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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펀펀 사회교리: 나 군대 안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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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3 ㅣ No.1809

[펀펀 사회교리] (19) 나 군대 안 갈래! ①


군대 필요 없는 평화 넘치는 세상 기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것이 우울한 아침이다. ‘이런 날에는 따뜻한 방에 배 깔고 누워서 추억의 영화나 한편 보면 참 좋은데…’라고 생각하는데 베드로가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신부님은 군대 갔다 오셨습니까?”

“나야 물론 갔다 왔지. 베드로씨는 갔다 왔어요?”

베드로가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이며 씩씩하게 대답한다.

“예, 저는 육군 병장 만기 제대에 취사병으로 요리 좀하다 왔습니다! 신부님은 어디서 근무하셨습니까!”

“저 말입니까? 저는 해병대 근무했습니다. 그것도 남들보다 근무성적이 좋아서 짧게 18개월만 했습니다. 또 애국심이 남달라서 군대 식량 축내기 미안해서 집에서 밥 먹고 다녔습니다.”

해병대라는 말에 놀라던 베드로가 이야기를 다 듣고는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그럼 이제는 사라져버린 전설의 부대 ‘방위병’이십니까?”

“하하, 뭐 어디서 근무했는가가 중요합니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제각각 맡은 자리에서 임무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죠. 하하하.”

 

백 신부가 겸연쩍게 말을 끝내려 하자 베드로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신앙인이 총을 들고 전쟁 훈련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뉴스를 보니까 총 드는 것을 거부해서 재판에 넘겨진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2심 판결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뭐, 아직 대법원 판단이 남긴 했지만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쩐 일로 베드로씨가 이런 어려운 문제까지 생각을 다 하십니까?”

베드로가 삐진 듯이 입을 삐죽 내민다.

“하하, 농담입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특히 현대처럼 군사력으로 서로 견제하고 국가적 우위를 메기는 사회는 더 그렇죠. 또한 우리나라처럼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군사력을 통한 국가 방위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평화와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군대는 없어져야 합니다. 이사야서 2장 4절에서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하시고, 미카서 4장 3절에 보면 ‘그분께서 수많은 백성 사이의 시비를 가리시고 멀리 떨어진 강한 민족들의 잘잘못을 밝혀 주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시어 하신 첫 말씀이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하십니다. 물론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고 강조하시기는 합니다.”

 

*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 - 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마산교구 사회사목 담당, 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장, 정의평화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가톨릭신문, 2017년 5월 14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22) 난 군대 안 갈래! ②


사람이 통치하는 국가와 군대를 주님이 원할까요?

 

 

“처음으로 돌아가 군대가 왜 필요한가. 군대의 존재 이유를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씨는 군대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근본적으로 군대가 존재해야 할까요?”

백 신부의 질문에 베드로는 머뭇거린다.

“아무래도 군대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군대 없이 국가를 지킬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가 필요하다면 ‘나라가 없다면 군대도 필요 없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분도 계세요. 나라가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문명이 발달해 지구촌 전체가 하나의 나라가 되기 전에는 불가능하겠죠.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오래된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현대적 의미의 국가, 민족이라는 개념이 나타난 것은 불과 200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고대부터 근대 이전까지의 군대를 살펴보면 한 개인이나 집안에 속해 있는 이익집단인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만 보더라도 지금은 하나의 나라지만 오래전에는 여러 개의 나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 갈라진 나라들이 대부분 왕조를 중심으로 이해에 따라서 만들어졌습니다. 민족 개념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왕조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합종이니 연횡이니 하는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민족이라는 개념도 인간의 발명품입니다.”

 

백 신부의 지루한 이야기에 베드로가 힘든 모양이다.

“신부님, 말씀이 좀 어렵네요. 그러니까 국가와 군대 개념이 과거에는 지금과는 달랐다 이런 말씀이죠.”

“하하, 그렇습니다. 지금과는 많이 달랐죠.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 히브리족도 알고 보면 혈연으로 만들어진 민족이 아닌 그 시대 소외된 계층 전체를 지칭한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래서 군대의 시작이 자기방어 수단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대는 존재 근거가 희박합니다. 구약성경 사무엘 상권 제8장을 보면,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몰려가서 자신들에게도 임금을 달라고 하자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경고하십니다. 자식들을 군대에 동원할 것이고 과중한 부역을 시킬 것이라고, 그러나 이스라엘은 임금을 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리고 사울이 왕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과연 사람이 통치하는 국가와 군대를 원하셨을까요?” [가톨릭신문, 2017년 6월 4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23) 나 군대 안 갈래! ③

 

주님 이해하듯, 군대도 새롭게 바라보는 지혜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은 싸움 잘하는 전투 신인 하느님을 섬겼는데, 정착하면서 농사를 짓게 되니 농사 신인 ‘바알’을 숭배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의아한 듯 묻는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전투의 신’이셨다고요? 참 놀랍네요.”

 

“예, 유목민이었던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하느님을 싸움 잘하는 신으로 여겼던 것이죠. ‘만군의 주님’이라는 표현이나 ‘주님께서는 나의 방패’라는 표현들에서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모습 중 한 가지에 불과한 싸움 잘하는 신에 대한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착하면서 농사 잘 짓는 신인 가나안 지역의 토착 신 바알을 숭배하게 됩니다. 급기야 하느님께서는 엘리야 예언자를 통해서 바알의 예언자들과 카르멜 산에서 대결을 벌입니다(열왕기 상권). 엘리야가 승리하고 하느님께서도 농사를 잘 지으시는 신으로 인식이 됩니다.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서서히 넓어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처음부터 하느님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순리대로, 인간들의 실수마저도 참아내시며 인간이 지혜로워지기를 기다려 주십니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하느님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느님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좁은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베드로씨는 하느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백 신부의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베드로가 말을 더듬으며.

 

“어… 신부님, 그런… 어, 어려운 질문을 갑자기 하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나서요. 어느 영화 대사인데요. ‘하느님은 두 분이 계신다. 한 분은 인간이 만든 하느님이고, 한 분은 인간을 만드신 하느님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하느님의 이미지를 우리를 만드신 하느님이라고 착각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신부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도 제 뜻대로 안되면 제 기도가 부족함을 깨닫거나, 하느님 뜻을 찾으려 하기 보다 제 욕심을 채우려 한 때가 많았습니다.”

 

갑작스럽게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백 신부는 머쓱해진 분위기를 바꾸려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그래서 지금 우리 현실이 군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의 슬기가 깊어지고 하느님에 대한 이해와 신앙이 더 깊어진다면 군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런 미래지향적인 군대에 대한 생각을 함께 해보자는 의미입니다.”

 

언제 왔는지 스텔라가 백 신부와 베드로의 장황한 이야기를 듣다가 불쑥 끼어든다.

 

“남자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군대 이야기하면 지루하지 않은가 봐요. 특히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요.”

 

스텔라의 이야기에 백 신부와 베드로가 마주 보며 웃는다. [가톨릭신문, 2017년 6월 11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24) 나 군대 안 갈래! ④

 

자유의사 무시 ‘징병제’ 논란 여지 많아

 

 

“스텔라씨는 남자들 군대 이야기가 지루하시죠. 그렇지만 남자들에게 군대 이야기는 특별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기에 가장 억압적인 조직 속에서 고통받아야 했기 때문에 이야깃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죠. 사실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은 공감대 형성이 안 되기 때문에 지루할 것이고,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과거의 고통마저도 재밌는 이야기로 만들어서 미화시키고 고통을 잊으려고 몸부림치죠. 그건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 오랫동안 다시 군대 끌려가는 꿈을 꾸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군대 생활을 입으로 푸는 것이죠. 그러니 지루해도 이해해 주세요.”

 

백 신부의 약간 이상하지만 그럴듯한 이론에 스텔라는 반박하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으로 받아 준다. 베드로가 신이 나서 자신의 군대 생활 무용담을 스텔라에게 자랑하려는 순간 백 신부가 말을 낚아채며 이어간다.

 

“세계적으로 한 국가나 한 민족이 두 개의 정부로 맞서서 전쟁 태세를 갖추고 있는 곳은 많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 대만, 중국, 수단 정도이고.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은 민족과 종교, 테러, 석유에 따른 경제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들 외에도 당장 눈앞에 위험은 없지만, 국가와 자신들의 가족을 지키고 미래의 평화를 위하여 거의 모든 나라들이 군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군대의 기본인 군인을 모집하는 방법은 알다시피 모병제와 징병제가 대표적입니다. 지원자를 받아서 대체로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직업 군인 성격이 강한 모병제와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의 필요에 따라서 강제 징집하여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 못하는 징병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기본으로 하지만 부사관이나 장교들은 지원자를 받고 시험을 치릅니다. 그리고 직업적으로 군복무를 할 수 있도록 생활을 보장해줍니다. 모병제도 병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남자들은 군복무가 의무이기 때문에 완전한 모병제는 아닙니다. 차라리 군 복무 의무가 없는 여성들이 직업으로 군대를 가는 것을 모병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스텔라씨는 군대 갈 생각해보지 않으셨어요?”

 

쓰잘데기 없는 호기심으로 백 신부가 엉뚱한 질문을 한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아, 예 신부님…. 사실 저도 군대 지원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뭐랄까…. 좀 멋있지 않습니까? 제복에 절도 있는 생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삶…. 멋지지 않습니까?”

 

“어, 스텔라씨 의왼데요. 차분하고 조용히 일만 하는 스타일이라….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한다니까요. 저는 스텔라씨 생각을 지지합니다. 아주 멋지십니다.”

 

베드로가 점수를 따려고 치고 나오자 백 신부는 어이없는 듯 피식 웃으며 말한다.

 

“어쨌든 징병제 하에서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가 무시되기 때문에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많습니다.” [가톨릭신문, 2017년 6월 18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25) 나 군대 안 갈래! ⑤

 

양심 따른 병역거부 논란… ‘대체복무’도 폐지 앞둬

 

 

“‘핵소 고지’라는 영화 보셨어요?”

 

백 신부의 질문에 베드로와 스텔라가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뭐, 다른 기관에서는 문화의 날이다 뭐다 해서 함께 영화도 보러 간다는데 우리도 그런 거 하면서 물어보시지….”

 

무안해진 백 신부가 얼른 말꼬리를 자르고 나선다.

 

“그…, ‘핵소 고지’라는 영화는 말입니다. 군 복무 자체를 거부하진 않고 미 육군 의무병으로 오키나와 전투에서 동료들을 구하면서 명예 훈장을 받았던 최초의 ‘집총 거부자’ 데스먼드 T. 도스의 실화를 그린 영화입니다. 도스가 총을 잡지 않은 이유는 종교적인 신념도 있지만,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일 뻔했던 기억 때문입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살인은 가장 큰 죄악이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생명을 해칠 수 없다는 개인적 신념이 확고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국 군대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총을 잡지는 않고 동료의 목숨을 구하는 의무병을 택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군 복무를 현명하게 하는 선택이겠죠. 여기서 우리나라 군 복무 제도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베드로씨는 육군 보병 주특기 100 전투병과에서 장교 식당 조리병으로 근무하다가 만기 제대했죠.”

 

베드로는 자부심 있게 대답한다.

 

“아 예, 해병대 방위 소집해제님. 저는 대한민국 남자로 공증받은 육군 100입니다.”

 

“하하, 베드로씨 앞으로 누구하고 더 오래 살지 잘 생각하고 이야기하세요(째려봄).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에서도 군복무 의무 대상자가 현역병 복무 대신 공공기관이나 공공시설 등에서 복무하는 ‘대체복무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회복무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 또는 전문연구요원, 예술체육요원, 공중보건의사, 징병전담의사, 공중방역수의사, 공익법무관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체복무요원들은 징병검사에서 현역병이 될 수 없는 신체 조건이나 가정 형편, 특별한 기술과 기능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결국 개인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 기관이 정하는 것에 따른 것입니다. 이것조차도 저출산 문제로 인한 인구 감소로 현역 입영대상자가 부족해져서 2023년에 전면 폐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뉴스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대체복무는 없애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로 한다…. 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 않습니까?”

 

“신부님, 좀 거시기 하네요. 군대 안 가면 양심적이고 군대 가면 양심이 없거나 종교적 신념이 약하다는 말입니까?”

 

“물론 그런 뜻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베드로씨 같은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하다 보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역사를 보겠습니다. 놀랍게도 일제 강점기 때도 양심적 병역 거부나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7년 6월 25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26) 나 군대 안 갈래! ⑥

 

국방 의무가 우선? 양심 존중하는 대안 만들어야

 

 

“일제 강점기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6·25전쟁이 한창이던 중에도 ‘제칠일 안식일예수재림교회’ 젊은이들이 집총을 거부하자 후방부대에 편입시킨 역사도 있습니다. 건국 이후 근 70여 년간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 사람은 2017년 4월 현재 1만9000명에 이르고 지금도 400명에 가까운 사람이 감옥에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들을 가혹하게 처벌한 것은 아닙니다. 1961년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후 양심적 병역거부가 죄질이 나쁜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유신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들을 혹독하게 대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 ‘이완찬’씨는 1975년 예배 도중 훈련소로 끌려갔다가 헌병대로 보내져 석 달가량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합니다. 같은 종교를 택한 두 아들도 결국 징역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2000년대 들어서야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사람들 인식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과연 국방의 의무가 인간의 평화와 생명을 존중하는 기본 양심보다 앞서는지 의문입니다.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 위헌 심판이 청구됐고, 합헌으로 결정 났습니다. 얼마 후면 세 번째 위헌 심판이 열리게 됩니다. 이런 중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년 한 재판에서 재판부는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보다 무조건 우선돼야 할 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국방의 의무는 군대에 입대하는 사람들만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담당 판사 중 한 명인 ‘류○○ 판사’는 ‘군인들이 복무 기간 매우 적극적인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 장애인, 노인, 청소년, 군 면제자, 군 전역자 등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고 판시합니다.

 

이어 ‘대한민국 대다수 젊은 남성이 2년간 학업과 생업을 중단하고 통제된 환경에서 고된 훈련을 받으며 군 생활을 하는 사정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 국가가 혜택을 줄지는 입법자들이 정할 문제이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고 합니다. 평화와 생명이신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까요? 이분법적인 흑백논리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이 있게 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의견을 존중하는 제도를 만들 수는 없을까요?”

 

백 신부의 이야기에 베드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신부님, 제가 건강하고 아쉬운 것 없이 살다 보니 사회 약자나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가 적었고, 너무 교만했나 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거부감만으로 양심이 있니 없니 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가톨릭신문, 2017년 7월 2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27) 나 군대 안 갈래! II ①

 

징병제 있어도 대체복무 인정하는 나라 25곳

 

 

온몸을 휘감는 안개 사이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아침. 베드로가 뿌루퉁한 얼굴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한다.

 

“신부님, 사지 멀쩡해 보이는 연예인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병으로 군대 면제받는 것 보면 화가 납니다. 오늘 신문에도 잘생긴 연예인이 발목 거골의 골연골병변… 뭐라는 병으로 면제를 받았다는데, 이게 뭔 병인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병이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큰 아픔이겠지요. 그건 그렇고 오늘은 외국 대체복무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볼까요? 징병제가 있으나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나라가 25개국이나 된다는군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남과 북의 휴전 중 대치 상황이라는 특수성이 있지 않습니까? 다른 나라와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진행 중인 ‘6·25전쟁’이라는 고통스런 역사를 안고 살고 있습니다. 이 대치 상황이 우리 삶의 여러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중에서도 군대 문제에 있어서는 가장 큰 영향을 미쳤죠. 그러니 다른 나라와 단순 비교는 힘듭니다. 하지만 대만이라면 어떨까요? 공산당에게 밀려 본토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여 생긴 나라가 대만 아니겠습니까. 아직도 양국의 군사적 긴장 관계는 상당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느끼는 전쟁 위험보다 대만 사람들이 느끼는 전쟁 위험이 더 크다고도 합니다. 2100만 인구 중에 40만 명이 군인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대만 군사력이 대단하죠. 이렇게 대만이라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인데요. 이런 대만도 2000년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했습니다. 대만이 군 현대화를 시행하면서 실제 필요한 인원보다 입대자가 많아졌습니다.

 

군인 수가 많은 군대보다는 뛰어난 성능의 무기로 현대화된 군대가 유지비용이나 전투 실효성 면에서 낫기 때문입니다(우리나라도 한시바삐 군 현대화를 해야 하겠습니다). 어쨌든 그 결과 대만의 징집 대상자들이 몇 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자 긴 연구 끝에 대체복무가 도입됩니다. 기간은 일반 군 복무기간인 1년10개월보다 4개월이 더 깁니다. 주로 사회봉사분야에서 일하는데, 교통정리나 소방 등 치안과 행정 분야에서도 일합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징집을 거부하면 신앙생활을 한 지 2년 이상이 되어야 한다거나, 심리 상태가 군으로 복무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때라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 외 몇 가지가 있지만 모두 절차나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1기수에 2000여 명 정도가 신청을 한다고 합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독일의 경우 1년에 1만 명 정도가 대체복무를 통해서 응급구조 훈련을 받는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응급구조 훈련을 받고 우리 이웃으로 살아간다면 참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군인이 국민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임무라면 우리 이웃에서 응급구조를 하는 대체복무 젊은이 또한 국민을 지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톨릭신문, 2017년 7월 9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28) 나 군대 안 갈래! II ②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처벌받는 현실 개선 필요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려는데 베드로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베드로씨, 잠 옵니까? 제가 잠 더 잘 오도록 군대 이야기 계속해드릴게요. 지난번에 이어서 우리나라에서 대체복무 도입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잠 다 깼습니다. 우리나라 미래를 위하여 대체복무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베드로의 너스레에 피식 웃으며 백 신부가 이야기를 계속한다.

 

“기억나세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형사처벌 받는 현실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후 여당이 된 ‘더불어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거든요. 대표 발의자인 ‘박주민’ 의원이 <병역법 및 예비군법 일부 개정법률 안>을 발의했습니다. 여기서 박주민 의원은 ‘현행법상 우리나라는 종교적 신념 또는 헌법상 양심을 이유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자에 대한 대체복무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소신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게 형사처벌이 아닌, 공동체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고 말했습니다. 기억나세요?”

 

백 신부의 뜬금없는 질문에 베드로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한다.

 

“기억날 리가 있습니까? 그런데 신부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꼭 신문기사를 그대로 옮겨 온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예리한 지적에 백 신부가 당황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하하, 베드로씨도 참. 이게 그러니까…. 하던 이야기 계속하겠습니다. 박 의원은 법률개정안에서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병의 1.5배로 제시했습니다. 사실 복무 기간이나 복무 환경이 예민한 것 아니겠습니까? 현역병과 복무기간이 같다거나 복무 환경이 수월하다면 너도나도 대체복무를 하려고 하겠지요. 하지만 대체복무가 더 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요. 복무기간에 관해서 이철희 의원은 현역병의 1.5배가 아닌 2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좀 더 엄격하죠. 복무형태도 원칙적으로 합숙 근무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군 생활이라는 것이 훈련이나 근무가 고되기도 하지만 고참들과 함께하는 내무반 생활이 제일 힘들지 않습니까?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대체복무를 통해 더 편한 군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을 없애겠다는 것입니다.

 

또 특이한 것은 예비군에 편성된 사람 중 종교적 신념 또는 헌법상 양심을 이유로 병역 의무를 거부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대체복무를 신청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러한 대체복무 전반에 관한 심사·의결을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에 대체복무위원회를 두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자세한 사항들을 검토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철희 의원의 말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는데요, 대체복무 영역을 중증장애인·치매노인 보살핌 등 난이도가 높은 업무로 지정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젊은이들을 사회에 기여하게 하고 복지 서비스도 한 단계 높이자는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7년 7월 16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28) 나 군대 안 갈래! Ⅱ ③

 

대체복무, 전쟁 대신 평화 얻는 길

 

 

“만약 베드로씨가 다시 군대를 가야 한다면, 현역병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지금 말씀드린 대체복무요원으로, 중증 어르신을 돌보는 사회복지 시설에 가시겠습니까?”

 

백 신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베드로가 “흠, 신부님 이런 어려운 질문을 하시다니요. 전국의 독자들이 보고 계시는데… 어렵지만 대체복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죠, 사실 누구나 선택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모두가 나라를 지키는 애국의 한 방법임을 인정하는 사회분위기 형성이 중요하겠습니다. 특히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기도하는 우리 천주교회가 대체복무 도입과 회 분위기 형성에 앞장서야겠습니다.

 

당장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한 가지, 신학생들의 군복무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런 비판 없이 당연히 현역병으로 입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교회 차원에서 대체복무를 원칙으로 하고, 자신이 원하든지 또는 군사목에 관심이 있는 신학생들만 따로 사병이든 장교든 필요한 부문에서 복무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예비군에 대해서도 고민해야겠습니다. 우리나라 향토예비군은 1961년 11월에 제정된 향토예비군 설치법에서부터 시작됐지만 지금과 같은 준군사조직으로 바뀐 것은 1968년 1·21 사태, 일명 ‘김신조 무장공비 일당 청와대 습격 사건’ 때부터입니다. 당시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고, 북한이 군사 도발을 자주 할 때였습니다. 향토예비군 발전 배경이 우리나라 주변 정세와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과 맞물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의 영구 집권을 위해서 국민들에게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조장하기 위한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1980년에는 경찰 기능까지 추가되어 ‘경찰력만으로 대처할 수 없는 무장소요가 있거나 우려가 있는 지역에서 이를 진압하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규정을 추가합니다. 이것은 12·12 쿠데타로 집권하고 계엄령을 선포한 신군부가 예비군을 제2의 계엄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기도 합니다. 놀라운 일이죠. 결국 일제 강점기 말에 있었던 ‘전 국민동원 체제’를 만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비군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책 철학에 있습니다. 국민 개개인을 국가의 부속품쯤으로 여기는 전체주의적 발상을 통해서 국민 개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회사원들이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훈련에 나가고, 자영업자들은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데 며칠씩 가게 문을 닫아야 하면서도 ‘애국심’이라는 이름 때문에 불만을 눌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천주교회가 전쟁을 막아내고 이 땅에 평화를 이루는 데 앞장서기를 기도드립니다.” [가톨릭신문, 2017년 7월 23일, 백남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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