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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쁨 해설25: 무익한 비관주의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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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08 ㅣ No.680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25) 무익한 비관주의는 안 된다


승리한 예수님을 따르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약속된 승리는 꺾이지 않는다 

 

요한 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서 잠시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도 하셨다. 물론 제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시 나타나면 그 누구도 그들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죽음을 정복한 승리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마지막에 이런 말씀도 하셨다. “너희들이 세상에서 고난도 받겠지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더 이상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적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분은 영원한 승리자이고 그분의 십자가는 승리의 깃발이 될 것이다. 악인들이 득세하고 악행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맹위를 떨칠지라도 최후의 승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말씀이다. 그러니 인내하고 이미 승리자로 행세하며 악과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말라는 말씀이다. 

 

교황은 이 종말론적 기쁨을 잃지 않도록 우리 신앙인들에게 확신을 준다. 세상의 악과 교회 안의 크고 작은 스캔들 때문에 흔들리지 말라는 말씀이다. “세상의 악이 그리고 교회의 악이 우리의 헌신과 열정을 줄이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악을 우리의 성장을 돕는 도전으로 받아들입시다”(84항). 세상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빛의 자녀인 우리들은 더욱 굳건히 이 어둠을 밝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시련을 받으면 더욱 강건해지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교황은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도 인용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다”(로마 5,20).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전진해야 

 

교황은 현실 세계의 어둠을 직시하였다. 서구 사회의 일부에서 확인되는 ‘영성의 사막화’, 즉 자신들의 그리스도교적 뿌리를 없애버리면서 하느님 없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도와 중동 지역의 잔혹한 현실을 언급했다. 그리스도 신앙인들에 대한 잔인한 살인과 추방으로 2000년 넘게 이어온 신앙의 터전에 이제 신앙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우리 신앙인들이 이와 같은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지 않도록 간곡히 당부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강론을 인용했다. “바로 이 광야, 이 공허에 대한 체험에서부터, 우리는 믿는다는 것의 기쁨을,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절대적인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이 사막에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을, 자신의 삶으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늘 깨어 있으면서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86항).

 

교황은 우리를 비관론자로 만드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 누구도 전쟁터에 나가 싸울 수 없습니다. 확신 없이 싸움을 시작한 사람은 이미 싸움에서 절반은 진 셈이고, 자신의 재능을 묻어 버린 것입니다. 설령 우리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85항). 우리의 약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과 힘이 나타난다고 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

 

따라서 우리는 약한 자들이 아니다. 이미 충분한 은총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적을 전율과 공포로 떨게 만드는 전투 요원들이다.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언제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십자가는 승리의 깃발입니다. 악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강인한 온유함으로 우리는 이 깃발을 들고 갑니다”(85항).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희망을 빼앗기지 맙시다!”(86항). 

 

아름다운 동해안의 화진포를 향해 가다가 어느 군부대 앞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이겨 놓고 싸우는 부대.” 돌아올 때에는 양구 쪽의 최북단 지역을 둘러보았는데, 이번에도 군부대 앞의 글귀가 관심을 끌었다. “적을 전율과 공포로 떨게 만드는 부대.”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선승이후구전’(先勝以後求戰). 이겨 놓고 싸운다는 뜻이다. 싸우기 전에 이미 적의 숫자와 무기와 병법과 예상되는 공격 방법을 파악했고 우리 병력과 화력으로 승리할 수 있는 방법까지 준비되었다면, 전투의 결과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오직 승리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겨 놓고 싸우는 부대이다. 이 정도면 겁 많은 병사도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으로 전장에 나아갈 것이다. 이렇게 준비된다면, 이런 지략을 지닌 장수(將帥) 밑에 있다면, 병사들은 용맹스럽고 담대해질 것이다. 승리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그야말로 적을 전율과 공포로 떨게 하는 부대이다.

 

[평화신문, 2015년 6월 7일,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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