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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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한국전쟁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 전쟁의 참화 속에서 피어난 신앙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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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7 ㅣ No.682

[경향 돋보기] 전쟁의 참화 속에서 피어난 신앙의 꽃


한국전쟁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

 

 

20세기 신앙의 증인들 시복시성 추진 착수

 

지난 5월 10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36명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 교령을 반포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대상자는 한국전쟁을 전후로(1949-1952년) 사망했거나 생사를 알 수 없는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과 함흥교구, 덕원자치수도원구 소속 사제들 가운데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으며, 덕행의 실천에 탁월했고, 이에 대한 목격자 또는 증거를 찾을 수 있는지를 고려하여 선정하였다.

 

현대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 운동이 최초로 시작됨으로써, 1984년에 시성된 103위 성인과 현재 시복시성추진 중인 신유박해 순교자 124위에 더해 한국교회에 많은 성인들을 모시게 될 희망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춘천교구도 춘천 ? 함흥교구 소속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시성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대전교구는 최근 ‘한국전쟁과 현대의 순교자들’이라는 자료집을 편찬하고 시복시성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지난 6월에 서울 ? 평양교구 순교자들의 명단과 기초 자료를 작성하여 교구장에게 보고하였고 곧 이들에 대한 증언 청취에 들어갈 예정이다.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은 시복시성 운동이 잇따르리라 예상된다.

 

 

시복시성 추진 절차

 

20세기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시성은 조선시대 순교자 시복시성 과정과 조금 다르다. 이전 시복시성 건에서는 세월이 흘러 목격 증인이 모두 사망한 상태라 순교 사실을 사료를 통해 증명하고 재판을 받는 반면, 이번에 추진하는 20세기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시성은 목격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성덕이나 순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시복시성은 원칙적으로 순교자가 사망한 곳의 교구장 주교가 주관하게 되는데, 박해시대 순교자의 경우 모두 조선교구 소속으로 단일한 관할권 아래 있어 단일 안건으로 처리하기가 쉬웠지만, 이번 건은 여러 교구로 분할된 뒤 순교한 경우라 평양교구, 함흥교구, 덕원수도원자치원구 관할권자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진행하므로 조금 더 복잡하다. 또한 수도회에는 법원이 존재하지 않아 이번 시복시성 예비심사는 광주관구 법원에서 맡아 진행하기로 하였다.

 

성 베네딕도회에서는 앞으로 36위에 대한 자료를 교황청 시성성에 보내어 시성성에서 ‘장애 없음’(nihil obstat) 판결을 받고 나면 본격적으로 예비심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심사에서는 순교에 대해 직간접으로 목격한 증인의 증언으로 순교 사실을 더욱 명확히 하는 것이 필수적이므로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증인들의 제보와 증언이 절실하다.

 

 

한국전쟁 순교자에 대한 조명

 

불과 57년 전 이땅에서 일어났던 비극적 전쟁에서 우리 교회도 결코 적지 않은 피해와 아픔을 겪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집계된 한국전쟁 중 희생된 성직자와 수도자, 신학생 수는 150명이며, 대희년을 맞이하여 교황청 대희년중앙위원회 새순교자위원회의 요청으로 한국교회가 작성하여 제출한 ‘20세기 신앙의 증인들’ 가운데 한국전쟁 전후에 희생된 이는 182명으로 나타났다.

 

전쟁이 일어나자 남한 교회는 공식, 비공식으로 사제들에게 관할 지역을 지키고 사목활동을 계속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서울대목구와 춘천지목구, 대전지목구의 피해가 컸으며, 외국인 사제, 수도자와 교회 지도자들의 희생도 컸다. 또한 1950년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북쪽 지역의 여러 수용소를 돌며 계속해서 이동하게 한, 이른바 ‘죽음의 행진’에서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죽음을 맞았다.

 

전쟁 중에 죽임을 당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순교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순교 사실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순교자가 신앙을 위하여 자유롭고 분명한 의지로 죽음에 이르는 고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수하며, 자신이 겪게 될 결과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자유의사로 선택한 경우여야 하며, 박해자 측에서는 반그리스도교적 동기로 박해를 한 것이 분명해야 한다.

 

한국전쟁의 경우 이념의 대립 속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났으며, 이 가운데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자신의 사목지와 양떼를 지키고자 한 많은 사목자들, 갖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이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번 시복시성 대상자 가운데 덕원 수도원의 김이식 마르티노 신부는 공산군이 수도원에서 다른 신부들을 체포해 갈 때 명단에서 누락되어 상황을 모면할 수도 있었으나 본인 스스로 신부임을 밝혀 체포되어 죽음을 맞았다.

 

평안남도 순안 정치보위부에서 피살된 이춘근 라우렌시오 신부는 그를 방문한 수사에게 “내가 어떻게 신자들을 버리고 떠날 수 있겠습니까? 저를 여기에 남겨두십시오. 저는 순교하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원산 수도원의 박빈숙 루치아 수녀는 다른 수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가 다시 풀려났는데도 고향에 돌아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교리와 성가를 가르치다가 붙잡혀 피살되었다.

 

 

순교는 그리스도께 대한 최상의 사랑의 증언

 

자칫 역사 속에 영원히 묻힐 수 있었던 현대의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본받고자 시복시성 운동을 시작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순교자 시복시성 운동은 단순히 과거 영웅적 인물을 기억하고 칭송하는 의미를 넘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더 큰 가치를 드러낸다. “순교는 이 지고한 행위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께 순종하여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는, 그리스도께 대한 최상의 사랑의 증언이다”(오리게네스, “첼수스 논박” 2,27).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가장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행위가 바로 순교이다. 이토록 신앙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투신하는 행위일진대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은 필요한 부분만 선택하는 편의주의에 젖어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불화와 상처는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전쟁과 폭력의 상황 속에서 신앙의 이름으로 기꺼이 희생자가 되었던 순교자들은 이 시대 우리에게 진정한 화해와 평화가 어디서 오는지 들려주는 듯하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흠숭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며 주님을 본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순교자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의 왕이시며 스승이신 분을 향한 그들의 비할 데 없는 신앙심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그들의 순교에 동참하고, 동료 제자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성 폴리카르포의 순교록“ 17,3).

 

[경향잡지, 2007년 8월호, 이준혜 데레사(경향잡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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