하선한 뒤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부산 해앙사목협의회 회장, 전국 해상산업 노조연맹 위원장과 한국노총 사무총장을 지냈고, 틈틈이 쓴 칼럼을 엮어 “일어서는 바다”라는 책을 냈다. 지금은 전국참여 해양 ? 수산 복지연대 대표, 부산 해양사목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06년 8월호, 조천복 윤호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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