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교회사 공개대학9: 103위 성인이 남긴 기록과 유물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5 ㅣ No.641

한국교회사연구소 상반기 공개대학 특강 지상중계 (9) 103위 성인이 남긴 기록과 유물

 

 

1. 기해, 병오박해 성인들이 남긴 기록과 유물

 

(1) 정하상의 "상재상서"(上宰相書)

 

한국 천주교회 최초 호교론서(護敎論書)다. 정하상 바오로가 1839년 작성한 총 3664자로 된 짧은 글로 천주교 교리의 타당성과 천주교 박해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또 전통적 제사를 헛되고 거짓으로 가득한 예식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천주교 교리뿐만 아니라 유학사상과 벽이단의 논리를 바탕으로 박해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호교론과 신앙의 자유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훗날 시복 자료로 교황청에 제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2) 민극가의 "삼세대의"(三世大義)

 

기해박해 순교자 민극가 스테파노가 지은 천주가사다. 삼세(三世)는 천당ㆍ지옥ㆍ십계(현세)를 말한다. 신자들이 삼세의 의미를 잘 새겨 현세에서 교리를 실천해 내세에 천당에 갈 수 있도록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기 위해 저술했다.

 

총 287구로 형식상 4ㆍ4조, 4음보격을 이루고 있다. 현존하는 "삼세대의"는 모두 원본의 전사본이다.

 

(3) 이문우의 "옥중제성"(獄中提醒)

 

기해박해 순교자 이문우 요한이 지은 천주가사다. '감옥에서 잊어버렸던 것을 생각하여 깨우치다'라는 뜻이다. 총 154구로 열심히 주를 섬기며 죽음을 준비하다 천상 과거에 급제할 것, 순교를 통한 죽음의 승리와 영혼의 구원 등을 노래했다.

 

(4) "기해일기"(己亥日記)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신자들 순교자전이다.

 

1838년 말 박해가 일어나 순교자들이 생기자 앵베르 주교는 이들의 사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1838년 12월 31일부터 자신이 체포되기 3일 전인 1839년 8월 7일(음력 7월 2일)까지의 순교사적을 수기 형태로 기록하고 '1839년 조선 서울에서 일어난 박해에 관한 보고'라 이름붙였다. 훗날 최영수가 초고를 작성하고 현석문이 최종 수정, 보완했다.

 

"기해일기"는 박해가 계속되면서 없어졌지만 필사본이 전해진다. 현존하는 필사본으로는 절두산순교성지와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다.

 

(5) 김대건 신부-서한과 조선전도(朝鮮全圖)

 

김대건 신부 서한. 박해 장면을 그림으로 설명한 것이 눈에 띈다.

 

 

김대건 신부 서한은 모두 21통인데 2번째와 15번째 서한이 유실돼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서한은 19통이다. 작성 시기는 1842년 2월부터 1846년 8월까지다.

 

대부분 라틴어로 작성됐고 9번째 서한은 한문으로, 21번째 서한은 한글로 작성됐다. 주로 선교사 입국경로 탐색과 기해박해 진상 및 순교자 약전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원본이 전해지지 않는 서한 3통을 제외한 16통의 서한과 순교자 보고서는 모두 파리외방전교회 고문서고에 소장됐었다. 그러다 파리외방전교회가 1984년 103위 성인 탄생을 축하하며 그 일체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로 이관했고 절두산 순교기념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전도(朝鮮全圖). 1845년 부제였던 김대건 성인이 선교사들 입국을 돕고 조선을 해외에 소개할 목적으로 제작한 지도다. 달레에 따르면 김대건은 한성부(漢城府)의 서고에 있던 공식 지도를 보고 자신의 지도를 그렸다.

 

이 지도는 당시 중국 상해 주재 프랑스 총영사관 몽티니에게 전달됐고 몽티니 영사관은 1855년에 프랑스 왕립도서관에 이를 기증했다.

 

 

2. 병인박해 성인들이 남긴 기록과 유물

 

(1) 베르뇌 주교

 

- "장주교윤시제우서"(張主敎輪示諸友書)

 

1857년 3월 26일부터 3일 동안 서울에서 조선교구 최초로 성직자 회의가 개최됐고 베르뇌 주교는 이 회의에서 결의된 사항을 같은 해 8월 2일자 사목 서한을 통해 반포했다. 이것이 "장주교윤시제우서"(장 주교가 여러 교우들이 돌려보라고 쓴 글)다.

 

신자들이 평소 지켜야 할 행동지침과 도리와 성사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혼인에 있어 자녀의 의사를 존중할 것, 과부의 재혼 권고 등 당시 사회 관습과는 다른 내용도 담겼다.

 

- 평양회장 발령장

 

베르뇌 주교가 1865년 7월 17일자 작성한 발령장이다. 평양 지방에 교우가 많아 회장이 필요하기에 정 빈첸시오를 회장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2) 다블뤼 주교

 

- "다블뤼 비망기"

 

1845년 10월 조선에 입국한 다블뤼 주교는 조선 순교자들 시복 청원을 위해 1856년부터 조선교회사 및 조선순교사 자료를 본격적으로 수집했다. 다블뤼 주교는 이를 1858년 파리외방전교회본부로 보냈는데 이것이 "다블뤼 비망기"다.

 

모두 5권이며 마지막 권은 "조선주요순교자약전"이다. 이는 달레 신부가 "한국천주교회사"를 편찬하는데 중요한 기본자료가 됐다.

 

현재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전사본이 파리외방전교회본부에 소장돼 있다. 이를 복사한 것을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다.

 

- 다블뤼 주교의 번역서 및 저서로는 △ "천당직로"(天堂直路, 신자들이 천당에 갈 수 있는 방법과 하느님 은총을 얻는 방법을 담은 신심서적) △ "회죄직지"(悔罪直指, 죄를 성찰하고 통회하도록 권고하는 일종의 묵상서) △ "성찰기략"(省察記略, 올바르게 고해성사를 할 수 있도록 방법과 내용을 담음) △ "신명초행"(神命初行, 상ㆍ하권으로 이뤄진 묵상서적) △ "영세대의"(領洗大義, 세례 준비서) △ "천주성교예규"(天主聖敎禮規, 장례에 관한 옛 예식서로 예수회 선교사 불리오 신부가 저술한 한문본을 다블뤼 주교가 번역) 등이 전해진다.

 

양인성 연구원이 103위 성인이 남긴 기록과 유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3) 목판 인쇄소 간행 서적

 

베르뇌 주교는 다블뤼 주교와 최양업 신부 등에게 기도서와 교리 교육을 위한 책을 저술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 책들을 전 지역에 보급할 계획으로 1859년경 서울에 목판 인쇄소를 설립해 최형 베드로에게 운영을 맡겼다.

 

- "천주성교공과"(天主聖敎功課)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 기도서.1969년 "가톨릭 기도서"가 나오기 전까지 계속 중판됐다. 100년 이상을 한국교회 공식 기도서로 사용됐다.

 

- "천주성교십이단"(天主聖敎十二端)

 

기도문 가운데 중요한 12가지 기도를 담은 기도서로 성호경ㆍ삼종경ㆍ천주경ㆍ성모경 등을 담고 있다.

 

-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

 

세례성사ㆍ고해성사ㆍ성체성사ㆍ견진성사 등 네 가지 성사에 대한 근본교리를 문답식으로 설명한 교리서다. 총 154문항이 문답형식으로 담겨 있다. 1934년 "천주교요리문답"이 공식 교리서로 채택될 때까지 70년간 사용돼 왔다.

 

- "주년첨례광익"(周年瞻禮廣益)

 

연중 교회 축일에 대한 해설서, 신심서, 성인전 등 모두 4권으로 이뤄졌다. 1865년에 베르뇌 주교의 감준 아래 제1권만 목판본으로 간행됐다. 1884년에 블랑 주교의 감준 아래 4권이 활판본으로 완간됐다.

 

- "성교절요"(聖敎切要)

 

천주교의 주요 기도문과 칠성사(七聖事) 등 주요 교리를 설명한 책이다. 현존하는 한글 필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837년에 나온 것으로 절두산 순교 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평화신문, 2009년 5월 24일, 양인성 연구원, 정리=박수정 기자]



54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