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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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성지 순례, 그 의미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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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2 ㅣ No.677

[전례와 상징] 성지 순례, 그 의미와 정신

 

 

9월은 순교자의 달이다. 한국 순교 성인들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 행적과 정신을 본받아 신앙 쇄신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성지 순례를 들 수 있다.

 

‘순교자’란 증거자를 의미한다. 본래 피로써 증거한 사람을 지칭하였다. 즉 예수님을 증거하려는 신앙심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자이다. 그리스도 신자는 그리스도를 완전히 본받는 자이고 그분의 증거와 구원 사업에 완전히 참여하는 자이다. 완전히 본받는다는 말은 좋을 때, 행복할 때, 평화로울 때에만 따를 뿐 아니라 괴로울 때, 불행할 때.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할 때에도 성실한 마음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실히 증거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요한 18,37)고 사형 선고를 받으셨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탁월한 순교자로서 하느님을 증거하셨고 증거자로서 돌아가셨다. 따라서 그분은 순교자들의 원형(原型)이 되셨다.

 

“그들이 나를 박해했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요한 15,20). 예수께서 가까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써 세워졌다.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피의 증거를 하느님께 드려야 하고 신자 하나하나는 모두 교회로서 맡겨진 사명을 수행하고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피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순교지, 성지, 사적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곳은 예루살렘이다. 성 안드레아 김 신부의 순교지는 새남터이다. 넓게 보아 두 곳은 다 성지이다. 그런데 이 두 곳을 구별하여 하나는 성지(聖地)이고 하나는 성지(聖址) 또는 사적지(史蹟地)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즉 성서에 나타난 성지(Holy Land)란 팔레스티나 지역과 사도들의 행적지를 의미하고 그밖의 성인 순교자들의 사적지(史蹟地)는 성지(Holy Place)라고 표현되어야 한다는 견해이다. 순교지, 감옥, 형장, 묘소, 은신처를 모두 성지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태어나 활동하시고 돌아가신 거룩한 땅과 어떻게 동격으로 부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반면 우리 나라에서 땅[地]이란 말은 영어에서처럼 LAND와 PLACE의 구별이 없고 현충사나 불교 사적지도 성지라고 하는데 외국 사상에 젖어 차등 의식, 구별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느냐, 그러니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 순교자들의 사적지도 똑같이 성지(聖地)라고 부름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견해를 보면 우리 생의 목표는 현재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이다(갈라 4,25-26 참조). “이 땅 위에는 우리가 차지할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앞으로 올 도성을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히브 13,14).

 

예수님 자신도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말씀하셨다. “내 말을 믿어라.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에 ‘이 산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요한 4,21). 장소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하는 것이다. 골방에서 문 닫고 기도하는 것이 보이기 위한 위선자들보다 훨씬 낫다고 하였다(마태 6,6 참조).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원하시는 곳은 어디든지 가신다. 땅은 주님의 것이고 창조주의 소유이다. 예루살렘이나 한국에서 보는 하늘은 똑같이 열려 있다. 하느님 나라는 신자들 안에 들어 있고 하느님은 어느 한 장소에 갇혀 있지 않다. 장소나 물건은 그 자체로서 거룩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속에 간직한 계속적인 확신과 전통이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성지는 하느님의 표징이고 하느님이 사시고 머무르시는 곳이며 사람이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다.

 

 

순례는 걷는 행렬이다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 걷고 뛰기도 한다. 행렬이나 단체로 움직일 때도 있다. 한 장소를 떠나 다른 장소로 간다. 앉아 있던 사람도 움직이고 궁극적으로 생과 사의 길을 가야한다.

 

교회의 예절은 가는 데서 시작된다.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세례나 온인성사를 받기 위하여 교회에 간다. 예절 자체도 움직이고 장소를 이동하며 진행된다. 신자들이 입당하고 사제가 제단으로 나아가며 독서자가 성서가 놓인 곳으로 가고 모두 행렬을 지어 제물 봉헌을 한다. 이것은 성사와 감사와 희생을 상징한다.

 

순례도 행렬에 속한다. 일정한 목적지를 향하여 일어서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것이다. 본래 성지 순례는 비행기나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행렬을 지어 걸어가며 순례지와 영원한 목적지를 묵상하고 기도하며 항상 인생은 도중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성지 순례를 올바로 하려면

 

1. 시간을 충분히 가져라.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보려는 생각은 순례가 아니라 관광이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단을 모집하여 유럽 10여 개국을 다니며 여행하는 것은 순례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하루에 서너 곳을 다니면서 보고 듣는 것은 역시 순례가 아니다. 순례는 어느 한 곳을 찾아가서 소개를 받고 묵상하며 미사와 기도를 드리고 자신의 생활 태도를 하느님께로 전환시키는 회개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성지 순례는 하느님의 보호와 도움을 받아 현세를 잘 마치도록 기도하는 것이며 생의 괴로움과 자기 짐을 지고 가는 것이다.

 

2. 양심 성찰을 하라.

 

순례지는 고백소이다. 성지 순례의 목적은 일상생활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바로 잡는 데 있다. 순교자들처럼 진리에 따라 살고 증거하려는 것이다. 생의 변화와 회개가 순례의 목표다. 새 생활로의 발돋움이며 같은 운명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의 화해의 도장이다. 오락이나 음식보다 보속과 극기의 자세를 가지고 마음으로 하느님과 만나며 성인의 전구로 신앙과 필요한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걸어가는 성지 순례는 예기치 못했던 영적인 준비와 용기와 희심을 북돋아준다. 순례 과정에서 함께 식사하고 휴식과 침묵과 잠자리를 같이 히는 것도 큰 체험이 된다.

 

3. 예절 준비

 

성지 순례의 예절은 따로 없다. 다만 순례가 올바로 되도록 하기 위하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순례지에서 미사 봉헌을 할 수 있다면 미사에 필요한 책과 도구를 준비해야 한다. 미사 전에 참회 예절과 더불어 개인 고백을 실시하면 훨씬 뜻있는 순례 미사가 될 것이다. 순례 도중 묵주의 기도와 각 단 사이에 성가를 부를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고 젊은이들에게는 묵상이 어렵고 익숙하지 않겠지만, 지도자의 설명이나 묵상 자료를 통하여 묵상을 하면 좋을 것이다.

 

단체의 성격에 따라 말씀의 전례를 마련할 수도 있다. 각자의 기도문 작성과 낭독, 신자들의 기도, 호칭기도 등을 분위기에 맞게 참석자들이 고루 표현하도록 할 것이다. 또한 충분한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여 서로 대화하고 받은 소감과 은혜를 나누도록 한다. 여러 가지 적합한 전례를 마련하기 위하여 다른 단체들의 경험과 충고를 많이 참작해야 한다.

 

신자는 선앙의 선배인 l03위 순교 성인들 각각의 신앙과 증거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성지 순례가 필요하다. 순교할 준비가 된 신자에게는 성지 순례를 권할 필요가 없다.

 

[경향잡지, 1988년 9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대전 선화동본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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