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나도 성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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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1 ㅣ No.679

나도 성인이 될 수 있다!

 

 

우리들 안에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 있는가?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 없다면, 우리 안에 어른이 없음을 의미한다. 어른이 없는 세상이라면 철없는 아이들만이 사는 세상이고, 그 세상은 혼돈의 세상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초기 교회에서부터 우리들의 끊임없는 기도로 교회 안에서 수많은 ‘성인(聖人)’을 탄생시켰다.

 

교회에서 말하는 ‘성인’이라는 칭호는 초기 교회에서부터 성덕이 뛰어난 분들에게만 붙여왔다. 살아있을 때 영웅적인 덕행으로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어, 교회의 보편적인 교도권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된 분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성인들은 엄밀히 말해서 어떤 신적인 능력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요, 어떤 별종(?)의 사람들을 이르는 호칭도 아니다. 교회의 성인들은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지녔고,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인간적인 고통과 수고들로 인해 우리처럼 많이 울고 많이 아파했던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의 삶과 신앙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증거적이고 모범적이었기에, 교회 안에서 존경받을 만한 어른으로 모시기에 합당하다고 여긴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그분들을 기억하며 우리를 대신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전구해 주실 것을 희망하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던 그들이 어떻게 교회에서 존경받을 만한 분들이 될 수 있었는가? 우리도 과연 성인이 될 수 있을까? 나도 성인이 될 수 있을까? 그분들을 교회의 위대한 성인으로 만든 평범한 진리는 무엇인가?

 

첫째, 교회의 위대한 성인들은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 초기 교회의 많은 순교 성인들은 세상보다도 하느님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에 가족과 명예와 재물과 세상의 부귀영화를 포기한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 때문에 늦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놓은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논리에 전혀 타협할 줄 모르는 바보들이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바보가 되었을지언정, 하늘에서는 의인이 된 사람들이 성인들이다. 세상에서 꼴찌가 되었을지언정 하느님 나라에서는 첫째가 된 사람들이 바로 성인들이다(루가 9,48 참조). 우리도 성인들처럼 세상에서는 조금 어리석은 사람이 될지라도 더 크고 위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택할 수 있지 않을까.

 

성인들의 두 번째 특징은 ‘단순함과 정직함’에 있다. 성인들은 행동에 있어서는 단순하였으며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있어서는 참으로 정직한 분들이었다. 단순함과 정직함에서 나오는 신앙적인 열정으로 성인들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어린아이가 될 수 있었다(마태 18,1-5 참조).

 

성 그레고리오 교황(590-604년 재위)은 젊은 시절 수사가 되어 전심전력을 다해 덕을 닦고, 수도회칙을 엄수하여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였다. 단순한 수도생활이었지만, 수도생활에서 학덕과 성덕을 닦는 그레고리오의 명성은 로마 시민들에게 급속도로 퍼졌다. 당시의 교황 베네딕토 1세에게도 인정을 받아 부제품을 받은 그는 교황 사절, 수도원장을 거쳐 훗날 성직자와 로마 시민들의 일치된 뜻에 따라 제64대 교황으로 추대되었다.  단순한 수도 생활로 성인이 되신 것이다. 교황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영원한 나라인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는 사람은 단순하고 정직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행동에서 단순하고 신앙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현세의 물질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단순하게, 마음속에서 진리를 의식하는 데 있어서는 정직해야 합니다”(욥기 주해 1).

 

주님께서도 “너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단순해야 한다.”(마태 10,16)고 말씀하셨듯이, 성인들은 판단에 있어서는 뱀 같은 슬기로움으로 신중하였고 행동에 있어서는 단순한 비둘기처럼 온순하였다. 우리도 성인들처럼 일상의 행동은 단순하게,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있어서는 정직한 신앙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셋째, 성인들은 ‘하느님을 먹는 사람들’이었다. 성인들은 우리들처럼 세례성사를 받아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고. 주님의 거룩한 성찬에 초대되어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아먹음으로써 하느님을 먹는 사람들이 되었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먹을수록 죽어간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죽는다. 단, 인간이 영원히 살고자 한다면 하느님을 먹어야 한다. 하느님을 먹는 것 이외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래서 성인들은 초기 교회에서부터 그리스도의 몸을 서로 나눠 먹으려고 함께 모였고, 세상을 이기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얻었다. 또한 성인들은 하느님을 먹는 사람답게 일상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성인들처럼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 됨으로써 용기 있게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의 삶은 늘 ‘자기 비움’이셨다. 당선 자신을 비우시고 하느님의 자리를 마련하신 것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하느님을 따르신 자기 비움의 삶이셨다. 그리고 당신의 부활 사건 또한 ‘비움’으로 이 세상에 드러내셨다. ‘빈 무덤’을 통하여 당신의 부활을 이 세상에 알리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의 욕심을, 이 세상에서의 집착의 삶을 포기하셨다. 교회의 수많은 성인들도 진리이신 하느님께서 자신들 안에 오래 머무실 수 있도록 매일같이 포기하는 삶을 사신 분들이시다.

 

오늘의 우리도 하느님께서 오래 머무르실 수 있도록 포기하는 삶, 끊음의 삶, 내어놓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세상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고 바보스럽게 보일지라도 행동에 있어서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신앙에 있어서는 바른 모습으로 산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먹는 삶을 산다면, 우리도 성인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회는 한 개인의 능력으로 이끌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인다. 사랑이 없이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고, 사랑이 없이는 하느님을 알 수 없다. 과거에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성인들이었다면, 오늘은 ‘우리’이고 ‘나’일 수 있다.

 

* 배승록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는 대전 가톨릭 대학교에서 교부학을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01년 11월호, 배승록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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