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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2011-0109.....주님 세례 축일 -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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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1-08 ㅣ No.971

주님 세례 축일 (가해)
이사야 42,1-4.6-7 사도행전 10,34-38 마태오 3,13-17
2011. 1. 9. 등촌3
주제 : 우리가 기억하는 세례의 의미
오늘은 예수님의 세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세상에 하느님의 구원의 선물을 주시려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받으신 세례를 기억하는 날, 우리도 함께 참여한 세례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특별히 생각하는 날입니다.
 
세례(洗禮)라는 글자를 한자로 쓰고, 그 뜻을 풀이하면, 물로 씻는 예절이라는 의미만 해석해 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글자 뒤에, 성사(聖事)라는 글자를 덧붙이면, 단순하게 세상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든지 어디서나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일들보다 더 뜻이 깊은 말이 됩니다.
 
지난해 11월 하순부터 온 나라가 구제역이라는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다녀온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소리도 있고, 그렇게 구제역이 처음 시작된 경상북도 안동의 어느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지독한 불신(不信)속에 산다는 서글픈 설명도 말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정들게 살던 집을 떠나 팔려가는 소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소가 흘리던 눈물과 사람이 흘리는 눈물이 얼마나 다른지 구별할 수는 없지만, 새삼 놀라운 느낌이었습니다.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들을 중심으로 퍼지는 질병 때문에 생각하게 된 한 가지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이 그저 몸뚱어리로만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몸 이외에 감정과 마음을 담는 다른 기관이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듣고 삶에서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차이나는 일일 뿐입니다.
 
세상의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영혼(靈魂)이 있고, 동물들에게는 생혼(生魂)이 있으며, 식물에게는 각혼(覺魂)이 있다고 합니다. 보이는 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것도 있다는 이러한 구별도 참 중요한 것인지만, 이 혼들이 각각의 생명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잠시 생각하고, 특별히 하느님의 뜻을 새길 줄 아는 사람에게 있다는 영혼과 내 몸의 관계를 새기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할 일의 한 가지입니다.
 
사람의 삶에 대한 모든 기록은 목숨의 시작과 함께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담아주신 영혼에 새겨집니다. 그래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느님 앞에 나아갔을 때, 그 영혼에 기록된 것들이 우리를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생명으로 인도하느냐, 우리를 끊임없이 악으로 끌어가려고 했던 악마와 함께하는 파멸로 갈 수밖에 없느냐 하는 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신앙에서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거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 같은 것은 없다고 거부하는 세상에서는 영혼의 역할을 중요하게 해석하지 않고 때로는 그 존재마저도 부정합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일을 포함하여 오감(五感)의 역할만 강조하는 세상은 우리 사람들이 대할 세상을 크게 만들까요? 아니면, 아주 작게 만드는 것이겠습니까? 물어도 대답을 얻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함께 해야 할 질문이고 대답의 추구입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은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해바다 입구, 자기 세례를 베풀던 곳에 찾아와 세례를 받으려던 예수님을 만나자 요한은 자기의 생각을 앞세워 거부했습니다. 그렇지만, 세례자요한은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랐고 하늘에서는 놀라운 표징으로 응답했다고 전합니다.
 
세례성사를 받는 일은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 하느님의 뜻이 내 영혼에 새겨졌음을 알려주고 인정하는 표징입니다. 하지만, 세례성사를 받은 사람들이 이제부터 나는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고, 자녀이니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만하고 살겠다!!’고 얼마나 결심하고 실천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원하신 뜻은 무엇일까요? 이 하느님의 뜻을 이사야예언자는 주님 종이 바치는 첫 번째 노래를 통해서 우리에게 대답해줍니다. 하느님은 인간세상을 위해서 무슨 의미 있는 일을 하셨느냐고 따져 묻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세상을 향해 비난의 시선으로 돌아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풀어주고, 감방에서 풀어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라고 이사야예언자는 알려줍니다. 오늘 미사에 함께 여러분 가운에 우리의 할 일이 바로 이것이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시겠습니까?
 
세례 받은 말은 내가 오늘부터 내가 하느님을 선택했고, 그분의 뜻을 따르겠다고 선언하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와 우리를 먼저 선택하신 날이고 나를 축복으로 부르신 날이라는 것이 세례가 드러내는 올바른 의미입니다. 내가 먼저 하느님을 선택했다고 믿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자본주의 논리, 효용성 우선주의 원칙논리에 따라 내가 하느님을 선택했으니, 이제 하느님을 버리는 것도 내 맘대로라고 말하는 냉담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우리 본당의 신자들 가운데도 그 숫자가 결코 적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때나 내 마음이 내킬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 사람의 자유라고 우길지는 몰라도, 그렇게 살아도 좋은 것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내가 인생의 마지막에 그렇게 돌아서기라 하면, 하느님은 내게 감사해야 한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사람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꿈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만드는 에서 깨면 끝입니다. 사람의 삶은 잠 속에 빠져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세례를 기억하는 날,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하시고 이끌어주심에 얼마나 감사하고 지내는지, 나는 그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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