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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정신의 병과 정신병, 그리고 마귀들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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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5 ㅣ No.94

정신의 병과 정신병, 그리고 마귀들림 (5)

 

 

지난 호에서 우리는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 현상 식별을 위한 세 가지 기본적 인식의 틀을 유지하면서 이 두 현상의 유사성과 상이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제 이러한 사전 이해를 바탕으로 이전에 예로 들었던 50대 중년 여인의 경우를 살펴보고자 한다(『사목』 311호(2004.12.), 106-107면 참조).

 

이 여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정신이상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서 신앙으로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이 여인을 마귀들린 사람으로 간주했고 보통 사람들은 단순히 미친 여자로 보았다. 일단 앞서 설명한 바 있는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 현상을 식별하기 위한 인식의 세 가지 조건을 기준으로 이 여인을 바라본다면 다음과 같은 이해를 전개해 나갈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조건, 곧 세 가지 기본적 인식의 틀 (① 섣부른 판단의 배제 ② 가능성의 정도에 따른 진단 ③ 고정관념과 편견에 따른 편파적 판단의 배제) 가운데 두 번째 요소인 ‘가능성의 정도에 따른 진단’을 놓고 볼 때, 일단 이 여인은 정신분열 증상을 심하게 보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첫 번째와 세 번째 요소를 염두에 둔다면, 이 여인이 생물학적 뇌의 이상이 없는 정상인으로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은총을 하느님께 받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여인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 여인은 예수님에게서 내려오는 위안의 계시와 천국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보다 참기 힘든 현실적 고통을 가까스로 극복해 나가는 힘을 얻고 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 현상을 식별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중 이 첫 번째 조건인 세 가지 기본적 인식의 틀 자체만으로는 이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어느 하나에 더 무게를 실어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럴 때 사목자는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그러하지만) 실제적 현상을 이러한 조건들에 무조건 하나하나 대조해 나가는 방식으로 올바른 식별을 하려 해서는 안 되고, 세 가지 조건들을 동시에 적용하면서 통합적인 지혜를 모아야 한다. 곧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 현상을 식별하는 세 가지 조건 중 첫 번째 조건인 세 가지 기본적 인식의 틀 중에서 두 번째인 ‘가능성 정도에 따른 진단’과 세 번째 조건인 ‘원인적 접근’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 조건인 배제를 통한 식별을 통해 마지막으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현상적 접근이나 증상적 접근이 아닌 원인적 접근을 시도하여 이 여인은 왜 이러한 현상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먼저 추론해 보고, 그 여러 추론들 중에 어떤 것이 더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이 여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을 체험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현상들이 하필이면 이 여인에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한 가능성을 먼저 추론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론적 접근 뒤에 두 번째 조건인 배제를 통한 식별을 가미한다면 어느 정도 그 현상에 대한 객관적 윤곽을 얻어낼 수 있다.

 

이런 통합된 접근 방식으로 이 여인을 바라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인은 일단 비정상적이며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환경 속에서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며 그대로 험악한 세상에 내던져진 사람이었다. 먼저 가정에서 버림받고 이후에 다시 사회로부터 유린당한 이 여인은 만신창이가 된 육체와 더불어 심리적이며 정서적인 불안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냉혹한 현실 속에서는 그 어떤 위로나 안식처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의 계속되는 폭력과 유기, 그리고 강간에 따른 임신과 유산 등 실로 육체적으로나 심리 정서적으로 그 어떤 영역에서도 안정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이 여인은 급성적 정신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외적 요인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심리 정서적 수용의 한계선을 넘어서는 정신적 외상(trauma)을 체험할 경우, 잠정적으로 아니면 일시적으로 단기 반응성 정신분열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미 임상 경험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물론 뇌의 이상에 따른 정신분열증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이 자매는 이미 50대 중년의 여인이기 때문에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대부분 발생하는 생물학적 원인에 따른 정신분열증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여인이 만일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면 그 원인은 심리 정서적인 외상에 따른 정신분열 증상에 그 ‘가능성의 정도’가 더 기울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심리적 외상에 따른 정신분열 현상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곧 현실적 삶에서 분리된 자아가 자신의 정상적인 대처 방식으로는 더 이상 현실에 적응할 수 없음을 인식하면서도 자살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 현실 속에서 그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질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 자아 속의 무의식은 자신이 그러한 현실에 올바로 ‘적응’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순응’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보호 본능적인 자기방어기제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것은 종교와 부합되면서 더 강력한 자기방어기제로 강화되는데 이러한 것의 대표적인 것이 ‘종교적 합리화’ 또는 ‘종교적 승화’이다. 곧 자신의 이러한 현실적 고통은 내세에서 얻어질 부활의 구원 사건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인 신념이 자기방어기제와 결합되면 보통의 정신으로는 극복하거나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이 그나마 자신의 종교적인 환상 안에서 그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곧 그 어떤 곳에서도 자신의 안식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 있던 이 여인에게 자기 무의식의 강력한 종교적 자기방어기제는 현실이 아닌 영적 세계에서 안식과 위로를 찾아가며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이끌어가고 있으며, 여러 종교적 환상은 이러한 해석의 일환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배제(exclusive)를 통한 진단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이나 영적인 세계에 대한 판단을 중지한 채 일단 정신분열 증상을 확실히 보이는 임상 사례를 영적인 현상으로부터 배제하는 방법이다. 지금 이 여인은 분명 정신분열 증상 가운데 양성적 증상인 환영과 환청을 보이고 있으며 동시에 마귀가 자신을 조정하려 든다는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신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병식’이 없는 점으로 보아 ‘어느 정도 정신분열 증상에 많이 가깝다.’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물론 필자가 앞서 기술한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의 상이성의 조건으로 볼 때, 평범한 여인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강한 힘을 내는 모습(물론 필자가 여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완력에 붙들려서 고생했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그 힘이 초인적 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렇게 크게 고려할 만한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 

 

이제 이러한 배제를 통한 식별 방법의 마지막 단계는 구체적인 정신분열증 증상의 학문적이며 전문적인 진단 절차를 밟는 것이다. 먼저 사목 상담자는 신학적인 배경을 통해 이러한 영적 현상에 대해 판단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의 차원에서 교회의 교도권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으로 이미 공적인 계시는 종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이들의 영적이며 동시에 사적인 현상을 공적으로 일반화하려는 시도나 유형들은 일단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령의 작용은 ‘일치’로 나가는 것이지 ‘분열’을 조장하지 않는다는 성서 신학적 배경은 영적인 현상을 성령의 활동으로 간주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기준을 두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곧 이러한 영적 활동이 교회를 분열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면 또한 성령의 작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성령의 활동은 비록 개인에게 유익을 주는 형태를 띤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보편적 선익’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개인에게는 은총이지만 공동체에게는 해악을 끼치는 현상들은 성령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여인의 영적 현시나 환청들은 신학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체험을 공적으로 확대하거나 아니면 어떤 목적으로든 간에 교회 공동체에 전파시키려는 의도도 없어 보인다. 이 여인은 순전한 자신의 내적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에 자신만이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적으로는 이 여인의 체험이 하느님에게서 나오지 않았음을 반증할 빌미는 경미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훈련받은 사목 상담자들은 이러한 경우에 이 여인과 전문적인 상담을 시작하며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채 하나하나 진단에 필요한 자료들을 얻어가며 배제를 통한 식별을 시도해 갈 수 있다. 상담과 함께 유용한 자료로 사용되는 진단 기준들은 ICK-10과 DSM-IV가 있으며, 동시에 표준화된 심리검사인 MMPI 그리고 개인용 투사 검사인 Rorschach와 BGT 등의 전문가적 해석이 이러한 진단을 뒷받침해 주게 된다. 이러한 학문적 노력과 전문가적인 경험을 통한 이해의 결과가 역시 정신분열 증세 쪽으로 기운다면 여러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볼 때 우리는 이 여인에 대해 단기 반응성 정신분열 또는 심인성 정신분열 증상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혹시라도 환청과 환상 그리고 피해망상이라는 정신분열 증상이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다른 진단 기준들과 심리검사들에 감지되지 않는 경우라면 분명히 어떤 초자연적인 은총의 역사를 인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신분열증이 아니면서도 어떤 도움을 받으려는 의도인지는 몰라도 의식적으로 이러한 환청과 환상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꾸며댄다든지 아니면 반대로 정신분열증이면서도 이러한 심리검사에 의식적으로 이상이 없도록 피해가려는 의도는 모두에게 대부분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MMPI와 같은 표준화된 검사는 수많은 방어기제를 통해 자신을 숨기려 하거나 미화하는 등 있는 그대로를 반영하지 않으려는 환자들의 시도를 다각도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수많은 규준집단들의 통계적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하여 타당성의 척도를 측정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도가 많이 내포되면 타당성의 척도에서 ‘알 수 없음’ 판정이 내려지게 되기 때문에 자연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도하려는 환자가 있다면 왜 그런 의도를 가지는지 이유는 알 수는 없어도 (이때는 상담을 통해 알아볼 수밖에 없음) 일단 그 검사 결과는 무효가 된다. 

 

반대로 만일 정상적인 프로파일을 형성하기만 한다면 그 결과는 어느 정도 공신력과 객관성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개인용 투사 검사들은 환자들이 의식적으로 어떤 질문의 유형이나 자신의 대답이 어떤 방식으로 평가되는지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더더욱 의식적 조작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검사들의 결과가 정상적으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굳이 이 경우 초자연적 은총의 가능성을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사목 상담자에게 더 의미 있는 결론은 이러한 임상 진단적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사목적 배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진단 결과 이 여인은 실제적이며 현실적인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목적 배려의 대상임이 확실하다. 결과적으로 이 여인의 정신분열 증세는 원인적으로 접근할 때 그의 생활환경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보인다. 그러므로 사목 상담자는 일단 이 여인을 정신질환적 문제 이전에 환경적인 안정과 실제적 생활의 보호 차원에서 적극적인 도움을 주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믿고 의지해 온 신앙(비록 환상적인 바탕을 가진 신앙이라 할지라도) 안에서 계속해서 삶의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면서 동시에 이러한 환경적이며 심리적인 안정을 통해 점차 정신질환적 증세를 감소시켜 정상적인 수준의 신앙 단계로 접어들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할 것이다. 

 

이제 이 부분을 정리하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사목 상담자의 새로운 모습을 정리해 보고 싶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떤 면에서 사목 상담자는 정신과 의사나 단순한 심리치료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독특한 치료의 과정에 개입하는 치유자(healer)가 됨을 알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정신과 의사들이나 사회복지사들 사이를 오가면서 현실적인 도움과 심리적인 치료를 중재하며 하느님의 백성이 영적으로 치유될 수 있도록 돕는 전령사가 되는 것이다. 

 

사목 상담자는 이처럼 영적인 문제에서부터 사회복지 차원의 실제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두루 자신의 종교적이며 사회적인 역량을 발휘해야 할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사목 상담자가 동시에 정신과 의사나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들과 ‘함께하는 사목’의 팀워크를 형성하는 데 가장 핵심에 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사목 상담자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존재론적 정체성이 연역적으로 주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당신의 양떼들이 오늘날 목자들에게 그렇게 요구하고 있다는 현시대적 필요성이 실제로 귀납적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사목 상담자는 이런 면에서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치료(treatment)’를 넘어 하느님에게서 오는 근원적인 ‘치유(healing)’를 전달해 주는 예언자적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선진국에서는 정신과 질환자를 우리나라와 같이 이른바 ‘미친 사람’처럼 보는 부정적 인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고, 100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할 수 있는 뇌 질환의 하나로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열증 환자에 대한 세 가지 차원의 돌봄, 곧 의학적 치료,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안정 치료, 그리고 영적이며 사목적인 배려 등의 역할 배분이 잘 되어있다. 따라서 이러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에 대해서 그 증상의 정도에 따라 의학적으로 더 초점이 맞추어질 것인지 아니면 심리치료가 더 중시될 것인지 아니면 사목적이며 영적인 배려가 더 필요한지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팀을 이루어 협조하고 있다. 따라서 정신과 병원 같은 실제적인 임상 현장에서는 어떤 환자의 치료를 시작할 때 정신과 의사(psychiatrist)와 심리치료사(psychotherapist)가 함께 공조하여 일차적인 치료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어느 영역이 더 중요시되는지를 서로 의논하여 ‘가능성의 정도에 따른 진단’의 형식을 통해 치료를 해나간다. 이러한 가운데 사목자의 영적인 돌봄이 필요한 경우 임상 사목자(clinical minister)가 이들의 치료에 동반한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그러한 시스템이 아직 정착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정신과 의사나 심리치료사, 그리고 사목자 편에서 서로의 영역에 대한 전문성이 상호 보완되는 상담과 치료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사목자인 필자도 개인적으로 현재 가톨릭 중앙 의료원의 가톨릭 임상사목 연구소와 같은 연구소들과 각 병원을 중심으로 편성된 임상사목 팀들의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해 보며 임상사목교육(CPE: Clinical Pastoral Education)을 전공한 사목 상담자들이 많이 배출되어 교회 안에서 이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목, 2005년 3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 본지 주간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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