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2014-0601.....예수님승천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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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5-31 ㅣ No.1526

 

예수님 승천대축일 (가해)

사도행전 1,1-11       에페소서 1,17-23      마태오 28,16-20

2014. 6. 1. 등촌3.

주제 : 우리의 승천을 위하여

오늘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심을 기억하는 축제일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승천(昇天), ‘하늘에 오름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일반명사와, 신앙의 의미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올라가신 일로 설명하는 고유명사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행위를 고유명사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 외에 세상에 살던 그 어떤 존재도 승천의 모습을 능동적으로 보여준 이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글자에 담긴 이러한 뜻 외에, 다르게 설명한다면, 승천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을 보시고, 그의 삶이 당신의 뜻에 일치했다고 인정하시고 그의 삶을 받아들인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이유 때문에 인간의 삶을 받아들이시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사도행전으로 읽은 첫째 독서에서 예수님의 승천을 대하는 사도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앞에서 일어난 일이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처럼 멍한(?) 모습으로 그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너희는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고 그들의 정신을 일깨울 때까지 제자들은 그렇게 있었다고 루카복음사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알려주신 대로 일이 진행됐는데도, 제자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은 우리도 현실 삶에서 여차하면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또 사도로 살면서 지낸 시간동안, 그저 예수님을 쫓아다녔다는 것만으로는 승천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이 되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질문해야 합니다. 무슨 준비를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이며, 내가 하는 질문에 누가 대답해줄 수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의문을 품고 질문할 수는 있습니다만, 세상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서는 정확한 대답을 듣기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서 내가 대답을 찾는 것보다는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의 개인입장에서 하느님을 대하는 대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승천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 개인의 입장과 세상의 삶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관심을 갖지 않을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그 뒤에 일어난 부활, 그리고 40일 동안 몇 차례 있었을 예수님의 발현, 그리고 성령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는 명령을 제자들은 분명히 잘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라는 것만 충실하게 했다고 하는 수동적인 자세는 승천에 참여할 자세로는 부족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따른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떠나시자 그저 멍한 모습으로 그 하늘만 바라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승천의 영광에 우리가 참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처럼, 세례를 주고, 하느님의 뜻을 담은 예수님의 명령을 다른 사람들이 지킬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삶은 시작에 불과한 일입니다. 그저 말이나 간단한 행동으로 조금 움직이고서 나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겨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참여, 행동으로 함께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을 기억하고 그에 따라 살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나는 내가 가진 희망을 드러낼 테니, 제 삶을 보고 여러분도 저와 같은 희망과 즐거움 속에 살도록 하십시오하고 다른 이들을 내가 드러내는 삶에 초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기쁘게 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으로 행동하며, 내 삶의 바탕에는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는 기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모습을 드러내면 다른 사람이 내 삶을 보고서 똑같이 그 사람도 하느님을 찬양하는 삶에 참여하겠습니까? 자시 우리의 삶을 돌아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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