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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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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캐나다 퀘벡: 북미 선교의 요람, 400년의 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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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3 ㅣ No.636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 - 캐나다 퀘벡


북미 선교의 요람, 400년의 순교성지

 

 

지난 6월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제49차 세계 성체대회는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성체”라는 주제로 70여 개국 1만 5천여 명이 모인, 세계가 하나 되는 자리였다. 우리 참가단은 성체대회 주요일정에 참가하는 가운데 캐나다 현지 한인 공동체와 만나며 퀘벡 주와 온타리오 주의 성지도 둘러보았다.

 

 

주님께서 세우신 400년 신앙의 고도 퀘벡

 

캐나다는 세계에서 국토가 두 번째로 넓다. 그 면적이 남한의 100배에다 한 나라 안에 표준시가 여섯이나 된다. 인구는 영국계, 프랑스계, 독일계 등으로 구성되어있고 로마 가톨릭이 46%, 개신교가 36%, 기타 종교가 18%를 차지하고 있다. 선교사가 들어온 지 400년을 넘긴 캐나다의 모든 거리와 공원 이름은 우리 귀에 익숙한 성인명으로 되어있으니 가히 가톨릭 국가라 할 만하다.

 

퀘벡 주의 수도인 퀘벡 시는 캐나다에 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세인트로렌스 강과 로렌시앙 산맥 사이에 넓게 펼쳐진 지역으로 주민의 95%가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프랑스의 전통에 긍지를 품고 있다. 북미에서 유일한 성곽도시이며 항구도시로 198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보존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경관이 아름답고, 시 전체가 유서 깊은 성지이다.

 

퀘벡 성지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성모님의 어머니 성녀 안나 성당,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 성당, 성모님 성당, 성모님의 어린 시절 박물관 등이 무척 의미 깊었다.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안나의 생애는, 비록 교회에서 위경으로 간주된 ‘야고보 원복음서’에 일부 기록이 있다고는 하나 접할 일이 없었다.

 

보프레의 성녀 안나 성당은 북미지역의 3대 순례지 중 하나이다. 17세기 초 세인트로렌스 강에서 배가 난파되었는데 거기 탔던 선원들이 성녀 안나의 전구로 살아난 뒤 이 성당을 지어 봉헌하였으며 성당을 짓는 중에도 끊임없이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1658년에 건립한 목조성당은 큰물에 떠내려가고, 1922년 화재 이후 1923년 재건축을 시작한 것이 1976년에 완공, 봉헌되었다. 성전 위 한가운데의 황금동상은 실제는 목상인데 성전이 전소되었을 때도 원형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입구 바닥의 세 가지 형상은 쾌락, 돈, 권력을, 중앙통로를 거쳐 제단 앞까지 심어놓은 동물 7종의 형상은 칠죄종을 상징한다고 한다. 성전 안 양쪽에는 작은 경당이 있는데 한쪽은 성가정 경당으로 요셉의 성가정상이 있고, 왼쪽 기적의 성녀 안나상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기도하신 자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뒤쪽 성녀 안나 경당의 성해 갑에는 십자군 원정 당시 교황께서 기증하신 성녀의 오른손 뼈 조각이 있다.

 

캐나다의 수호성인 성 요셉께 봉헌된 몬트리올 성 요셉 대성당은 신앙의 힘으로 많은 사람을 치료한 앙드레 신부가 세운 작은 성당이었으나 그가 죽은 후인 1960년에 지금의 건물을 지어 연간 200만 명이 방문하는 순례지가 되었다. 돔의 높이가 97m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규모이며, 1만여 명을 수용하는 대성당과 지하 소성당, 앙드레 신부 박물관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당 오른편에는 십자고상이 걸려있다. 순례자들의 입맞춤 때문에 왼쪽 발의 발가락이 모두 닳아 발등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문드러진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이가 다녀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1829년에 완공되어 몬트리올에서 가장 오래된 노트르담 드 바니에 대성당도 해마다 수백만 명이 찾는 순례지다. 성당 전체가 금빛을 띠고 있어 화려함을 더하고 섬세한 조각품들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빛은 어두운 마음을 씻어 내리고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의 심포니는 신비감을 더한다. 육중한 문을 여는 순간 훌륭하고 장엄한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세인트모리스 강 연안에 있는 캅의 성모순례지는 평화의 정원, 푸른 초원의 오아시스로 불린다. 여기에는 작은 성당과 기적의 성상이 있는데, 교황특사가 두 번이나 이 성상에 대관식을 거행하였다고 한다. 1714년에 세워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은 1888년에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의 모후’께 특별 봉헌되어 하느님의 어머니를 찾는 순례지로 간택되었다. 해마다 8월 7일부터 9월 15일까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묵주의 9일 기도를 바치는데 그 열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라고 한다.

 

 

교회의 성장과 몰락, 그리고 재도약

 

프랑스인들이 북미에 온 주된 이유는 원주민들과 모피 거래를 위해서였다. 곧이어 정치인, 군인, 무역가, 농부, 선교사제와 수도자들도 모여들면서 영적인 프랑스 재건 계획이 시작되었다. 7명의 원주민 순교자도 탄생했다. 모호크 족 인디언 추장과 결혼한 복녀 카테리 테카크위타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 박해로 부족을 떠나 몬트리올에 가서 살아야 했다.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 ‘모호크 족의 백합화’라 불린 복녀는 열렬하게 복음을 전파했다. 19-20세기 퀘벡의 학교, 의료기관, 사회봉사기관 모두는 교회의 영향을 받았다. 집집마다 신부와 수녀가 나왔고 이를 가문의 영광으로 여겼다.

 

이토록 부요했던 캐나다 교회가 물질만능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성소자도 나지 않고 수계신자율은 5%로 추락했다. 몬트리올은 그보다 더 심해 2%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사제 수도 급감하여 많은 부분에서 외국인 선교사제의 협력을 요청하는 형편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 “교회를 가장 강하게 하고 복음을 가장 힘 있게 선포하는 것은 가난”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제 캐나다의 몇몇 젊은이들이 영적인 갈망을 품고 교회로 돌아오고 있으며 새로운 신앙운동 단체가 탄생하고 있다. 성령께서 원하는 대로 부신 결과, 젊은이들이 복음의 삶을 찾아 나선 것이다. 한 믿음 한 세대 한 영 운동, 젊은 마리아 운동, 미리암 가정 운동, 그리스도 신자들의 다가섬 운동 등에 20대 젊은이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교회도 성소자 육성을 위해 다시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캐나다 교회가 성조들의 희생과 순교로 일어났듯이 우리 한국 교회도 가난한 순교자들의 피땀 속에 자라났다. 주님은 가난한 분, 교회는 가난할 때 오히려 힘을 낼 수 있다. 겉보기에 강하고 영향력 있는 교회는 언젠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는 연약한 아기 예수, 어리석은 십자가의 예수를 닮는 데 충실해야 한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크게 성장한 우리 교회도 작금의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 등 복음을 거스르는 많은 조류의 위협을 받고 있다. 캐나다 교회가 400년의 역사를 재평가하고 복음의 꽃을 새로이 피워나가듯 우리 교회도 새로운 각오와 방식으로 신앙의 꽃을 피워야 하겠다.

 

* 김기준 비오 -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사무총장.

* 성수환 바오로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미디어부에서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8년 9월호, 글 김기준 ? 사진 성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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